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머와 단 둘이서 써 내린 파워 오르간 명반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2024. 1. 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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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메이저 - AZ 록 여행기] 리 마이클스의 3집

[최우규 기자]

카랑카랑하면서 진득한 보컬, 하드록 기타리스트 찜 쪄 먹는 듯한 키보드 연주, 입맛을 사로잡는 매콤한 새우 요리(음?). 말도 안 되는 이 조합의 주인공이 리 유진 마이클스(Lee Eugene Michaels)다.

마이클스는 드럼 주자와 단 둘이서 록 공연장을 장악하던 '해먼드 오르간계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다. 가수, 작곡가, 연주자, 편곡자, 프로듀서 역할을 해냈다. 사이키델릭, 하드록, 리듬 & 블루스, 소울까지 소화했다. 그런 그가 왜 무명에 가까운 아티스트로 남았을까.

마이클스는 1945년 11월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이클 올슨(Michael Olsen). 천재가 그렇듯 다섯 살째부터 악기를 만졌다. 196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그의 연주 실력은 입소문이 났다. A&M 레코드사 프로듀서 래리 마크스(Larry Marks)는 궁금증을 못 이기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달려갔다. 연주를 듣고 홀딱 반해 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마이클스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1년 뒤 A&M 레코드 건물 정문에 마이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비에게 "래리 마크스를 만나러왔다. 리 마이클이라고 하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데뷔 앨범 <카니발 오브 라이프(Carnival of Life)>과 두 번째 <리사이틀(Recital)>이 1968년 한 해에 나왔다.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하루는 친구들이 마이클스 집에 놀러왔다. 마이클스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들려줬다. 친구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끝내준다. 그런데 레코드에서는 그 느낌이 안 산다. 다른 사람을 쓰지 말고 그냥 네가 다 해라."

당시 앰프나 스피커 등 새로운 장비가 쏟아져 나왔다. 아티스트들에게 홍보용으로 대여했다. 마이클스는 오르간에 앰프와 스피커를 잔뜩 달아 음량을 엄청나게 키웠다. 그런 극한 상태로 세팅해 연주하며 음악 경로를 찾았다. 그는 "이게 내 길이야. 내가 그동안 했던 것은 내 음악이 아니었다"라고 주위에 말했다.

솜씨는 더욱 좋아졌고, 연주는 더 강렬해졌다. 1968년 그는 지미 헨드릭스와 잼 연주를 했고, <일렉트릭 처치(Electric Church)>로 나왔다. 레드 제플린 오프닝 무대를 맡기도 했다.

3집을 준비하면서 드러머 바솔로뮤 유진 스미스(Bartholomew Eugene Smith)를 만났다. 프로스티(Frosty)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밴드 스웨트호그(Sweathog) 멤버였다. 출중한 기교에 묵직함을 갖췄다. 나중에 레어 어스(Rare Earth), 펑카델릭(Funkadelic),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등 사이키델릭 소울 밴드에도 몸 담았다.

1969년 나온 3집 <리 마이클스>는 스튜디오에서 7시간 만에 녹음됐다. 더빙 없이 라이브 방식을 택했기에 가능했다. 비유하자면 '흥겨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강렬한 레이 찰스(Ray Charles)'다.
 
 1969년 나온 3집 <리 마이클스>.
ⓒ A&M 레코드
 
A면에는 20분 28초짜리 메들리가 실려있다. 레이 찰스의 '텔 미 하우 두유 필(Tell Me How Do You Feel)'로 시작한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듣는 순간 레이 찰스나 윌슨 피케트(Wilson Pickett) 동생이 부르나 싶다. 칼칼하고 힘 있는 소리가 쭉 뻗어나간다.

'도운트 완트 노 우먼((Don't Want No) Woman)', '마이 프렌즈(My Friends)에서는 가슴을 내리치는 듯한 드럼에 해먼드B3 오르간이 탄탄하게 합을 맞춘다. 10분에 가까운 드럼 솔로가 이어졌다. 프로스티 작품인 '프로스티스(Frosty's)'다. 메들리 마지막 곡 '싱크 아일 고 백(Think I'll Go Back)'은 정겨운 소울이다.

B면 첫 곡은 티-본 워커(T-Bone Walker)의 블루스 명곡 '스토미 먼데이(Stormy Monday)'다. 이 곡을 들으면서 '마이클스가 블루스 한 우물만 팠으면 어땠을까' 하는 몽상을 해본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어쿠스틱한 소리를 낸 '후 쿠드 완트 모(Who Could Want More)', 웨스트코스트보다는 스왐프록에 가까운 '완트 마이 베이비(Want My Baby)'가 뒤를 따른다.

마지막 노래는 앨범에서 가장 인기를 끈 '하이티 하이(Heighty Hi)'다. 가스펠 같은데, 알고 보니 약물을 찬양하는 노래다. 어쿠스틱 피아노가 곡 전반에 잘 깔려 있다. '록 음악에서 피아노를 맛깔나게 치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들려준다.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가다

앨범 인기는 그의 명성을 따르지 못했다. 그래도 1971년 <피프스(Fifth)> 앨범 수록곡 '두 유 노우 왓 아이 민(Do You Know What I Mean)'이 인기를 얻으면서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에 오른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온다. 1972년 <스페이스 앤드 퍼스트 테이크스(Space & First Takes)>를 내면서 A&M 레코드사와 그간 쌓인 갈등이 폭발했다. 회사는 대중적 음반을 원했지만, 마이클스는 제 길을 갔다. 두 장짜리 실황앨범 <리 마이클스 라이브(Lee Michaels Live)>를 끝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마이클스는 콜롬비아 레코드사로 이적해 앨범 두 장을 내지만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마이클스는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1988년 가족에게 만들어줬던 매콤한 새우 요리로 음식점을 열었다. 캘리포니아의 마리나 델 레이에 큰 식당을 열었고, 이를 기반으로 '킬러 슈림프'라는 체인점 6곳을 세웠다.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알 쿠퍼(Al Kooper)처럼 리 마이클스도 노래, 작편곡, 건반, 기타 연주에 능했다. 윈우드나 쿠퍼는 뛰어난 연주자들과 교류하며 좋은 음반을 계속 냈다. 마이클스는 교류보다는 독보(獨步)를 택해 음악을 지속하지 못했다. 그래도 A&M 레코드의 초기 음반들은 지금 들어도 걸작이다.

캘리포니아 마리나 델 레이를 가게 되면 새우전문 식당에 가서 마이클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사업하는 것처럼 그때 음악 비즈니스를 하지, 왜 안 했느냐"라고. 부질없는 짓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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