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강사' 모의고사 지문, 한 문장 빼고 수능과 유사…EBS 교재에도 실렸다

고기정 2024. 1. 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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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수능 영어지문…'일타강사' 모고 지문과 유사
같은 시기 제작된 EBS 수능 교재에도 유사 지문 들어가

대형 입시업체의 '일타강사' 사설 모의고사 문제와 흡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됐던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영역 문항에 대해 교육부가 뒤늦게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 가운데, 같은 시기 제작되던 EBS 수능 교재에도 해당 지문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돼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타강사란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 등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사를 뜻한다.

(왼쪽부터)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 23번 문항과 대형 입시학원의 강사가 배포한 모의고사 문항.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8일 EBS와 감사원은 문제가 된 영어 23번 지문이 2022년 9월에 나온 일타강사 모의고사 문제집과 그해 11월 수능 시험, 이듬해 1월 출간을 앞둔 'EBS 교재 감수본'에 같이 들어가 있었다고 밝혔다. 일타강사의 문제집 제작과 수능 출제, EBS 감수본 집필은 모두 2022년 하반기 이뤄졌다.

교육계 인사는 이날 "한국에서 출판되지도 않은 미국 교수 책의 일부가 그해 수능과 강사 문제집, EBS 교재에서 일치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EBS 측은 2023년 1월 출간 예정이던 EBS 교재에서 '수능 23번'과 같은 지문을 발견하고 최종본에서는 뺐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수능 영어 지문을 맞힌 일타강사가 현직 교사 4명과 '문항 거래'를 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업무 방해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일타강사의 돈을 받은 현직 교사 4명은 수능 모의평가 출제나 EBS 교재 집필 경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능 출제 경향과 EBS 교재 제작을 잘 아는 교사들이 사교육업체 유명 강사와 거래를 한 것이다. 해당 교사들은 2023 수능과 모의 평가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전에 수능 출제와 관련한 경력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사교육을 줄이는 '대항마'로 언급한 EBS 교재는 수능 연계율이 50%에 달하는 만큼 세부적인 '카르텔'을 걸러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교육부는 8일 브리핑에서 일타강사 교재에 나온 영어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에 그대로 출제된 사실을 인정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작년 운영한 '사교육·카르텔 신고 센터'에 일타강사가 현직 교사들에게 돈을 주고 문항을 사들였다는 제보가 들어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 강사가 '수능 영어 판박이' 논란의 문제집을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이 사안도 경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수능 23번 지문'과 '문항 거래' 의혹을 함께 수사 의뢰했다는 것이다.

일타강사 지문과 유사한 수능 영어지문…교육부 수사의뢰

2023 수능 영어지문과 유사한 내용을 앞서 출제한 유명 입시 학원 강사.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유명 입시 학원 홈페이지 갈무리]

앞서 지난 8일 교육부는 지난 2022년 11월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이 입시학원 강사 교재 지문과 비슷하게 출제된 배경에 대해 지난해 7월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해당 지문은 국내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출간한 책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에서 발췌됐다.

해당 지문은 수능 직후 입시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유명 강사가 제공한 사설 모의고사 지문과 한 문장을 제외하고 동일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모의고사를 미리 풀어보고 해설 강의를 들은 학생에게 유리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지문 두 개를 비교해보면, 지문 내용은 같으나 문제는 다르게 출제됐다. 수능은 '주제 파악'에 집중했지만 사설 모의고사는 '낱말 쓰임이 적절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에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직후부터 닷새간 받은 이의신청 660여건 중 100여건이 영어영역 23번 문항에 집중됐다.

하지만 평가원은 영어영역 23번을 아예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정답 오류에 대한 이의 신청이 아니기 때문에 심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평가원은 "영어 23번은 특정 강사의 사설 모의고사 문항과 지문의 출처가 동일하지만, 문항 유형이나 선택지 구성 등이 다르다"고 했다. 유명 강사가 출제한 문항은 지문의 어휘 뜻을 묻고, 수능 출제 문항은 문장 주제를 묻는 3점짜리 문제로 유형은 달랐다.

그러나 지난해 교육부가 '사교육 카르텔 신고 센터'를 운영하면서 문제가 다시 제기되자 교육부는 입장을 바꿨다. 수능이 끝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감사원 역시 교육부와 평가원이 해당 논란을 인지하고도 뒤늦게 조처한 이유에 대해 감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제를 출제한 강사 측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게 맞다"며 별다른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고기정 인턴 rhrlwjd031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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