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일파만파···PF 위험 노출된 건설사들 ‘살얼음판’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1.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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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능력평가 16위 건설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건설업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중이다. 태영건설 위기의 진원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인 만큼 PF 우발채무가 많은 건설사들은 저마다 ‘제2의 태영건설’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추진

‘맹탕’ 자구안에 워크아웃 난항 우려

태영건설은 2023년 12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워크아웃 추진을 결정했다. 회사 측은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으로부터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부실징후기업 통보를 받고 워크아웃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고령의 창업주인 윤세영 명예회장까지 경영 일선 복귀를 선언하며 시장 우려에 적극 대응했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셈이다.

태영건설은 그룹 환경 전문 계열사 에코비트를 매각해 매각자금을 태영건설에 지원하는 안을 발표했다. 골프장 운영 업체 블루원의 지분 담보 제공과 매각 추진 계획도 함께 내놨다. 다만 채권단 관심 사항인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규모나 SBS 지분 매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산은 측은 태영건설의 자구안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자구 노력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당초 태영그룹 지주사 TY홀딩스는 물류 회사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산업은행과 약속했다. 하지만 이 중 400억원가량만 태영건설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TY홀딩스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됐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태영건설의 채권자 설명회가 끝난 뒤 “태영그룹이 당초 약속한 자구 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채권은행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상황”이라며 “채권단을 설득하기 위해 실질적인 자구 노력을 추가하길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오는 1월 11일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할 제1차 금융채권자협의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채권단이 이를 받아들이면 2013년 쌍용건설에 이어 10년 만에 시공능력평가 30위 내 ‘1군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개시하게 된다. 하지만 태영 측 입장이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워크아웃이 부결돼 법정관리로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건설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사옥. (연합뉴스)
건설업계 불안한 모습 역력

신세계, 두산건설 부채비율 300% 넘어

태영건설 워크아웃 여파로 연초부터 건설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고금리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이 경색되면서 ‘불패 신화’를 자랑했던 서울 강남권 한복판 개발 사업까지 난관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건설업계와 금융권 전반이 ‘부동산 PF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먼저 부동산 PF 구조부터 들여다보자. PF 대출은 자금과 신용이 부족한 시행사 즉 개발 업체가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 등을 지으면서 미래에 들어올 분양 수익금을 내세워 금융사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건설사가 직접 대출을 일으켜 땅을 사고 시공, 분양까지 책임지는 구조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건설사는 시공만 맡고, 시행사가 거액의 자금을 빌려 토지 매입, 분양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부동산 PF는 2000년대 들어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 상업시설 등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시행사는 자금, 신용이 부족해도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금융사는 높은 이자를 챙길 수 있어 ‘윈윈’이었기 때문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공사 일감이 다양해지는 만큼 나쁠 게 없었다.

국내 은행권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PF 대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저금리 기조 덕분에 저축은행, 보험사 등 2금융권까지 부동산 PF 시장에 가세했다.

부동산 PF 대출은 ‘브리지론’과 ‘본PF’로 나뉜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토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를 밟아야 하는데 사업 초기 단계에서 증권사, 저축은행, 보험사 등 2금융권이 브리지론 형태로 시행사에 자금을 빌려준다. 아직 인허가조차 받지 않아 사업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만큼 금리가 10~20% 수준으로 다소 높다.

브리지론으로 땅을 확보하고 인허가도 마치면 시행사는 1금융권인 시중은행에서 본PF 대출을 받아 고금리 브리지론을 상환하고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한다. 이때 영세한 시행사 대신 신용도 높은 대형 시공사가 보증을 서준다. 분양에 들어가면 계약금이 들어오고, 브리지론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 사업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구조가 마련된다.

이런 방식은 부동산 호황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미분양이 급증하고 개발 사업이 삐걱대면 PF가 ‘위험한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자금 회수에 난항을 겪는 사례가 급증했다. 미분양 물량이 속출하면서 시행사 수익성이 악화돼 원금 상환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례로 서울 강남역과 멀지 않은 서초구 영동플라자 개발 사업은 멈춰 선 지 오래다. 당초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 상가를 신축하기로 했지만 브리지론에서 본PF 전환에 실패한 후 부지 공매의 최종 입찰이 유찰되면서 대주단과의 협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청담동 도산대로 인근 부지 고급 주거시설 개발 사업도 멈춰 섰다. 시행사가 자금난을 맞으면서 2023년 2월 토지와 사업권이 공매로 넘어갔지만 7월 겨우 대주단을 설득해 브리지론을 2023년 말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좋아지지 않은 탓에 브리지론을 2024년 4월까지 한 차례 더 연장했지만 공사가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시장에서는 주로 2금융권이 사업 초기 단계에 돈을 댄 브리지론이 부실 리스크의 ‘핵심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다올투자증권은 2023년 9월 말 기준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만기 연장으로 버티는 브리지론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본PF로 전환하려면 무려 60조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하다. 브리지론의 최대 절반가량이 최종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익스포저)도 급증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은 163조4000억원으로 집값이 급등하기 전인 2017년 말(80조6000억원)과 비교해 2배 이상 뛰었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도 2020년 말 92조5000억원에서 2023년 9월 말 134조3000억원으로 치솟았다. 이 때문에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를 불러온 부동산 PF 부실 리스크가 새해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은행 등 제1금융권보다 부동산 익스포저가 큰 제2금융권은 위기 대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6조3000억원으로 연체율은 13.85%에 달했다. 대출 잔액이 9조8000억원인 저축은행 연체율은 5.56%였다. 통상 제2금융권은 은행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 사업장에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워크아웃을 맞은 태영건설 위기의 진원지도 PF였다. 서울 성수동 오피스빌딩의 PF 대출금 48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위기에 내몰렸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이 보증한 부동산 PF 잔액은 4조4100억원에 달한다. 태영건설은 2023년 1~3분기 별도 기준 97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부동산 PF 부실로 부채비율이 478.7%로 치솟았다. 문제는 단기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태영건설의 2023년 3분기 기준 순차입금만 1조9300억원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PF 부실과 맞물린 주요 건설사 ‘블랙리스트’까지 떠도는 모습이다. 신세계건설, 두산건설, 코오롱글로벌, HJ중공업 등 부채비율이 높은 건설사들이 ‘제2의 태영건설’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300%가 넘는 건설사는 HJ중공업(835.06%), 신세계건설(467.9%), 두산건설(384.62%), 코오롱글로벌(313%) 등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보통 부채비율이 300%를 넘는 경우 재무 현황이 ‘고위험’인 것으로 분류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재무지표가 악화된 신세계건설, 코오롱글로벌 등은 대부분 그룹 지원이 가능해 당장 부도 위기에 빠질 위험은 크지 않다”면서도 “워낙 부동산 경기가 악화돼 PF 리스크가 심화된 만큼 연내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귀띔했다.

시공능력 10위권 건설사 태영건설조차 위기에 내몰린 만큼 대형 건설사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현대건설의 PF 대출 보증 잔액은 2조2620억원에 달한다. GS건설(1조7260억원), 롯데건설(1조5080억원), 대우건설(1조1110억원) 등 다른 대형사들도 1조원 넘는 PF 대출을 들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태영건설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GS건설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A(긍정적)’로 낮췄다. 동부건설 신용등급 역시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2023년 들어 시공능력 75위 대우산업개발, 109위 대창기업을 비롯해 19개 건설사가 부도 처리된 만큼 규모를 가리지 않고 부도 건설사가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 대책 내놓는다지만

PF 리스크 잠잠해질지 의문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채권단과 함께 태영건설이 진행하는 PF 사업장 60곳에 대한 대대적 교통정리에 나설 예정이다. 돈줄이 막혀 사업 진행이 어려운 곳은 시공사를 교체하거나 사업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고, 회생이 불가능한 곳은 서둘러 매각을 추진해 피해가 번지는 것을 막기로 했다.

그럼에도 건설사 PF 리스크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2023년 10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5만8299가구 중 90%가량인 5만972가구가 수요가 적은 지방에 몰려 있다. 미분양 우려로 착공을 못하고, 분양을 통해 대출을 갚는 길이 막히자 PF 부실도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PF 시장 혼란이 장기화되면 건설 시장이 얼어붙고, 주택 공급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공급이 부족하고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이라 정부가 민간 공급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 내놔야 할 때”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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