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포인트로 주는 회사... '황당 지시'에 그녀가 한 대응

김성호 2024. 1. 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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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29] <일의 기쁨과 슬픔>

[김성호 기자]

인생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종일 출근해 열심히 일하면서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건지 고민하게 되는 날이 있다. 월급을 벌겠다고 상사의 지시에 쩔쩔매야 하는 내 모습이 하찮은 순간도 적지 않다.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보내는 나날은 곧 일의 슬픔이다.

그렇다고 기쁨의 순간이 없지는 않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하며 나와 네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는 날들,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성과를 올리는 순간의 짜릿함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번 돈으로 저마다의 삶을 꾸리는 건 소소하지만 분명한 행복이며 자부심이다. 오롯한 제 노력으로 삶을 꾸리는 자의 기쁨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자긍심이 된다.

매일 아침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저마다 제 몫의 기쁨과 슬픔을 안고 있다. 어느 기쁨도 한 사람의 전부가 아니고 어느 슬픔도 순전하지 않다. 기쁨과 슬픔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삶을 우리 각자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일의 기쁨과 슬픔 포스터
ⓒ KBS
 
고단한 직장생활 속 뜻밖의 만남

<일의 기쁨과 슬픔> 속 주인공 안나(고원희 분)를 만나보자. 중고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우동마켓이 그녀의 직장이다.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대표부터 직원까지 모두 영어이름을 쓰는데 상사와의 관계는 케케묵은 구식에 가깝다.

안나는 임원에게 보고할 때 "앤드루가 요청하신 자료는 여기 있습니다" 하는 식으로 영어이름 뒤에 극존칭을 섞어 말한다. 외국 회사에서 본 딴 자유분방함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어느 회사에서나 한 번쯤 마주할 법한 비효율도 여전하다. 십오 분 내로 끝나야 하는 스크럼 회의지만 대표 혼자 이십 분씩 떠드니 아침조회처럼 되기 일쑤다. 겉은 스타트업인데 속은 구식 회사나 다를 게 없다.

작품은 매일 판매게시글을 수십 개씩 올리는 유저 '거북이알(강말금 분)'과 안나가 한 테이블에 마주 앉으며 흥미진진해진다. 이 유저가 혼자 너무 많은 게시글을 올리는 게 대표가 보기엔 마뜩찮았던 모양이다. 안나가 나서 문제는커녕 어플이 활성화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치는 충성고객이라 설명했지만 대표는 그와 만나서 게시글을 적게 올리게 하라는 지시를 한다. 유저의 자유로운 활동을 장려하는 플랫폼 대표답지 않은 지시지만 안나는 외근을 나갈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데 웬걸. 거북이알은 안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제가 거북이알이라고 밝히며 안나 앞에 선 건 또래의 젊은 여성 지혜다. 안나가 자신이 우동마켓 직원이라 하자 거북이알은 기꺼이 제 사연을 털어놓는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스틸컷
ⓒ KBS
 
포인트로 월급받는 직장인이라니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거북이알은 월급을 돈이 아닌 카드 포인트로 받고 있다. 사연은 이러하다. 거북이알은 유비카드란 대기업 공연기획팀에서 일하며 유명 피아니스트의 내한공연까지 성사 시킨 유능한 직원이었다. 그 공로로 승진도 약속받았지만 한순간에 모든 일이 꼬여버렸다. SNS를 활발히 하는 회장이 자신의 SNS에서 내한공연 사실을 발표하려 했는데, 이를 알지 못한 거북이알이 절차 대로 홈페이지에 공연 사실을 공지하며 분노를 산 것이다. 회장은 격노했고 그를 다른 부서로 좌천시켰다. 승진이 취소된 건 물론이다.

회장의 치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례적으로 거북이알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포인트로 회원을 유입하자는 발표를 듣고 거북이알의 모든 월급을 현금 대신 포인트로 지급하라 지시한다. 황당한 지시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다. 규정도 무엇도 없이 회장의 말 한마디가 그의 월급을 포인트로 바꿔놓은 것이다.

직원의 자존감을 박살내는 이 같은 이야기는 실화에 근거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난 비슷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들어본 일이 있다. 월급 대신 공장 물건을 챙겨가라는 공장장을, 직원들에게 자사 제품 수백만원 어치를 강매하고 알아서 팔아 쓰라는 회사를, 상품판매를 하지 못하면 수당을 주지 않겠다며 무리한 밀어내기를 지시한 본사 직원을 보았다. 월급 절반쯤을 온라인몰 포인트로 받고서 그걸 현금화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물건을 값싸게 파는 사례 역시 목격했다. 이런 일을 당한 이들 중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저항한 사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서다.

좋은 직업,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이들은 '세상에 그런 일이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면 황당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이 있단 걸 알아챌 수 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스틸컷
ⓒ KBS
 
절망에 그치지 않는 이야기를 보라

흥미로운 건 드라마도, 장류진 작가의 원작 소설도 그저 절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의 슬픔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서 기쁨의 순간을 포착한다.

제 월급이 한순간에 포인트로 바뀐 상황은 거북이알에겐 절망이었을 것이다. 포인트는 카드회사몰 바깥에선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북이알은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꾸는 방법을 생각한다. 몰에서 산 물건을 우동마켓에서 싸게 팔아 현금화하는 것이다. '돈도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포인트'라는 단순한 착상으로, 포인트와 포인트를 맞바꾸기로 한다.

거북이알은 안나에게 말한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이상해져요"라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거북이알이, 안나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소시민들이 제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좀처럼 동조할 수 없는, 그러나 쉽사리 변화시키기 어려운 체계와 마주해서 적당히 적응하고 버텨나가는 방법 말이다.

소설은 대단한 혁명이나 저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정면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서글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회사에서 운 적 있느냐"는 거북이알의 물음에 안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실상은 그도 울어본 일이 있다. 유능한 개발자지만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케빈의 한숨을 듣고서 남몰래 잠깐 눈물을 흘렸던 일이다. 어디 일터에서 울어본 게 그뿐일까. 무너져선 안 될 것이 와르륵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게 안나만은 아닌 것이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스틸컷
ⓒ KBS
 
번져가는 슬픔 가운데 기쁨을 지키는 일

주목할 것은 안나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안나는 거북이알과 대화를 나눈 뒤 레고를 사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레고를 저를 울게 한 케빈에게 선물한다. 서로 이해하지 못할 거라 여겼지만 그에게 다가서 먼저 선물을 건넨다. 둘은 함께 웃고 조금 더 다가선다. 아마도 둘 사이의 무언가가 전과는 달라지게 될 것이다. 희망이다.

거북이알과 안나는 부당한 세계에 동조하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 가운데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쓴다. 거북이알은 포인트를 바꾸고 그 부당함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방식으로, 안나는 보고 싶은 공연에 큰돈을 쓰고 동료에게 먼저 다가서는 방식으로 저를 지키려 한다. 온통 자존감을 갉아먹는 세상 가운데서도 개인이 이뤄내는 소소한 기쁨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이처럼 작은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제 마음과 같지 않은 세상에 내던져져 적응하길 강요받는 개인들이 저를 잃지 않고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가만히 보다보면 안나와 거북이알, 케빈이 나와 너, 우리가 아닌가 싶다. 잘못된 것이 잘못됐다는 걸 잊지 않고서, 그러나 현실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얼마간의 서글픔과 즐거움을 함께 갖고서 말이다.

불행히도 우리가 일의 기쁨을 찾을 곳이 갈수록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들이 거듭된다. 늘어나는 비정규직과 불안해지는 일자리와 갈수록 떨어지는 노동의 가치들이 모두 그렇다. 사람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꼰대와 어린녀석들,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따위로 서로를 구분하고 갈등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며칠이 멀다하고 뉴스에 거듭 등장한다. 갈수록 커져가는 슬픔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지켜야 할까.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고 난 뒤 떠오르는 숙제는 바로 이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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