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잦은 아파트 화재 비극, 사전에 막으려면
지난 2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 15층짜리 아파트의 9층에서 난 불로 50대 남성이 숨졌다. 앞서 지난 연말 성탄절 새벽에 서울 도봉구 방학동 23층짜리 아파트의 3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2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다쳤다. 화재 와중에 두 아이를 안고 4층에서 뛰어내린 30대 가장이 안타깝게 숨졌다.
아파트 거주 비율은 지난해 51.9%로 절반을 넘었지만, 안전해야 할 거주지인 아파트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빈번하다. 지난 1년간 아파트에서 화재 299건이 발생해 35명이 사망했다. 특히 건축 규제 완화로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화재 대비가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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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화재 299건 발생, 35명 사망
평소 두 개 방향 피난로 확보해야
소화기 비치, 전기용품 점검 필수
」
화재 시 인명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신속한 화재 인지, 초기 소화, 안전한 대피다. 대부분 인명 피해는 새벽 1~4시에 집중되고 있다. 수면 중에 화재 인지가 늦어져 유독가스가 건물 전체로 확산해 대피가 어려워 발생하는 것이다. 유독가스에 질식사한 경우가 아파트 화재 사망의 90%를 넘는다.
그러나 화재 감지 설비의 신뢰도는 여전히 낮다. 지난해까지는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각 세대 내부의 주거공간에는 소방 점검이 의무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다행히 법이 개정돼 올해부터는 각 세대 내부의 화재 감지 장치를 포함한 소방 설비를 2년에 1회 이상 점검하도록 했으니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화재 초기에 가장 효과적인 진압 설비는 스프링클러다. 하지만 20여년 전에 지은 아파트에는 당시 법 규정의 미비로 대부분 설치하지 않았다. 구축 아파트는 비용을 들여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 해도 층고가 낮아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화재 시 신속하고 안전한 대피가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두 개 방향의 피난로를 확보하면 대피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아파트에서 발코니는 피난로를 제공하고 상층부로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는데 효과적인 공간이다. 수많은 연구와 실험에서 입증됐다.
하지만 국내 아파트는 거주 공간을 늘리기 위한 확장 공사로 인해 발코니가 사라진 경우가 많다. 수납공간으로 전용하는 바람에 대피로 역할을 못 하는 경우도 많다. 2005년 이후 정부가 앞장서서 이런 위험한 행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줬으니 화재 안전의 관점에서 보면 개탄스럽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려는 개인의 욕망에다 건설업체의 아파트 분양 이윤 극대화 의도가 안전을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는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는 상상할 수 없다. 미국도 주거 공간 외부에는 철재 계단을 설치해 두 방향 피난로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은 화재 피난로 확보에 둔감하다. 이제라도 두 방향 피난로 확보를 위한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건물은 한번 지으면 고치기 어려우니 신축 단계에서 안전장치를 반영해야 한다.
아파트 화재에서 모두의 안전을 지키려면 아파트 거주자들도 다음 세 가지를 숙지해야 한다. 첫째, 화재 경보 설비가 울리면 화재 여부를 확인하고 대처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점검하나 보네”, “또 오작동인가” 하는 식으로 방심하거나 타성에 젖으면 안 된다. 119 신고보다 더 중요한 행동은 “불이야”라고 외쳐 주변에 화재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그래야 유독가스가 퍼지기 전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가정마다 소화기를 현관 근처에 비치하고, 다양한 화재 대피로를 평소에 점검해둬야 한다. 만약 우리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계단을 이용해 지상으로 대피하는 방법 외에 옥상으로 피난이 가능한지 점검해야 한다. 대피 공간에 적치물은 없는지, 칸막이벽을 부수고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구조인지도 점검하는 것이 좋다. 특히 화염의 확산을 차단해 피난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방화문이 제대로 닫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셋째, 각 가정의 전기용품은 정해진 용량을 초과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전기용품에 먼지가 끼지 않도록 청결을 유지하고, 콘센트를 문어발식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보일러실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조금 열어 두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평소 우리 아파트의 화재 위험 요인을 세심히 점검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자세가 필요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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