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마켓 나우] 여유 부릴 틈 없는 국제 반도체 지원 전쟁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진짜 경쟁은 시장이 아니라 랩에서 이뤄진다”라는 말은 최근 추세에 맞춰 이렇게 바꿔야 한다. “기업의 진짜 전쟁터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와 의회다.” 그만큼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다. 여유 부릴 틈이 없다.
미국은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기업투자에 390억 달러(약 50조원), 연구개발분야에 132억 달러(17조원),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 25%를 지원한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기업투자에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지원하고 연구개발부문에도 80억 유로(약 12조원)를 투자한다. 독일은 149억 유로(21조원)를 지원하고 TSMC와 인텔의 공장을 유치했다. 일본은 반도체 관련 투자지원용으로 20조원 규모의 예산을 확보하고, TSMC(4조5000억), 마이크론(1조9000억). 래피더스(약 7000억) 등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고 있다. 삼성도 200억 엔(약 1800억원)의 보조금을 받고 일본에 연구소를 설립한다.
우리나라는 기업규모에 따라 설비투자의 15~25%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줄 뿐이다. 수백조 원을 투자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민간기업의 투자를 합산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정치권은 정부의 반도체 연구개발지원이 투자규모는 물론 지원 방향과 지원 속도에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경쟁국들이 수조에서 수십 조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이유는 반도체 연구개발에 그만큼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실험 한 번에 억 단위 예산이 필요하고, 한 대당 수십 수백억에 달하는 장비를 써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반도체 연구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큰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사업의 경우 사업비가 연간 1000억에 불과하다. 국립반도체연구소도 없어서,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된 지 5년도 넘었다. 일본·대만은 차세대이종집적연구소를 설립해서 이미 초격차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반도체 기술개발에 들어가는 예산은 이미 개별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섰다. 막대한 투자 문제를 저절로 해결하는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것은 없다. 인텔·퀄컴 같은 글로벌기업들도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아직 우리 민간기업들이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한 것 같아서 걱정이다. 국민도 반도체 분야의 투자와 여타 분야의 투자를 비교하면서 엄청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는 착시효과 때문에 과감한 지원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기 쉽다. 이제 솔직하게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한 투자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대로는 정말 어렵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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