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후보자 "美는 동맹, 中은 파트너…절대적 균형 성립 안돼"

박현주, 심정보, 김은지 2024. 1. 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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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과 관련해 이른바 '재판 거래'에 개입했다는 지적을 정면 반박했다. "재판 거래라는 말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재판 거래라고 불릴만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면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전민규 기자.


"강제징용-법관 파견 등가 안 맞아"


조 후보자는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법원행정처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해 행정부와 여러 거래를 했다'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이 문제를 사법농단으로 정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법원행정처도 외교부가 하는 고민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라며 "외교부와 사법부가 국익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는 게 합당한지 같이 고민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후보자는 이후 관련 질의가 이어지자 "개인적으로 재판 거래라고 불릴만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재판 거래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등가인 사안을 거래한다는 이야기라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제징용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어떻게 해외 법관 파견이라는 사소한 문제와 거래의 대상이 되겠느냐"면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는 모습. 뉴스1.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기소된 사법 농단 사건은 양승태 사법부가 해외 법관 파견 등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게 핵심이다. 외교부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배소 재상고심 판결시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각계 의견을 담은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검찰은 이를 대법원과 외교부 간 '거래'로 보고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기소했다.

당시 외교부 2차관이었던 조 후보자는 임 전 차장과 2015년 6, 8월과 2016년 9월 등 세 차례에 걸쳐 만났으며, 민주당은 조 후보자 역시 재판 거래에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체 관여 없어…유명환과 논의 안 해"


그러나 검찰은 재판 거래 사건과 관련해 조 후보자를 기소하지 않았다. 조 후보자는 이날도 "해외법관 파견 문제는 일체 관여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재판거래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8년 10월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 뉴스1.

또한 조 후보자는 2015년 11월 일본 피고 기업을 대리한 법무법인 김앤장의 고문이었던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을 만난 것과 관련해선 "수십년간 알았던 가까운 선배라 만났으며 의도적으로 (강제징용 관련) 문제는 피해서 대화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와 관련한 여야의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민주당은 "사법 농단 사건은 중요한 범죄 행위"(전해철 의원), "가해자인 일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공작"(김홍걸 의원), "조 후보자는 기소는 안 됐지만 굉장한 책임이 있다"(김상희 의원) 등의 주장을 근거로 조 후보자를 질타했다. 이날 국회 소통관에선 조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언급은 아낀 채 조 후보자가 40년 외교관 경력의 베테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익만을 생각해서 활동하는 전문성을 갖춘 외교관"(태영호 의원), "후배 외교관의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분"(정진석 의원) 등 평가가 이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대리인‘ 조태열 외교부장관 후보자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뉴스1.


"미·중 절대적 균형, 성립 안 돼"


한편 조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한·미·일 협력을 더욱 깊이 있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중 관계에 대해선 "관계 발전의 속도나 규모보다는 신뢰 증진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파트너'이기 때문에 둘의 완전한 절대적 균형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호방위조약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한·중 관계보다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조 후보자는 현재 국제 정세와 관련해 "자유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으로 블록화하고, 안보·경제·기술이 상호 연동하는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이 펼쳐졌다"며 "자유 민주주의,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끼리 국익을 함께 하도록 바뀌고 있기 때문에 (가치 중심 외교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트럼프 귀환 가능성엔 "우려 있지만…"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될 가능성에 대해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여러 입장과 공개 발언에 대해 우려가 있었던 것은 안다"며 "그러나 주한미군, 대북 제재 등 문제에 있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밝힌 내용과 실제 정책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비용 문제를 들어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했고, 북·미 간 직접 협상에 전향적으로 응했다. 그러나 결국 주한미군 철수는 이뤄지지 않았고, 북한이 요구했던 제재 해제도 거절한 채 협상 결렬을 택했다.

조 후보자는 2016~2019년 주유엔 대사 재임 시절 최근 미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 대사와도 카운터파트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조 후보자는 이날 "(헤일리와) 약 2년 반 동안 매주 두어번씩은 접촉한 사이"라고 말했다.
2017년 5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 후 조태열 당시 주유엔한국대사(가운데)가 니키 헤일리 당시 주유엔미국대사(왼쪽)과 벳쇼 고로 당시 주유엔일본대사와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버지 명예 유지가 인생 목표"


'승무', '낙화'로 유명한 고(故) 조지훈 시인의 막내아들이기도 한 조 후보자는 이날 "저는 아버지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을 제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조지훈 시인이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반면 조 후보자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위원으로 활동한 배경에 대해선 "역사적 화해라는 측면에서 아들인 제가 추진위에 참여하는 것이 상징적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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