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종교 시대]②"경제만 외치다 철학 사라진 사회…종교 설 자리 없어"

서믿음 2024. 1. 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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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이성우 신부
"천주교 핵심, 하느님 사랑 선포하는 것"
"사회복지 주 목적 아니지만 도움 필요한 모든 곳에 힘써"
"신학대 신입생 수 20명 수준…10년 뒤엔 문제될지도"

편집자주 - 대다수 종교에서 예비 성직자 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물질을 중시하는 시대 가치의 영향도 주요한 이유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종교계는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을까요. 아울러 지금 시대에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속사정을 들여다봅니다.

전 세계 천주교 역사에서 한국은 유례가 없는 국가다. 대다수 국가가 전하는 이의 복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지만, 한국은 전하는 이가 당도하기 전 먼저 찾아가 복음을 접했다. ‘한국천주교회사’에 따르면 1784년 이승훈은 중국 베이징으로 넘어가 프랑스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이승훈을 주축으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뤄지게 됐고, 이 땅에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천주교는 한국 사회에 유무형의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이념에 따른 신분제를 부정하고 만인평등 이념을 설파했다.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가르침은 차별을 당연시하던 신분제 사회에 균열을 일으켰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불의와 싸웠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의를 호령하며 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았다. 명동성당은 불의한 공권력에 쫓기는 이들의 피난처로 자리했다. 이후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물질 너머 존재하는 시대 불변의 가치를 되새기며, 황금만능주의로 치우친 사회를 균형점으로 이끄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 일선에서 2022년 기준 4686명의 사제가 활동하고 있다. 다만 최근 확연한 감소세가 관측된다. 2012년 131명이던 신임 수품 사제는 2022년 96명으로 줄었다. 신학생 수 역시 2012년 1285명이 2022년 821명으로 큰 낙차를 보였다. 노령화와 인구 감소가 영향을 끼쳤겠지만, 종교의 입지가 줄어드는 상황은 다른 이유를 연상케 한다. 1996년 사제 수품을 받고, 2018년 서울대교구 성소국장을 맡은 이성우 신부에게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는지에 관해 물었다. 성소국은 중학생부터 28세 미만까지의 예비신학생을 선별해 신학생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소국장 이성우 신부가 본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제공=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 그간 천주교는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유무형의 가치를 지키는 데 힘써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그런 배경과 무관하게 갈수록 종교에 대한 대중 관심도가 낮아지는 듯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나.

▲일 년에 두 차례 전국적인 천주교 모임이 있는데, 때마다 천주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핵심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사회복지가 천주교의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삶의 형태로 풀어내기 위해 구제, 자선 등에 힘쓰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닮은꼴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시대적 징표를 읽고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최근에는 생명에 집중하고 있다. 죽음의 문화가 만연하고, 생명 경시 현상이 너무 심해졌다.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빈부격차 등 사회정의와 관련한 문제에서 관심을 갖고 때마다 사회에 선포하고 있다.

- 사회정의 활동과 관련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향해서는 ‘정치적’이란 비판도 존재한다.

▲정의구현사제단을 천주교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천주교의 공식적인 사회정의 활동 기관은 정의평화위원회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전국단위 사제 모임이긴 한데, 하나의 임의단체다. 사제 중 사회정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사회 징표를 읽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곳이다. 천주교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귀 기울이시면 된다.

- 대중에게 종교란 자선과 선행을 베푸는 기관으로 읽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럴 역량이나 의지가 없던 부분을 종교가 감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혼모가 크게 이슈가 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을 돌보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족한 실정이다. 천주교는 생명 중시 관점에서 그런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여타 사회 복지는 시설을 마련하고 사람을 돌보는 수준이면 되지만, 생명·환경 분야는 접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대적 필요가 있고, 천주교는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모든 종교가 신자뿐 아니라 성직자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천주교의 성소자(예비 사제·수도자) 수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어떠한가.

▲수치적으로만 보자면 줄어든 게 맞다. 다만 인구 감소율을 고려하면 아직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반에 65명이었다. 당시 신학교에 한 해 30명이 입학했고, 지난 30년간 서울대교구는 900명의 사제를 배출했다. 하지만 현재 고등학교 한 반 인원은 30명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재 신학대 신입생 수는 20명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10년 뒤쯤엔 정말 문제가 될 수 있다.

- 노령화와 인구 감소 추세를 포함해 여러 원인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파악되는지.

▲요즘 젊은이들은 저희 때보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건 경제력과도 관련이 있다. 과거 먹고살기 힘들 때는 다른 걸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1970~1980년대 경제가 부흥하면서 삶의 여력이 생기니 종교에 사람이 몰렸다. 서울대교구가 30년간 사제 900명을 배출했는데, 이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서품식을 체육관에서 하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긍정 효과는 끝이 나고 부정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천주교가 중산층화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 말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다. 또한 스타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특성을 맞추기에도 종교는 한계가 있다. 과거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 신부님이 언론에 비치면 그걸 보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꽤 있었지만, 이제는 관심이 많이 줄었다. 결국 현재 성당에서 마주하는 사제들의 모습이 다음 세대에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 사회적 분위기나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20세기 들어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나서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경제! 경제! 경제!’만 외치다 보니 철학이 없어졌다. 종교인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가치를 좇으려는 사람들인데, 필수 요소인 철학 베이스가 없어졌다. 고등학교는 입시학원이 됐고, 상아탑인 대학은 취업학원이 됐다. 자연스럽게 종교를 향한 관심도 줄어들었다고 본다. 성직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부모가 신앙의 힘을 잃으면 자녀에게 성소의 꿈도 심어주지 못한다. 중학교 때까지 성당 잘 다니다가 입시 때가 되면 일단 대학부터 가라고 한다. 신앙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배어야 하는데 성장기에 끊어지면 열에 아홉은 회복 못 한다.

- 인구 감소에 따른 성직자 자연 감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으나, 다른 이유라면 대처가 필요할 텐데, 성직자 수 감소로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우스갯소리로 종교는 신자들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망하는 게 아니라 성직자가 부족해서 망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 천주교의 경우 성직자들의 직무 역할 비중이 큰데, 성직자가 줄어들면 여러 면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유럽 교회는 사제 평균 연령이 70대다. 사제 한 분이 본당 서너 개를 맡고 있어 생명력 유지가 힘들다. 개신교의 장로처럼 천주교에도 평신도 그룹으로 구성된 사목협의회가 있지만, 그럼에도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제관’ 업무가 많은 편이다. 사제 수가 줄어들면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성소국은 성소자가 사제 역량을 지녔는지 식별한다. 어떤 과정을 거치나.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인성, 지성, 영성 세 가지 자질을 갖춰야 한다. 신학교 입학 전 예비신학교 단계를 성소국에서 관장하며 이때 인성, 지성, 영성을 중심으로 식별한다. 이때 본인 의지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 그만두게 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중학교 1학년 때 200명가량이 오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반으로 준다. 고3 가면 1/10정도 남는다. 와서 보니 내가 생각한 거랑 달라서 그만두거나,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서 나가기도 한다. 과거에는 사제 독신을 많이 고민했는데 이제는 결혼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예전만큼 큰 고민은 아니다. ‘결혼도 못 하고 평생 이렇게…’라는 학생에게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참 많이 설명했다.(웃음) 사실 현재 가장 많은 탈락 사유는 지성(성적)이다.

-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춰야 하나.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할 정도여야 한다. 외국은 교회 내 학교에서 양성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선 정규 대학과 분리되면 학위를 받을 수 없다. 성직자에게 지성이 꼭 필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희한하게 이게 같이 간다. 영성, 인성이 받쳐주는데 지성이 안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인성, 영성이 완벽한데 공부가 안 되면 방법이라도 찾아보겠는데, 그런 고민을 해 본 지 오래다.

- 성직자 감소 상황에서 이미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을 것 같은데 어떤 노력이 있었나.

▲성소자 감소는 이미 20년 전부터 예견됐다. 과거 정규대학(대신학교) 과정 전 예비신학생이 다니는 소신학교가 있었는데, 1978년 고등학교 평준화로 폐교가 됐다. 이후 2009년 동성고등학교에 별도의 반을 만들어 신학교와 동일한 리듬의 기숙 생활을 14년째 이어오고 있다. 초기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뜻이 같은 친구들이 모여 좋아했고, 부모와 학생 모두 만족해했다. 부모는 자녀 신경을 안 써도 되고, 아이는 부모랑 떨어져 있으니 좋다고 했다. 하지만 현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내년부터는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장학금까지 줘 가면서 굉장한 투자를 했지만, ‘이대로 가면 난 신부가 될 수 있어’라는 선민의식 등 여러 문제로 내년부터는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 향후 추가적으로 어떤 대응 방안을 구상하고 있나. 불편을 없애거나 혜택을 주는 유인책도 중요하겠지만, 좀 더 본질을 터치하는 큰 그림이 필요할 것도 같은데.

▲지금껏 예비신학생을 돌볼 때 기존 신학생과 같이 돌봤다. 같이 미사 드리고, 기도하고, 나눔하고, 운동해서 같은 공동체에 속하게 했다. 다만 앞으로는 일선 본당 사제가 더 밀착 관리해야 한다고 보고 방향 전환을 꾀할 생각이다. 성소자 양성 관련해서 교구장 주축으로 TF를 구성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을 목표하고 있다. 성소자는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공동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교회에서 신앙인으로 키워도 집에서 공부만을 강조하면 맥이 끊길 수밖에 없다. 가정사목에 좀 더 신경 쓸 예정이다.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경제에 종속된 느낌이다. 경제만 생각하지 말고 인간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종교가 보인다. 사이비 종교가 아닌 이상 종교가 사회에 끼친 긍정 영향은 매우 크다. 그 맥락 안에서 필요한 존재가 성직자들이다. 우리 모두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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