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국민통합은 익숙하지 않은 일도 하는 것

신종수 2024. 1. 9.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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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위해 지지자들 싫어하는
일도 한 DJ 추모 행사 계기로

지지층만 보며 극한 대결중인
여야에 주는 교훈 되새겨야

나라의 미래 위해 국민통합,
중도 실용의 정치 절실하다

숙련된 골퍼들은 나름의 구질을 갖고 있다. 살짝 오른쪽으로 휘는 페이드나, 왼쪽으로 휘는 드로 구질이 몸에 배게 된다. 페이드든 드로든 일관성 있는 구질을 갖는 것은 아마추어 주말골퍼들의 로망이다. 요즘 세계적인 프로 상당수가 공이 그린에서 많이 굴러가는 드로보다 사뿐히 떨어지는 페이드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이것이다. 프로는 페이드 구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드로를 칠 수 있다. 아마추어는 오른쪽에 물이 있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코스 같은 데서도 페이드 외에 다른 구질을 구사하지 못해 공을 물에 빠뜨리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 일변도의 국정운영을 하는 것은 국익과 국민통합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 정권이지만 때로는 보수적인 국정운영과 정책을, 보수 정권은 그 반대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는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엊그제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행사가 열렸다. DJ는 ‘전두광’을 용서해 줬다.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노태우 특별사면을 제안해 이뤄졌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고,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광주 시민들이 부르르 떨 정도로 싫어하는 사면이었지만 국민통합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로마서 12장19절)는 성경 말씀에 따랐다고 한다.

DJ는 지지자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박 전 대통령과의 화해를 위해서였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DJ의 유명한 어록 또한 드로든 페이드든 필요할 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DJ 탄생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이 나라에 꼭 필요한 화합과 공감의 경험을 그때(IMF 금융위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모든 국민들과 함께 해내셨다”며 자신도 영남과 호남에서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DJ 생가 등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통합을 약속한 적이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이 했던 발언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대중 정신하면 가장 먼저 내세울 것이 국민통합이다. 대통령이 되셔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분들을 다 용서하고 국민 통합이라고 하는 큰 밑그림으로 IMF 국난도 극복했다. 위대한 김대중 정신을 잘 계승해야 한다. 저와 국민의힘은 양식 있고 존경받는 민주당 정치인들과 멋진 협치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뒤 꽤 시간이 지났지만 시도조차 없다. 윤 대통령은 오히려 이념과 진영 대결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위원장의 국민통합 약속도 총선이 끝나면 흐지부지되려나. 한 위원장이 “어떤 이슈에선 오른쪽의 정답을 낼 것이고 어떤 이슈에선 그보다 왼쪽의 정답도 찾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꼭 실천하기 바란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지지자들이 싫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지지자들이 싫어하는 일을 한 대통령 중에는 DJ와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추진하는 바람에 지지율을 다 까먹어 10%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DJ와 함께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 슈뢰더 총리도 좌파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노동 유연성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을 추진하다 정권을 잃었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 정파를 초월한 결단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음 메르켈 정권에서도 이 정책이 계승됐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이념을 초월한 중도 실용의 국정운영이 필요하다. 테러까지 부르는 양극단의 적대적인 증오 정치도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중도 실용의 정치가 없는 데서 자란다. 국민통합은 지도자의 의무다. 평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구질로 공을 치더라도 필요할 때마다 다른 구질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페이드나 드로 하나만 칠 줄 알면 프로가 아니듯,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지지율에 연연하는 지도자는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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