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부탁 [자식담보대출⑤]
-2명 중 1명 “자식 도리 하기 위해 돈 드릴 듯”
-가족주의 문화, 거절 못하게 막기도…“배신자 낙인”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부모의 금전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자녀는 얼마나 될까. 폭언과 죄책감, 가족주의에 떠밀린 이에게 선택권은 없다.
“죽어야겠다. 돈이 없어서 더 이상 못 살겠다.” 한대윤(29)씨는 지난 2014년 1월 밤, 생을 포기하겠다는 아버지와 마주했다. 한씨가 대학 진학을 앞둔 때였다. 한씨는 가진 돈 320만원을 아버지에게 줬다. 집 앞 마트에서 하루 13시간씩 일해 번 돈이다.
돈을 달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씨를 때린 적도 있다. 지난해 9월 쿠키뉴스와 만난 한씨는 “요구를 거절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내가 죽을 것 같았다.”며 “누나가 대들었을 때, 아버지가 칼로 위협한 일이 생각났다.”고 이야기했다.
경제적 요구는 집요하다. 쿠키뉴스가 만난 부모의 금전 요구에 시달린 청년들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오거나, 돈을 줄 때까지 괴롭힌다.”고 말했다. 일터로 찾아가 돈을 달라는 부모도 있다. 한씨의 아버지도 그랬다. 한씨가 일하는 마트에 가서 아들의 월급을 미리 달라고 상사에게 말했다.
예적금을 깨서 주면 대출을 원한다. 명의까지 달라고 한다. 사단법인 롤링주빌리 상담사례에 따르면, 30대 여성 A씨는 부모로부터 사업자 명의를 빌려달라는 말을 들었다. 부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A씨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공인인증서로 또 다른 대출을 받았다.
죄책감도 청년을 괴롭힌다. 쿠키뉴스가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올라온 부모 대출 관련 게시글 155건을 심층 분석한 결과, 61건의 게시글에서 ‘죄책감’을 확인했다. 작성자들은 “지금까지 부모님이 키워준 은혜를 생각하면 돈을 드려야 하는 게 맞잖아요.”, “제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돈을 더 많이 모았다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텐데 죄송스러워요.” 등의 글을 남겼다. 박영신 인하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등이 지난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자녀들은 부모를 거역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초‧중‧고‧대학생 72.7%가 부모 의견에 순응하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상황을 생각했을 때, 죄송스럽고 불효하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가족주의도 발목을 잡는다. 가족주의는 가족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하는 문화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10월17일부터 31일까지 청년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부모에게 목돈을 줄 수 있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65.4%가 ‘주겠다’고 답했다. 돈을 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부모의 금전요구를 거절하는 자녀는 가족 공동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영우 청년의뜰 팀장은 배신자 낙인을 두려워하는 청년을 여러 명 만났다. 이 팀장은 “부모가 친척을 동원해 자녀를 비난한 경우도 있다.”며 “‘가족 버리고 혼자만 살려는 이기주의자’로 낙인을 찍는 식”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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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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