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천안함 음모론 Again'…남남갈등만 노린게 아니다?

정영교 2024. 1. 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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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조기역사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한 해안마을 인근에 설치된 해안포의 포문이 열려있는 모습. 연합뉴스

물론 김여정의 기대와 달리 이로 인한 한국 내 불안이나 혼란은 없었다. 다만 과거 '천안함 음모론'에서 보듯이 북한이 이런 전형적인 심리전으로 총선을 앞두고 남남분열을 노릴 여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안보 틈새 파고든 北


실제 북한이 새해 들어 포격 도발을 감행한 첫날인 지난 5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을 규탄하면서도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이 한반도를 '9·19 군사합의' 이전 상황으로 되돌렸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남북 간 접경지역 일대의 안전핀을 제거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함과 무능함이 접경지역 일대 주민들을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같은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 내내 '가짜평화'에 집착해서 북한에 일방적인 평화를 구걸했지만 돌아온 건 수차례의 미사일 도발과 무력도발"이라고 비판했다.

김여정은 곧바로 이런 갈등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지난 7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차라리 청후각이 발달된 개에게 '안보'를 맡기는 것이 열 배는 더 낫다"고 정부의 안보 무능론을 부추겼다.

북한에 대한 태도에 따라 진보와 보수가 나뉠 정도로 안보가 정치화한 한국 특유의 현상은 김정은이 이처럼 수준 낮은 심리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구멍'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천안함 폭침 당시 양산됐던 선체결함설, 자폭설, 오폭설 등의 가짜뉴스가 현재까지도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이지난 5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북한의 연평도·백령도 북방 해안포 사격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이브리핑 캡처, 연합뉴스


조급함에 스피커 들었지만 잠잠한 여론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벌어진 북한군의 기습 포격 뒤에도 한국 내 여론의 동요는 크지 않았다. 김여정이 7일 담화를 통해 '폭약만 터트린 우리의 기만술에 한국 군이 당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건 이로 인한 조급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북한군의 발포와 포사격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김여정의 주장을 다시 일축했다. 또 실제로 기만술을 벌였다면 상대방이 피해를 입거나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이를 공개하는 행위가 전술적인 이익을 가져오지도 않는다. 결국 이는 남남분열을 조장하는 갈라치기 시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리 국민의 의식이 북한의 심리전에 넘어갈 정도로 낮지 않다", "낮은 수준의 심리전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신문이 지난 10월 21일 평양 주민들의 출근길 사진을 실었다. 사진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평양시의 19개 구역 중 하나인 중구역 주민들의 출근길 모습이 담겼다. 노동신문, 뉴스1

다만 북한의 군사 행동에 원칙적·비례적 대응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없고, 국민의 안보 불안이 커질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무력 도발은 정상국가인 한국은 선제적으로 쓸 수 없지만, 불량국가인 북한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모순적 우위'의 카드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이런 시점에서 오히려 북한이 예상치 못하고 받기도 껄끄러운 전향적인 제안을 내놔 공을 북한 쪽에 넘기는 방법으로 허 찌르는 방법도 전략적인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민심 동요도 의식한 듯


포격 도발과 심리전을 이어가는 김정은의 속내 한켠에선 내부 민심을 의식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일례로 지난 5일 첫 포격 뒤 북한군 총참모부가 내놓은 입장문은 이튿날 북한 주민들이 읽는 노동신문에도 게재됐다. "우리(북한) 군대의 훈련에 정세 격화의 책임을 들씌우려는 상투적인 수법"이라며 "새해 벽두부터 전 국경선 부근에서 포사격 및 기동훈련을 별여놓은 대한민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대응조치"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은 외부 정보의 유입이나 내부 주민 간 정보 확산을 김정은 정권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 군이 북한의 포격에 두 배인 400발로 응징하는 등 전방부대의 교전 소식이 가감 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실시간으로 퍼지는 것을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가 지난 7일 김정은의 황해북도 황주군의 광천닭공장 현지지도에 동행했다. 사진은 김주애가 프랑스 명품브랜드의 키즈 패딩으로 추정되는 후드 자켓을 착용한 모습. 디올 홈페이지, 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 내 돈주(신흥 상업계층)들이 휴대전화 등을 통해 각 지역의 시장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대내외 정보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 경제활동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정보의 통제도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한편 김정은은 북한군이 사흘 연속 포격을 감행한 지난 7일 딸 주애를 대동하고 황해북도 황주군에 있는 광천닭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생산능력을 부단히 제고함으로써 인민 생활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며 민생을 챙기는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주애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의 키즈 다운으로 추정되는 후드 자켓을 착용하고 있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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