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파월의 ‘인플레 파이팅’에 속으로 멍드는 기업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공격적으로 돈줄을 좼다. 1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5.25%포인트나 끌어올렸다.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 파이팅 이후 40여년 만에 가장 가파른 인상이었다. 이 정도 통화긴축이면 사달이 여러 곳에서 나기 마련이다. 미국 내에서 파산 도미노가 발생하거나 미국 밖에서는 주요 신흥국 한 두 곳은 외환위기에 빠져야 한다. 지난해 초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미 중소 시중은행이 무너지기는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진정됐다. 스리랑카 등 군소 신흥국이 환란에 빠졌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을 뒤흔들만한 신흥국이 아직 외환위기를 맞지는 않았다.
가짜 긴축(phoney tightening)인가. 시장 참여자들이 어리둥절하다. 금융위기 전문가인 케네스 로고프가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신흥국이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 등은 “이번은 다를 수 있다”며 “침체나 위기 없이 인플레 파이팅이 끝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렇다고 수면 아래 위험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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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준 40년 사이 최강 통화긴축
수면 아래 긴축 스트레스 쌓여
미 기업 빚더미 속 고금리 부담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돈 1300조
영업해 번 돈으로 이자 못 내는
좀비 기업 비중 20%선 넘어서
」
유동성 부족사태 우려
미국 리스크감시 회사인 네드데이비스리서치그룹(NDR)은 최신 보고서에서 ‘유동성 위기’를 올해 최대 리스크로 꼽았다. NDR은 Fed의 양적 긴축(QT)을 주목했다. Fed는 2022년 6월 이후 1년 7개월 정도 사이에 미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1조3000억 달러(약 1690조원)어치 처분했다. 그 만큼 달러가 흡수됐다. NDR은 “지금까지 QT를 통해 Fed에 흡수된 달러는 대부분 초과 여윳돈이었다”며 “이 돈은 시중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가 역환매조건부거래(RRP)를 통해 Fed에 맡겨둔 것으로 사실상 시중 달러와는 거리가 있는 돈”이라고 했다. 문제는 올해부터다. “Fed의 QT와 미 재무부의 무더기 국채발행이 시중은행 준비금을 줄어들게 할 전망(유동성 부족)”이라고 NDR은 밝혔다. 그 결과 시중은행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여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
NDR은 유명한 애널리스트인 네이선 데이비스가 세운 투자분석회사다. 리스크를 조기경보 하는 곳이다. 이런 회사의 숙명대로 모든 경보가 적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4년 유동성 경고는 미 기업의 재무상태에 비춰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우선 미 기업이 금리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미 투자적격 회사채 가운데 낮은 신용등급인 BBB의 금리가 2023년 5~6% 사이에서 움직였다. Fed의 기준금리가 5.5%인 점에 비추면 회사채의 금리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 기업 경영자들은 2020년 이후 초저금리 시대에 젖어있다. 그 바람에 현재 금리 수준이 살인적으로 느낀다.
월가 사람들은 요즘 미 기업 경영자들이 느끼는 충격이 1994년 7월 캘리포니아 부촌인 오렌지 카운티 파산 전야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기업인들이 저금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그해 1월 당시 Fed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그 충격은 오렌지 카운티 외에도 존슨&존슨 등 주요 기업을 강타했다. 고정금리를 변동금리로 맞바꾸는 금리 스와프거래를 했던 기업이 가파르게 오르는 금리 때문에 휘청거렸다.
올해 미 회사채 1조 달러 만기
현재 미 기업이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모양새다. 저금리 시대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빌리는 형식으로 빚을 늘린 탓이다. 그 바람에 올해부터 갚아야 할 돈이 어마어마하다. 올해 안에 1조 달러(약 1300조원)를 상환해야 한다. 2025년과 26년에 갚아야 할 돈도 각각 1조1000억 달러 수준이다. Fed가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미 기업 경영자들은 고금리 이자로 빚을 내 저금리 부채를 갚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미 기업 가운데 우량한 기업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뉴욕대 에드워드 알트먼 교수(금융)가 개발한 ‘알트먼 Z-스코어’에 따르면 2.66(제조업 기준) 이상이어야 우량 기업이다. 이 점수 이상이면 단기적으로 파산에 이를 확률이 아주 낮아서다. 반대로 Z-스코어가 1.81 이하이면 단기간에 채무를 불이행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런 Z-스코어를 기준으로 우량한 미국 기업의 비중은 요즘 10%도 채 되지 않는다. 빚을 감당할 체력이 저점이란 얘기다.
우량 기업 감소는 곧 좀비 기업의 급증이다. 좀비 기업은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회사다. 미 금융컨설팅 회사인 페이솜에 따르면 좁은 기준으로 평가한 좀비 기업 비중은 20% 선을 넘는다. 1990년 이후 가장 높다. 넓은 기준을 적용하면 좀비 기업 비중은 더 높아진다. 미 기업의 부도 가능성은 투자자(서학개미)들에겐 리스크다. 부도가 급증하면 최악의 경우 미 경제가 예상과 달리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미 파산정보 제공업체 에픽(Epiq) AACER에 따르면 법인과 개인 파산 등 전체 파산신청 건수가 2023년엔 44만5186건이었다. 이는 한해 전인 2022년 37만8390건보다 17.6%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법정 관리 아래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해달라는 신청(챕터11)은 6569건으로, 한해 전 3819건보다 72% 급증했다. 수면 아래에는 통화긴축의 피로가 똬리를 틀고 있는 셈이다. FT 마틴 울프의 예측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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