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제주도... 도민들이 '비상행동' 준비하는 이유 [제주 사름이 사는 법]

황의봉 2024. 1. 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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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름이 사는 법] 박찬식 제2공항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공동 집행위원장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황의봉 기자]

▲ 박찬식 공동집행위원장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제2공항 건설 저지투쟁에 올인하고 있는 박 위원장은 국토부가 추진하는 제주 제2공항을 막아낸다면 개발과 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 황의봉
 
2024년 새해를 맞은 제주 사회의 기상도는 '잔뜩 흐림'이다.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한바탕 폭풍우가 휘몰아칠 기세다.

1월 2일,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아래 비상도민회의)는 성산 일출봉 교차로 인근에서 제2공항 반대 캠페인을 열고 기본계획 고시 절차 중단을 촉구했다.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성산일출봉을 찾은 관광객과 도민들에게 "제2공항의 논란과 갈등이 절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도민과 함께 끈질긴 반대운동으로 제2공항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박찬식 비상도민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아마도 제2공항 이슈에 관해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는 제2공항 반대 투쟁을 하기 위해 서울의 가족과 떨어져 고향 제주에서 6년째 홀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주무 부처인 국토부와, 학창시절의 친구였던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전 제주도지사), 한때 제주4·3 진상규명 운동의 동지였던 오영훈 현 제주도지사와 정면으로 맞서왔다.

제주 시민사회가 공항 건설을 막기 위해 결집한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으로, 집행위원장으로 쉼 없이 달려온 그를 만났다. 우선 기본계획 고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부터 물었다.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지금까지 검토 단계였던 제2공항 건설계획이 법적으로 확정되는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실시계획(기본설계와 실시설계)을 수립하고, 여기에 맞춰 환경영향평가를 합니다. 이전에 했던 전략환경영향평가가 공항 건설 사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평가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 하게 될 환경영향평가는 법적으로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에서 환경피해를 줄일 방안을 구체적으로 도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가 끝나면 제주특별법에 따라 제주도와 협의해야 합니다. 만약 도지사가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고 회복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부동의'하면 공항 건설은 어려워집니다. 혹은 지사가 동의해 제주도의회로 넘겼는데,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할 때도 공항 건설은 무산됩니다. 동의 여부는 실질적으로 도지사의 권한이고, 의회는 승인의 의미일 뿐이므로 이 단계에서는 제주도지사의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친구 원희룡, 동지 오영훈... 두 제주도지사와의 인연
 
▲ 제2공항 ‘맞짱 토론’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박찬식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이 KBS제주방송총국 공개홀에서 현 제주공항의 활용가능성과 제2공항 도민공론화 등을 놓고 일대일 토론을 벌였다. 2019년 9월 4일.
ⓒ KBS 캡처
 
본격적으로 제2공항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잠깐 박찬식과 원희룡, 박찬식과 오영훈의 과거 인연을 살펴보자. 그동안 공항 문제를 둘러싼 키 플레이어가 바로 이 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원희룡과의 인연.

"저희 둘 다 옛 중문면 출신으로, 이웃 마을에 살았어요. 초등학교는 서로 달랐는데 4학년 때 삼국유사 같은 책을 읽고 시험을 보는 자유교양대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남제주군 예선을 통과해서 함께 제주시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하기 위해 선생님 인솔하에 버스를 타고 간 적이 있어요. 이때 처음 만난 셈인데, 그 이후론 친분을 쌓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울대 법대에 함께 입학하면서 동기생이자 친구가 된 셈입니다."

제주도의 수재 박찬식과 원희룡은 나란히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해 원희룡은 학력고사 전국 수석, 박찬식은 문과 7등이었다. 이들의 입학 동기가 요즘도 자주 회자되는 '서울법대 82학번'이다. 조국, 나경원, '강철서신'의 저자로 알려진 김영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등 유명인사가 유난히 많은 학번으로 알려져 있다.

박찬식 집행위원장은 나경원 전 의원과는 "노는 물이 달라서" 친하게 지내지 않았고, 학생운동 하는 친구들끼리는 함께 회의도 하고 토론도 했기 때문에 조국 전 장관과는 잘 알았던 사이라고 했다. 나중에 제2공항 문제로 정반대 편에서 맞부딪쳐야 했던 동향의 원희룡 장관과는 어땠을까.

"사실은 제가 학생운동을 하는 데에 원희룡 친구가 많은 자극을 주었어요. 저는 1학년 때만 해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1983년 1월 말 그 친구의 생일날이었을 겁니다.

눈이 엄청나게 오는 날 친구들 10여 명이 모여서 생일 축하 파티를 하는 자리에서, 원희룡이 저한테 도발하는 겁니다. '너는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 어떡할 거냐' 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할 결심을 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날 밤새도록 울며불며 이야기하고, 눈밭에서 함께 뒹굴고 하면서 저도 마음의 정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후 저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그 친구는 주로 야학 활동을 했기 때문에 활동 영역이 좀 달랐지요."

오영훈 지사와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오 지사도 제주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학생운동을 했으나 학번도, 학교도 달라 학연은 없다. 오 지사의 고향은 남원읍이어서 지역도 다르다.

"오영훈 지사와는 1999년 제주4·3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투쟁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주4·3 제50주년 범국민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었고, 오 지사는 4·3유족 청년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명동성당에서 농성도 하면서 특별법 제정을 끌어내는 데 함께했던 동지였습니다."

"국토부 행태 보고 서울 생활 접었다"
 
▲ '기본계획 고시’ 저지 도민대회 지난해 10월 25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 중단 및 원희룡 국토부장관과 오영훈 지사에 도민결정권 실현을 위한 주민투표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다시 제2공항 문제로 돌아가 보자. 박찬식 집행위원장이 공항 건설 반대 투쟁의 최일선에 서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11월에 제2공항을 짓겠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갑작스러웠지요. 처음 이 소식을 듣고는 '큰일 났다. 제주도가 정말 망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는 과잉관광이나 난개발에 대한 문제의식이 막 커지고 있었습니다. 2016년 5월에 '육지사는 제주사름' 주최로 '제2공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서울에서 열었어요. 그해 말에는 제2공항 반대 특별결의문도 채택하고 국회에서 '쿠오바디스 제주'라는 타이틀로 포럼도 개최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하자는 정도로 생각했지요. 저도 2018년 여름까지는 4·3 70주년 사업에 집중하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2018년 9월에 제2공항 검토위원회가 구성됐는데, 이게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한 계기가 됐습니다. 2017년 가을에 성산 주민들이 도청 앞에서 몇 달 동안 농성을 하고 김경배씨가 40일 단식을 한 끝에 겨우 얻어낸 게 검토위원회를 구성하는 거였어요. 입지 선정의 타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재검토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검토위원회 운영에 있어 국토부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겁니다. 저희는 6개월을 하자고 했고, 국토부는 3개월을 주장했어요. 결국 3개월 해보고 부족하면 2달 연장하기로 합의했는데, 딱 3개월이 되던 12월 13일에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중단시켜 버린 겁니다. 저희는 쟁점별로 토론을 하고 그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고 보았는데 말이죠. 이때 제가 엄청나게 싸웠어요. 검토위원회를 형식적인 통과의례로 간주하는 국토부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서울 생활을 일단 접고 그해 말 제주도에 방을 구해 본격적으로 싸움에 나서게 된 겁니다."
 
▲ '쿠오바디스, 제주' 포럼 '육지사는 제주사름' 주최로 제주도의 난개발 문제 등을 놓고 벌인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박찬식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2016년 11월.
ⓒ 육지사는 제주사름
 
제주 제2공항은 애초에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도대체 어떤 문제점이 있었길래 지난 8년간 우여곡절과 끝없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 것일까.

"2009년에 제주도의회에 신공항특위가 만들어지고 2012년에는 우근민 당시 지사가 '제주공항 개발구상 연구'라는 용역을 국토연구원에 맡겼습니다. 그러니까 제주 지역사회의 주도 세력들 간에 공항 신설이나 확대에 대한 일정한 컨센서스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현 제주공항에서 연간 1천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지요. 당시 연간 관광객이 600만∼700만 명 수준이었는데, 천만 명이 넘어가면 현 공항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본 겁니다.

국토연구원 용역 결과를 보면 1안이 현 공항 확장, 2안이 현 공항을 폐쇄하고 활주로 2개짜리 신공항을 어딘가에 새로 짓는 것, 3안이 제2공항을 지어 현 공항과 함께 복수 공항으로 가자는 것이었어요. 지금 제2공항 건설안이 바로 3안인 것이지요. 그런데 2012년 용역에서는 3안은 제주도에 맞지 않는다고 봤어요. 1안인 현 공항 확장에는 4가지 방안이 제시됐고, 2안으로 갈 경우 제주도 서쪽의 대정읍 신도리 지역이 가장 점수가 높게 나왔습니다.

당시 신공항 논의의 핵심은 천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함께 24시간 공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제주도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려면 24시간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주로 관광업계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제2공항도 24시간 공항은 아니거든요. 24시간 공항이 되려면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바다 쪽에 활주로를 내든가 마을이 없는 해안으로 가야 하죠. 지금 제2공항 부지는 마을이 있는 내륙이므로 애초의 논리와는 맞지 않고 확장의 논리만 있는 것입니다."

제2공항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관광객 증가와 그에 따른 공항의 처리 능력 그리고 공항 신설에 따른 환경파괴 우려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이 문제는 제주도의 관광객 수용 여력, 관광객 증감 추세 그리고 인구감소 등 여러 요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주관광통계에 따르면 2023년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은 1334만명이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1528만 명이었다.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현재 연간 1500만 명 안팎의 관광객이 제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2000년만 해도 400만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이 숫자는 제주도의 공동체나 자연, 인문 환경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고 봅니다. 임계치에 이른 상황에서 공항을 하나 더 짓는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이겠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제주도는 완전히 망가지는 것입니다. 관광지로서의 매력도 상실할 수밖에 없어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환경적으로 제2공항 부지가 타당성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도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습니다. 오름 훼손이 불가피하고, 용암 동굴지대인 데다가 숨골이 파괴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 공항 예정지역이 하도리부터 시작해 종달리 오조리 신산리로 이어지는 제주도 최대의 철새도래지 벨트인데, 이걸 보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조류와 항공기의 충돌을 방지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지역에 공항을 짓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도 처음 입지 선정할 때 이 부분이 평가항목에 들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소음 문제도 크고, 법정 보호종 생물도 문제고요.

수요 예측도 어긋나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나다가 2016년 이후 8년째 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인구도 감소하고 있지 않습니까. 관광객의 90% 이상이 내국인인데,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니 항공 수요도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지요."

"현 제주공항 개선하면 제2공항 필요 없어"
 
▲ 청와대 앞 집회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는 2019년 10월 상경투쟁기간 중 청와대 입구 분수대 앞에서 집회를 갖고 제주도민의 의사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2공항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사안이 불거지기도 했다. 현 제주공항의 활용 극대화 방안이 그것이다. 2014년 한국항공대학교와 ㈜유신에서 사전타당성 용역을 수행하면서 제2공항이 완성될 때까지 현 공항의 활용도를 높일 방안을 세계적인 공항엔지니어링 전문업체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의뢰했던 사안이다. ADPi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았던 것일까.

"당시 제2공항의 완공 시기를 2025년으로 봤어요. 그때까지도 수요가 계속해서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현 공항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의뢰한 것이지요. 검토 결과는 현 공항을 개선하면 장기 최대 수요로 잡은 4500만 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 내용이 용역 결과보고서에 반영되면 제2공항은 설 논리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자 국토부가 이 보고서를 숨겨버리고 ADPi에 의뢰한 사실도 은폐한 것입니다. KBS 취재 과정에서 외국기관에 의뢰한 사실이 드러나 저희가 따져 묻고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이리저리 회피하다가 2019년 5월에야 공개했어요. (관련기사: 논리와 명분 상실한 제주 제2공항, 공군기지 위한 포석?https://omn.kr/1k5xh)

ADPi가 이러한 결과를 내놓은 것은 세계적으로 공항 관제시스템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이후 유럽 등 주요국의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공항을 확장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거든요. 그 대안으로 항공시스템 개선작업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지요. 차세대 항공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활주로 1개의 시간당 항공기 수용 횟수가 많이 늘어난 겁니다.

예를 들어 활주로 하나에 영국의 개트윅공항은 시간당 55회 운행하고,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공항은 53회로 운행 횟수가 늘어났어요. 관제시스템과 지상에서의 운영시스템을 개선하고,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빠져나오는 고속 탈출유도로를 더 많이 만드는 등 인프라 개선을 하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현 제주공항은 시간당 최대 35회 수준입니다.

ADPi 보고서에 따르면 현 공항의 보조 활주로까지 잘 활용하면 이론적으로는 시간당 70회, 현실적으로는 60회 이상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60회면 45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어요."

박찬식 집행위원장은 제2공항을 짓지 말고 현 제주공항을 개선·확장하자는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이 방안은 현재 관광객이 제주도가 수용 가능한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하다는 논리와는 상충할 수도 있다.

"사실 현 공항을 확장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비상도민회의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녹색당 같은 경우는 현 공항 확장론을 얘기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민회의 집행부로서는 어떻게든 제2공항을 막아내는 게 중요하므로 만약에 공항 수요가 더 늘어나더라도 현 공항을 확장해서 쓰면 된다는 논리를 더 보충해야만 다수 도민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저는 항공 수요를 늘리지 않더라도 공항 이용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현 공항을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주공항의 터미널은 40년 전에 지어진 것을 땜질식으로 조금씩 확장하다 보니 굉장히 비좁고 낡은 시스템이 돼버렸어요. 터미널과 활주로 사이 공간도 좁다 보니까 비행기들이 서 있을 자리와 오고 갈 자리가 제대로 안 나옵니다. 비행기도 사람도 모두 비좁고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터미널을 렌터카 기지들이 있는 오일장 방향으로 옮기고 확장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터미널과 활주로 사이의 공간도 넓어져 운행 횟수도 늘릴 수 있고 불편도 크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바뀐 여론... 제주도 지사는 어떤 선택 할 건가
 
▲ 단식농성장을 방문한 강우일 주교 제주도의회 제2공항 갈등해소특위 구성과 국토부의 기본계획 고시 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중인 박찬식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을 찾아 의견을 나누는 강우일 제주교구장. 2019년 11월 5일.
ⓒ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비상도민회의가 제2공항 반대 투쟁을 지속해서 전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론의 뒷받침이 큰 힘이 되었다고 박찬식 집행위원장은 말한다. 공항 건설 발표 이후 지금까지의 여론 흐름은 어땠을까.

"2016년 1월 KCTV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68.1%, 반대 16.6%, 유보 14.7%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이후 격차가 좁혀지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 2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합의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실시한 여론조사가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게 됩니다. 제주지역 9개 언론사가 갤럽과 엠브레인 두 곳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찬성 44.1%, 반대 47%'(갤럽) 그리고 '찬성 43.8%, 반대 51.1%'(엠브레인퍼블릭)로 나왔어요. 여론조사를 앞두고 TV토론을 6차례나 했을 정도로 찬반 양측이 치열한 논쟁과 홍보를 하며 총력전을 폈기 때문에 사실상 공론조사나 주민투표와 다를 바 없었던 성격의 조사였습니다. 

당시 공항부지로 선정한 성산읍에 대해서도 별도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이 지역에선 찬성이 높게 나와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까. 성산 14개 마을 가운데 공항 건설로 피해를 보게 되는 곳이 4개 마을이고, 나머지 10개 마을은 수혜 지역입니다. 수혜지역 중에는 일출봉 주변의 상업지대 인구가 많다 보니 찬성이 많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민 수용성을 얘기할 때는 피해를 보는 주민들의 수용성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산지역 여론조사를 별도로 한 건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예요. 같은 생활권의 이웃들을 찬반으로 갈라놓는 몹시 나쁜 행위입니다. 원희룡 지사가 성산을 따로 조사하지 않으면 여론조사 안 하겠다고 버티니까 도의회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무튼 이 여론조사 이후 실시된 모든 조사에서 반대의견이 높았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3년 7월 '제주의 소리'가 한국 갤럽에 의뢰해 한 여론조사에선 찬성 41.1% 대 반대 53.2%였습니다. 이러한 여론의 흐름은 공항 건설로 인한 환경훼손과 제주도의 관광객 수용 능력에 대한 우려 등 문제 제기에 대해 많은 도민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 제2공항 백지화 기원 '삼보일배'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가 2021년 2월 도민 여론조사를 앞두고 성산읍 피해주민을 중심으로 엿새간의 '삼보일배'를 진행했다.
ⓒ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제2공항 추진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하면서 제주도민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이슈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도민들의 뜻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고, 그 구체적 방안으로 도민투표를 통해 결론을 내자는 것이다. 주민투표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앞에서 말한 제주도와 도의회가 합의해 실시한 여론조사가 사실상 주민투표나 다름없습니다. 주민투표 인구분포에 맞춰 무려 2500명을 상대로, 그것도 두 군데 회사를 통해 여론조사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원희룡 지사와 국토부가 그 결과에 불복하고 무효화시켜 버렸으니 이제는 최종적으로 주민투표를 하자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강우일 주교와 현기영 작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 제주 사회의 대표적인 인사들이 주민투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오영훈 지사에 의해 거부됐어요. 투표 결과 차이가 크게 안 나면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더군요.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팽팽하므로 투표를 통해서 확인하자는 것이지, 크게 차이가 나면 뭐 하려 합니까. 절차적인 정당성과 공정성 외에는 이제 최종적으로 이 문제를 결정할 방법이 없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정에도 한쪽에선 인정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2023년 7월 <제주의소리> 한국갤럽 의뢰 여론조사 결과)주민투표의 필요성에 대해 도민들의 75%가 찬성하고 있습니다."

제2공항과 관련한 주민투표 실시 문제는 국토부장관의 소관사항이다. 다만 제주도지사가 그 필요성을 인정해 국토부에 주민투표를 요구하라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오영훈 지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제주도의 시간'이 올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본계획 고시 후에 있을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놓고 제주도의 태도를 표명할 것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조만간 국토부의 기본계획 고시가 되면 제2공항 건설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앞으로 박찬식 집행위원장의 제2공항 저지투쟁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게 될까. 그리고 제주도지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기본계획이 고시되면 2년여가 소요될 실시설계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하게 됩니다. 이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협의권을 가진 제주도지사와 도의회의 동의 여부에 따라 제2공항 건설 여부가 결정됩니다. 제도적으로는 공항 건설에 따른 환경피해와 저감방안 등 환경 이슈가 주된 쟁점이지만, 제2공항 자체에 대한 도민 여론도 최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비상도민회의는 반대 여론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홍보와 시민참여 활동뿐 아니라 조류 충돌과 서식지 보호, 숨골 문제 등 환경 이슈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강화해 나갈 생각입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시작되면 도민의 반대 의지를 가시화하기 위한 단호한 비상행동에 돌입하게 되겠지요. 도지사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투쟁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겁니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수요예측부터 시작하여 제2공항 건설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에, 도지사나 도의회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2공항 저지, '개발과 성장' 패러다임 전환할 분기점"

제2공항 저지 투쟁에 앞장서기 전까지 박찬식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제주4.3 관련 이슈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4·3 50주년 범국민위원회 사무처장,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4·3특별법 제정, 유족에 대한 피해보상, 억울하게 옥살이한 수형인 명예 회복 등의 이슈에 실무 총괄 역할을 맡았다. 

그는 그렇게 운동으로 일관한 와중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영국 요크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학교와 충북대학교에서 강의했지만 그를 대학교수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운명적으로 맞닥뜨린 4·3과 제2공항이 그의 인생 후반전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을 맞은 이즈음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상념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까.

"저는 영국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이제는 투쟁의 일선에서 앞장서는 역할은 안 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이 공항 때문에 야전에 서게 됐는데 이 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제주 지역사회를 연구하고 대안들을 고민하고 모색하면서 후배 세대들을 키워내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소를 준비하는 모임을 이미 구성했고요.

제주도는 화산섬 그리고 지리적 위치라는 특이성이 가장 큰 자원이고,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 온 고유한 공동체문화와 콘텐츠가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기후 위기와 생태적 전환이 전 지구적인 화두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제주도는 이런 시대적 과제에 앞서나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소위 개발과 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제주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매우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제2공항을 막아내는 게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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