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년간 봉사로 ‘지각’ 결혼에 번아웃 “올인 봉사 씁쓸”

김아영 2024. 1. 8. 19:1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마르다 세우기] <상> 봉사로 번아웃된 마르다들
국민일보DB

새해를 맞아 교회마다 새로운 사역으로 분주한 ‘마르다’들이 많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수많은 마르다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며 성장했지만, 이면에는 마르다들의 소진과 희생으로 인한 아픔도 적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봉사에 열심인 마르다보다 말씀을 사모한 ‘마리아’를 칭찬했다(눅 10:38~42). 영성과 봉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순 없을까. 한국교회에 팽배한 ‘번아웃 마르다’ 실태를 들여다보고 건강한 사역 회복을 위한 방안을 짚어본다.

대학 시절부터 교회 여러 부서에서 봉사하며 헌신한 윤소라(가명·47)씨.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현장 예배에 복귀하지 않은 그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가 됐다. 누구보다 교회 사역에 열정이었던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봉사 때문에 ‘지각 결혼’

2015년 30대 후반이었던 윤씨는 한 후배가 던진 질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윤씨는 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누나 아직도 청년부야?’라며 저를 걱정하는 후배 이야기에 만감이 교차했다”면서 “그동안 제 삶을 돌보지 않고 봉사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제 삶을 걱정하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반문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윤씨는 이듬해 믿음의 가정을 일궈 자녀도 출산했다. 성경인물 마르다처럼 봉사에 열심이었던 그가 출산 후에는 봉사는커녕 예배조차 제대로 드리기 힘들었다. 그는 “자녀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진 봉사는 엄두도 못 낸다. 팬데믹 후 아직 현장 예배에 복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삶을 뒷전으로 하고 봉사에 올인하는 태도는 지혜롭지 못한 것 같다”며 “취업 결혼 육아 등 치열한 삶 속에서 성도들이 봉사까지 하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땜빵사역’ 담당 PK의 비애

부모 사역에 동참하는 목회자 자녀(PK·Pastor Kids)들은 ‘봉사의 굴레’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지난해 목회자인 아버지가 40년 가까이 시무한 교회에서 은퇴하자 나혜미(가명·39)씨는 해방감을 느끼며 지역 교회에 등록했다. 성도 30여명이 출석하는 작은 교회에서 나씨와 언니, 남동생 등 삼남매는 어릴 때부터 교회의 숨은 일꾼으로서 부모 사역을 묵묵히 도왔다.

나씨는 교회학교 보조교사로 시작해 20대 중반부터는 찬양팀 인도, 주보 제작, 설교 피피티(PPT) 담당까지 1인 다역을 맡아왔다. 나씨는 “그동안 교회에서 누군가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나씨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10여년 간 PK 연합모임에서 영적인 힘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되는 교회 사역이 짐처럼 다가온다면 잠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사역하고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영적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육아 부모들의 봉사 고충

아들 두명을 키우는 워킹맘 최정화(가명·42)씨는 최근 2년간 교회학교 봉사직을 잠시 내려놨다. 육아와 봉사를 겸하다 영적·체력적으로 소진되는 것을 느꼈다.

최씨가 출석하는 경기도 광명의 한 교회는 장년 300여명이 출석하는데 팬데믹 타격으로 교회학교가 크게 쪼그라졌다. 그가 교사로 활동한 영·유아 부서(0~4세)는 늘 인력난에 시달렸다. 최씨는 “영·유아부, 유년부의 경우 여성 교사들이 많은데 이른 시각에 자녀들을 챙기고 예배·봉사하려면 특히 배우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육아 등으로 분주한 30대 봉사자의 공백을 교회에서도 절감하고 있다. 최씨는 “개인주의가 강한 MZ세대의 사역 동참이 줄어들면서 젊은 축에 속하는 40대 초반에게 사역 부담이 가중되는 것 같다”며 “교회에서 봉사자들에 대한 격려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끝을 흐렸다.

교회 봉사자들의 번아웃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가 지난해 발표한 ‘개신교인의 교회 봉사 실태와 인식’ 조사에 따르면 봉사자 10명 중 3명 정도(29%)는 최근 1년간 교회 봉사로 번아웃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번아웃 경험자의 절반 이상(56%)은 일상과 직장 생활까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