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 노인 집에도 타이머콕 보급, 가스 누출 사고 막는다
지난 3일 오후 1시쯤 전남 담양군 수북면 두정리에서 혼자 사는 서질례(81)씨 집은 간만에 사람 온기가 돌았다. 사회 공헌 활동을 위해 마을을 찾은 한국가스안전공사 광주광역본부 소속 직원들 때문이다. 가스 검지기와 종이 상자 몇 개를 손에 쥔 직원 4명은 서씨와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고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가스안전공사 직원들은 이날 서씨 집 주방에 타이머콕을 달았다. 타이머콕은 가스 밸브 근처에 설치하는 손바닥 하나 크기의 전자기기다. 설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가스 밸브를 차단해 주방에서 발생하는 화재나 가스 누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서씨처럼 혼자 살면서 건망증 증세가 있는 노인에게 특히 필요한 제품이다. 서씨는 얼마 전에도 깜빡하고 가스불을 켜 놓은 채 몇 시간 동안 놔둬 냄비를 다 태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안심해도 괜찮은 것이냐”라고 직원들에게 거듭 물었다.
타이머콕은 기본값인 20분부터 최대 12시간까지 대기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담당 직원은 서씨 집 타이머콕의 차단 주기를 20분으로 설정했다. 다소 사용이 불편하더라도 혹시 모를 사고를 막는 쪽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서씨 집을 찾은 마을 이장 김남영(64)씨도 직원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인 남성이라 온갖 대소사를 전담한다는 그는 “건전지 교체 시기가 되면 제가 책임지고 달아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가스안전공사는 2008년부터 65세 이상 취약계층 경로당 등을 중심으로 타이머콕을 보급해왔다. 2022년 한 해 동안만 공사 직접 사업으로 전국 1만3569가구에 타이머콕을 설치했다. 지자체 협력사업 등을 통해서도 같은 기간 13만5141개의 타이머콕을 보급했다. 아직 서씨 집처럼 사업 차례가 돌아오지 않은 집들도 일부 남아 있다. 서씨는 이번 사회 공헌 활동 덕분에 올 겨울부터는 마음 놓고 가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가스안전공사의 시설 개선 사업 성과는 마을 곳곳에서 확인됐다. 인근 노인 10여명이 모여 가끔씩 식사를 하는 두정리 노인회관은 이미 몇 달 전 가스 누설 자동차단기와 타이머콕으로 ‘완전 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주방 두 곳 중 한 곳에만 타이머콕이 달려 있던 두정리 노인회장 박여암(85)씨의 집에도 이날 두 번째 타이머콕이 달렸다. 고령으로 걸음걸이가 느릿해진 박씨는 “명절 때 친척들이 찾아오면 주로 쓰는 주방인데 여기까지 신경을 써주니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몇몇 건물 외벽에서는 또 다른 사업 성과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액화석유가스(LPG) 금속 배관 교체다. 이곳처럼 사업성이 떨어지는 시골 지역은 도시가스가 개별 주택까지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집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LPG나 등유 등을 사용해 난방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가스를 사용하는 2457만4000가구 중 15.0%(369만4000가구)가 도시가스 대신 LPG를 사용하고 있다. 서씨도 LPG를 쓰는 주민 중 한 명이었다.
문제는 기존의 LPG 가스 배관이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고무 재질이었다는 점이다. 건물 외벽을 타고 설치되는 성격상 날카로운 물체에 찢기기라도 하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에 가스안전공사는 2011년부터 LPG 배관을 전부 금속 배관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만4000가구의 배관을 교체해 누적 교체 실적을 총 80만3000가구까지 늘렸다. 올해는 목표 가구수를 더 늘려 3만7000가구에 금속 배관을 보급할 예정이다. 서씨와 박씨도 이미 수년 전 가스안전공사의 도움으로 금속 배관을 달았다.
가스안전공사의 사회 공헌 활동은 이처럼 공사의 업무 특성과 연관된 형태로 이뤄진다. 청소기·가스레인지 등의 물품을 구매해 마을에 증정하는 통상적인 공헌 활동이 존재하고 여기에 타이머콕·일산화탄소 감지기 보급 같은 공사 특유의 업무가 더해지는 식이다. 지난해에는 가스안전공사 직원 666명이 총 5344만원을 모금해 32차례의 사회 공헌을 실천했다. 사회 공헌 과정에서 안전기기를 보급하거나 시설을 개선한 곳도 584곳에 이른다.
이날 두정리 공헌 활동 역시 마을회관에서의 짤막한 물품 증정식을 마친 이후 타이머콕을 설치하고 이들 가정의 가스 누설 상태를 점검하는 수순으로 진행됐다.
광주광역본부의 경우 지난해 총 7차례의 사회 공헌 활동을 정식으로 수행했다. 가끔은 지자체의 요청을 받아 소외 계층의 안전 상황을 확인하러 직접 나설 때도 있다. 임현철 가스안전공사 광주광역본부장 직무대행은 “수시로 지자체로부터 독거노인 등 지자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취약계층의 명단을 넘겨 받아서 집집마다 방문하고 있다”며 “실제로 시급한 문제가 있을 경우 지자체에 비용 협조를 구해 개선 작업까지 마무리한다”고 설명했다.
꾸준한 시설 개선 사업의 영향으로 국내 가스 관련 사고는 점차 줄어드는 중이다. 1995년 577건에 이르렀던 연간 가스 사고는 2015년 118건을 거쳐 2022년 역대 최소인 73건까지 떨어졌다. 사망 사고의 감소세는 더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다. 연간 가스 사고 사망자수는 1995년 143명에서 2015년 18건까지 떨어졌고 2022년에는 8건까지 줄어들었다.
담양=글·사진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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