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부끄럽지 않고 늘 떳떳하길" 김성규의 신념
이순신 영화 '노량' 항왜 군사役
"부담됐지만 애정·책임감이 동력"
“서울 근교 숯가마에 다니는 게 취미예요. 모두 황토색 옷을 입어서 그런가, 저를 아무도 못 알아봐요.(웃음) 조용한 데서 쉬는 게 좋아요. 아무 생각 없이요.”
배우 김성규(38)는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겨서 들떴다. 나긋나긋한 말투로 수줍게 말하는 모습과 달리 연기할 때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스크린을 찢고 나올 듯 관객을 압도한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세도 남다르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다 영화 '기술자들'(2017) 단역으로 데뷔해 '범죄도시'(2017) 양태로 이름을 알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실제 조선족인지 묻을 만큼 실감 나게 배역을 소화했다. '킹덤'(2019) 엄청난 전투력을 지닌 영신, '악인전'(2019)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분하며 현실에 없을 법한 인물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 2번째 이야기 영화 '한산: 용의 출현'(2023)에 이어 노량해전(1598)을 다룬 마지막 시리즈 '노량: 죽음의 바다'에 연이어 출연했다. 극 중 항왜 군사 준사로 분해 더 깊어진 신념을 표현한다. 전편에서 '의(義)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주제를 표현한 중요한 배역으로, 이순신 곁을 지킨다. 이번에는 책임감과 믿음에 대해 말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규는 "준사는 이순신 장군을 따른다기보다 그가 말하는 신념을 따르고자 했다"며 "조선군이 아닌 왜군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간적인 면모와 병사로서 믿음에 대해 고민했다"고 연기 주안점을 꼽았다.
수많은 죽음에 책임감 느낀 인물
김성규는 "나라를 떠나 전쟁, 전투 의미와 처참한 현실, 나라를 떠난 인간에 대한 모습이 잘 보이길 바랐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병사로서 따르는 이순신 장군도 있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아버지 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동료라는 애잔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극 안에 있을 때보다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보며 와닿는 바가 더 컸다고 했다. 김성규는 "죄송스러웠다"고 떠올렸다.
"이순신 장군이 막연히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영화를 보며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그의 외로움과 책임감이 느껴졌죠. 과거 이야기지만 전투 속 장수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다가왔습니다."
준사는 이순신의 '이 전쟁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신념을 따른다. 바탕에는 강한 신뢰가 깔려있다. 김성규는 "전쟁을 통해 무수히 많은 죽음을 봤을 텐데, 내가 모시는 사람이 병사들을 내버리는 모습을 보며 실망을 넘어 인간적인 슬픔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순신의 신념은 나라를 떠나서 믿고 따를 수 있었던 건, 인간 이순신이 느낀 슬픔과 고뇌에 대한 공감이자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서"라고 했다.
'노량' 속 준사의 키워드로 '책임감'을 꼽았다. 그는 "전쟁을 통해 자신이 죽인 수많은 사람, 그 죽음을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 나라를 버린 것에 대한 책임감 등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아주 인간적이고 당연한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성규는 자신이 가진 신념에 대해서도 말했다.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또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요. 애쓴 것 이상으로 사랑받기도 하는데, 내가 잘하고 있나 고민하거든요. '노량' 이순신을 보면서 스스로 애쓴다고 생각했지만, 난 부끄럽지 않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나, 묻게 됐죠. 늘 삶이 떳떳했으면 좋겠어요."
뜨겁고도 따뜻한 이순신에 공감
이순신을 연기한 박해일과 김윤석은 어떤 게 달랐을까. 김성규는 "'한산'에서 박해일은 후광이 보이는 이순신이었다면, '노량' 김윤석은 꺼질 듯 말 듯 한, 뜨겁게 달궈진 숯이 묘한 빛을 내지 않나. 뜨겁고도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김한민 감독은 '한산: 용의 출현'을 촬영하며 김성규를 유심히 지켜봤다. 촬영 도중 "한번 보라"며 '노량: 죽음의 바다' 대본을 툭 건넸다. 작업을 통해 신뢰가 생긴 것이다. 김성규는 "제대가 얼마 안 남았는데 말뚝을 박으라고 하는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그는 "준사는 큰 메시지를 담은, 큰 의미를 따르는 인물이다.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했다. 참혹한 전쟁을 끝내고자 책임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 배우로서도 같았다. 영화를 잘 마무리하고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영화 속 전쟁처럼 촬영의 끝은 언제인가 싶기도 했다"며 재차 웃었다. 그러면서 "김한민 감독이 준사와 이순신 관계처럼 묵묵히 지켜보며 믿어주셨는데, 1년여 촬영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감독님은 권위적이라기보다 솔직한 분이에요. 촬영장에서 무게를 잡기보다 격 없이 소통하는 분이시죠. 현장에서 촬영 끝나고 캐치볼도 같이하고, 사적인 이야기도 잠깐 나눴는데 따뜻하셨어요. 영화를 보고는 대단한 분이라는 걸 다시 느꼈어요."
"현실에 발붙인 배역 연기하고파"
쉴 새 없이 달려오던 김성규는 최근 쉼표(,)를 찍고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연기 동력으로 작동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작품을 엄청나게 고르는 건 아니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최근에 본의 아니게 재충전하며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고 했다.
실제 김성규 성격은 쾌활한 편은 아니다. 낯을 많이 가린다. 연극 '12인'(2011)으로 데뷔해 13년째 연기를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사진을 찍어달라는 팬들 요청에는 수줍다고 했다. 그는 "나 혼자 셀카를 찍어달라는 말을 들으면 인간적인 혼란이 오고 쑥스럽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영화(연기)와 삶을 잘 분리하거나 일과 개인이 혼재된 시기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왜 난 즐길 수 없을까 싶기도 한데, 어렸을 때가 기억난다. 골목 반대편에서 여자 중학생이 걸어오면 돌아나가는 성격이었다. 남중, 남고를 나와서 그런지 수줍었다. 연극을 할 때도 커튼콜 때 좀 웃으라고 혼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최근 사극, 액션을 비롯한 장르성 짙은 작품에서 강렬한 배역을 연이어 맡아왔다. 이제 그는 조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일상적인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아주 멋있게 보이는 배역을 많이 해왔는데, 별 볼 일 없는 캐릭터도 연기하고 싶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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