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16만원 버는 폐지수집 노인의 이유 있는 ‘설렘’

김동규 2024. 1. 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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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2023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
“노인이 다음세대, 이들을 위한 사역 필요해”
사회적기업·노회·교회의 아름다운 동행
러블리페이퍼 관계자(오른쪽)가 지난 2일 인천 부평구 상가 일대에서 폐지 수집 노인의 폐지를 고가로 매입하고 있다. 러블리페이퍼 제공

2019년 정순자(85) 할머니는 여느 날과 같이 폐지를 줍기 위해 꼭두새벽인 오전 3시에 길거리로 나섰다. 수 시간 동안 모은 폐지를 1㎏당 50원 가격에 판매하려 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삯은 하루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들었다. 그때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대표 기우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폐지를 기존 시세보다 6배가 넘는 값에 사 갔다. 그렇게 러블리페이퍼와의 인연을 이어간 정 할머니는 이 기업에 정식 취업했다. 6년 차 직장인이 된 정 할머니는 “하루하루 설렌다”며 반색했다.

“폐지 줍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어쩌겠어요. 살려고 했던 건데요. 근데 이제는 러블리페이퍼를 만나 편하게 앉아서 일할 수 있고 번 돈으로 교회에 헌금도 할 수 있으니 너무너무 행복해요.” 정 할머니가 다소 북받친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러블리페이퍼의 도움을 받은 정 할머니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달 말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발표한 ‘2023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균 76세 노인들이 폐지를 수집하는데 하루 평균 5.4시간을 보냈으며 일주일 중 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를 꼬박 모은 폐지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 15만9000원. 시급 1226원으로 최저임금의 13% 수준이다. 복지부는 이처럼 노년을 이어가는 이들이 전국 4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폐지 수집을 하는 이유에 관해 노인 10명 중 5명(54.8%)이 ‘생계비 마련’이라고 답했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85.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초고령 사회를 앞둔 시점에 이같은 노인들을 위해 기독교계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폐지 수집 노인이었던 정 할머니를 품은 러블리페이퍼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3년 굽은 허리를 더 낮게 구부리면서 손수레에 폐지를 싣는 노인을 본 기우진(42)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기 대표는 기독대안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러블리페이퍼의 첫 발걸음을 뗐다.

9일 인천 부평구 사무실에서 만난 기 대표는 “작은 관심만으로도 폐지 수집 노인분들의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다”며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듯이 노인 빈곤 문제에 놓여 있는 분들을 돕는 것은 기독교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전했다.

러블리페이퍼는 노인들이 주운 폐지를 1㎏당 300원에 사들여 재활용 캔버스를 만든다. 캔버스에 자원봉사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캘리그래피를 덧입혀 실내 장식 소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작품을 팔아 번 돈은 다시 노인들이 주워온 폐지를 사거나 노인 일자리를 새로 마련하는 데에 투자한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어르신들이 인천 부평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러블리페이퍼 제공

기 대표는 “대한민국은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있다. 인구층의 주류를 차지하는 어르신들이 다음세대”라며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청년과 청소년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회가 노인 일자리 등의 맞춤 전도와 사역을 펼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러블리페이퍼의 최종 목표는 ‘멋지게 망하는 것’이다. 기 대표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처럼 러블리페이퍼도 노인 빈곤을 해결해 할 일이 없어져 망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며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기독교계가 노인 빈곤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울산노회 선교기관에 뿌리를 둔 사회적기업 희망을키우는일터(이사장 이완재)는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사업단’과 ‘울산 희망자전거 사업단’을 펼쳐 지역 노인을 비롯해 취약계층의 일자리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경북 안동교회(김승학 목사)는 2014년 노인종합복지센터를 설립해 해마다 10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인천=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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