수십년 보신탕집도 폐업…개고기 늘어놨던 모란시장이 변한다 [르포]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 복날엔 다들 식당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는데, 이젠 눈치가 보여서 메뉴판에서도 다 뺐어. 가끔 찾는 손님들한테만 팔고….”
9일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에서 만난 M식당 주인 김용복(66)씨는 ‘개고기는 이제 안 파느냐’고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김씨는 모란시장에서 30년째 건강원을 운영 중이고, 2018년부터는 인근 식당을 인수해 보신탕과 개고기 수육 등도 함께 판매해왔다. 현재 시장 가축상인회장도 맡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점심시간이 다 됐지만 김 회장 식당에 손님은 한 테이블에 불과했다. 이들이 주문한 음식도 염소탕이었다. 그는 “최근 1년 새 손님이 반 토막으로 줄었다”며 “그나마 찾는 손님 중 흑염소 손님이 10이면 개고기를 찾는 손님은 2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국회에서 개식용금지법이 통과됐으니 개고기 장사는 이제 접고 주메뉴를 흑염소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이 가게를 비롯해 20여개 건강원·보양식 식당들이 모여있는 모란시장 가축거리는 유난히 한산했다. 눈에 띄는 사람이라곤 호객하는 상인이나 장년층 손님 서너명이 전부였다. 길 건너편 공영주차장에 열린 민속 오일장은 눈 내리는 날씨에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남편과 시장을 찾은 이모(74)씨는 “토종닭을 사러 왔다”며 “모란시장에서 개고기 파는 곳은 거의 다 없어지고 개고기 찾는 몇몇 단골들에게나 알음알음 판매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때 부산 구포시장·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고기 시장’으로 불리던 모란시장의 과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축거리 가게 20여곳 중 실제 ‘보신탕’ ‘개고기’ ‘개소주’ 등 개를 원재료로 하는 식품을 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표현을 간판에 표시한 상점은 단 한 곳뿐이었다. 개고기를 진열한 가게도 2곳이 전부였다. 대부분이 흑염소로 주메뉴를 바꿨다. 40년째 시장에서 건강원을 운영했다는 A씨(64)는 “식용 개인데 도축을 합법으로 만들어달라고 해도 안 해주더니, 이제 아예 개를 팔지도 못하게 하니 가게 운영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개식용금지법이 만들어졌으니 앞으론 아예 흑염소거리를 조성하고 홍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보신탕집은 폐업한 곳도 많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농수산물 시장 인근 좁은 골목 안, 보신탕을 팔았던 한 식당엔 간판만 붙어있고 가게를 헐고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다. 인근 다른 개고기 식당 주인 B씨는 손님 없는 식당에 누워 TV를 보다 “그 가게는 폐업한 지 6개월 정도 됐다”며 “다들 수십 년씩 장사했는데 별수 있나. 나라에서 못하게 하면 인제 그만 둬야지”라고 말했다. 인근 식당 주인 대부분이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하면서다.
상인들은 법 시행까지 3년간의 처벌 유예기간 동안 생계 유지를 위한 현금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김 회장은 “개식용금지는 결국 상인들에겐 생계의 문제”라며 “법을 따를 수밖엔 없지만, 정부가 제대로 된 지원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금지법에 포함된 지원책에 대해선 “저리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건데 이마저도 1~2년 안에 다 갚아야 한다더라. 빚이 생기는 건데 누가 반기겠나”라고 반발했다. 대한육견협회도 영업손실 보상 명목으로 개 한 마리당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축산업자에게 개체당 일정액을 현금으로 보상한 전례가 없어 이런 요구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개식용금지법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하거나 도살하는 행위, 개 또는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을 유통·판매할 경우 최대 징역 3년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는 2027년 시행된다.
이보람·박종서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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