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뉴욕 지하철 방송 男목소리…"난 여성" NYT 밝힌 사연
"플러싱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위험하오니 플랫폼에서 한발 물러서 주세요."
미국 뉴욕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 목소리. 뉴욕 시민의 발이 돼주는 지하철, 메트로의 안내방송이다. 남자 목소리인 이 방송이 주인공이 실은, 여성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인공은 버니 워겐블라스트(65). 그의 실제 안내방송 목소리는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2009년 녹음한 이 목소리는 2024년 현재에도 뉴욕 지하철 플랫폼에 울리고 있다. 남성성이 확연한 목소리다. 그런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속사정이 있다. 워겐블라스트는 성전환을 해서 여성이 됐다. 그가 이 안내방송을 녹음했던 2009년 당시엔 남성이었지만, 현재는 단발머리에 옅은 붉은 색 립스틱을 바른 여성으로 NYT 인터뷰에 응했다.
워겐블라스트는 NYT에 "그동안 내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웃음거리가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 지하철은 1900년 착공의 첫 삽을 떴다. 비위생적이라거나 치안 문제로 논란거리도 되지만 24시간 운행한다는 점에서 생활비 비싼 뉴욕에선 없어선 안 될 시민의 발 역할을 해왔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이었다. 워겐블라스트의 목소리 역시 365일 24시간 뉴욕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NYT는 그의 목소리에 대해 "차분하면서, 때론 엄격하고 대개 남성적이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위안을 준다"라고 표현했다. 워겐블라스트는 NYT에 "라디오나 이런 안내방송 녹음을 할 땐 그 목소리 자체에 미소를 담으려고 한다"며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달하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구글링을 하면 워겐블라스트에 대해선 두 종류의 사진이 뜬다. 그가 남성이었을 때와 여성인 현재 모습이다. 그는 남성이었던 때부터 교통 전문 언론인으로 성공적 커리어를 쌓아왔다. 성소수자로서의 삶은 순탄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는 소년이었던 10대 시절부터 "내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고 NYT에 털어놨다. 그러다 성전환 수술을 한 교사가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걸 목도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해방구와 속박을 동시에 안겨줬다.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소수자에 대한 반감에 대한 두려움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성소수자로서 일명 '커밍아웃'을 한 건 약 1년 전이라고 NYT는 전했다. 라디오 방송계에서 쌓아온 커리어도 탄탄해졌고, 사회의 성 소수자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그는 "더는 숨길 게 없다고 생각했다"며 "때가 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지하철 안내방송에서 들리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NYT는 전했다. 여성처럼 말하는 발성법 레슨을 받고 있다고 한다. NYT는 "워겐블라스트의 지금 목소리는 한결 부드럽고 여성적"이라고 말했다. 워겐블라스트는 "이게 진짜 나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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