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건전 경영은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혁신에서 시작된다
[박상욱 기자]
▲ 지난 2022년 5월 6일 회삿돈 614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우리은행 직원 A씨가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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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은 사람의 행동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업종이다. 금융회사의 단기 성과주의에 따른 과도한 이익추구, 미흡한 소비자 보호 문제 등을 좇아가면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문제에 닿게 된다.
우리는 탐욕을 포함한 인간의 결점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 천 년 동안 노력해도 쉽지 않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의 흠결에 최대한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도 선거에 뽑힌 사람이 올바른 정치를 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고, 오히려 무능하고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도 폭정을 하지 않도록 행정부, 국회, 법원이 서로 견제하는 것이 강점이라 하지 않는가?
세계적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Ray Dalio)가 원칙(Principles)이란 책에서 "지배구조란 조직을 이끄는 어떤 사람보다 조직이 더 강한 힘을 갖도록 보장해 주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다"라고 했듯이,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란 주주, 이사회, 경영진, 감사 등이 구성하는 회사 내 견제와 균형의 제도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의 안정, 금융회사의 건전 경영을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건전한 지배구조가 필수라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도 2016년 지배구조법이 시행되었고,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이 고도화되는 등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회사 주인인 주주와 경영자가 분리되어 이들 사이에 이해 상충의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주주와 대리인 간에는 정보의 불균형, 감시의 불완전으로 전문경영인의 도덕적 해이 위험이 존재한다. 주주보다는 자신을 위해 회사자원을 오용한 사례는 미국의 엔론사 회계부정사건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유관계가 명확한 회사나 소유가 분산된 회사나 지배구조가 취약하긴 마찬가지이다. 소유가 명확한 회사는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가 문제고, 소유가 분산된 기업은 임원이 주인과 같은 임원 중심 지배구조가 허점이다. 특히 주주가 배당에만 관심을 갖고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금융지주는 최고 경영자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이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정관계, 언론과 네트웍 형성에 힘을 쏟는 등 금융의 정치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회사 시스템에서 지배구조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구조적 문제다. 지배구조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 규칙부터 제대로 정립해 실효성 있게 운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먼저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감독·감시하는 이사회의 구성 및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최고 경영자가 자기에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경영진과 같은 마음이라면 운동경기에 허수아비 심판을 세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공정한 이사회 구성을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외이사는 금융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공공성, 소비자보호를 이해하는 사람이 선임돼야 하고, 이들의 독립성 확보가 절대적이다.
금융당국에서도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미흡, 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의 투명성·공정성 부족, 이사회의 독립성 결여 등의 문제의식을 갖고 TF 활동을 거쳐, 작년 12월 '30개 핵심원칙의 은행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마련했다.
결국 지배구조의 첫째 핵심사항은 금융회사가 회사특성에 맞게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이끌 수 있는 '룰'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이사회와 경영진을 감독하는 감사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경영자의 경영에 대한 평가, 보상 및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칙을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경영진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퇴진은 물론 배상책임도 져야 한다.
또한 이사회의 감독이 미흡할 경우 주주의 이사회에 대한 견제 기능을 높여야 한다. 주주대표소송 활성화, 주총에서의 권고적 주주제안제도 등을 전향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 언론도 회사가 지배구조를 형식만 갖추어 운영하지 않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지배구조가 조직 내 권력 관계를 의미한다면 내부통제(internal control)는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위험을 관리하는 경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금융회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복잡해지면서 금융사고 발생도 끊이지 않았다. 외국은 1995년 영국 베어링스 은행 직원의 파생상품 전략 잘못으로 인한 은행파산 등 숱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도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금융회사 직원의 계속되는 횡령 사고 등 수많은 내부통제 부실사례가 있다. 이러한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은 내부통제를 회사의 운영리스크 관리로 인식하지 않고, 단지 직원 개인의 준법 문제로 대응해 온 데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인간이 결점 없는 존재라면 내부 및 외부 통제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소중한' 고객의 돈을 다루는 업종으로 금전사고 등 여러 위험이 있고, 복잡해지는 금융시스템에서 외부 규제나 감독이 모든 위험을 예방하기는 불가능해 내부통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배구조법 시행 등으로 내부통제의 제도적 기틀은 어느 정도 갖추었으나, 경영진의 인식, 조직문화는 상당히 미흡하다. 또한 금융업권, 회사에 따라 내부통제가 작동하는 수준은 다르다. 특히 경영진의 의지에 따른 차이는 매우 크다.
지난 부실사모펀드 사태에서도 일부 은행은 '상품선정위원회' 단계에서 파생결합펀드(DLF) 등 부실상품을 걸렀다. 그러나 나머지 은행에서는 사전, 사후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아 회사와 소비자의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다. 내부통제가 잘 작동하면 외부규제나 감독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는 사례이다.
수익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금융업 현실에서 공정, 소비자보호를 내세운 내부통제가 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판매실적에 연동한 강력한 성과보상(KPI)체계, 경영진이 위험관리·준법 부서보다 영업파트에 힘을 실어주는 환경에서는 내부통제가 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상품선정 단계에서 부실상품을 막아 위험을 회피한 사례와 같이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가 회사의 가치를 제고 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한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첫째, 조직 내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선도하는 최고 경영진의 헌신과 결단의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 정직하고 유능한 리더의 선정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더라도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라진다. 미국의 작가 도리스 컨스 굿윈(Doris Kearns Goodwin)은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에서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4인의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개인이나 당파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약속을 지킨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구한 리더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최고의 가치투자자인 워런 버핏(Warren E. Buffet)의 핵심투자전략 중 하나가 정직하고 유능한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을 선정하는 것이라 한다. 리더가 조직문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변수인 것은 분명하다.
둘째, 내부통제 잘못으로 소비자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면 징벌적 과징금, 인적제재 등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금융회사는 수익을 내야 하는 사기업이라 선의에 기대 제어하려 하면 실패하기 쉽다.
마침 지난해 12월 금융회사 스스로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하는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도입과 내부통제 관리의무 부여 등에 대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내부통제 행태의 변화가 기대된다. 종전에는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 자와 사고로 책임을 지는 자가 달라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았다.
법에서는 평소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임원에 대하여는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법규에 따른 제도 마련 등 형식적 요건만 갖추고 실질적인 내부통제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처벌을 면하게 운영해서는 안 된다.
제도개선 자체도 필요하지만 확실한 이행이 더욱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회사의 내부통제 관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지속적 점검을 통해 실질적 행태변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내부통제의 혁신이 이루어지면 그 효과는 매우 크고, 우리나라 금융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든든한 밑받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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