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톡]돌봄 없이 존엄한 죽음없다…돌봄 국가 선언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성별 격차보고서가 발간될 때면 우리나라의 격차 순위에 많은 관심이 쏟아진다. 2023년은 전년 대비 6계단이나 내려간 10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해결 방향에 관한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은 더 나은 경제를 위해선 젠더 동등성을 그 핵심에 두어야 한다고 보면서 5가지 정부 정책이 잘 설계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중 하나가 돌봄 체계에 대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돌봄 체계는 잘 돌아가고 있을까. 긍정적인 얘기가 나오기 어렵다. 여성들의 독박 돌봄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맞벌이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 여전히 3.5배나 한다. 노인 돌봄도 마찬가지다. 배우자 외에 며느리가 딸로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다. 독박 돌봄이 예견되는 혼인과 출산은 당연히 기피되고, 돌봄으로 인한 경력단절 또한 여전히 현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유아, 아동·청소년, 장애인, 중증 질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돌봄이 요구되는 사람들인데도 사각지대가 있다. 경제선진국으로 분류된 우리나라가 해외입양을 끝내지 못하고 있고, 가족을 돌보는 아동·청소년·청년들의 역 돌봄 문제도 완벽히 해결 못 하고 있다. 유급 돌봄 노동 제공도 여성화, (저소득층이 전담하는) 계층화, (빈곤국가의 사람들이 담당하게 되는) 이주화 속에서 저임금의 안 괜찮은 일자리로 고착화할 우려가 크다.
돌봄 노동은 필수노동 중의 필수노동이다. 생명의 활동과 성숙, 완성에 필요한 유무급의 물리적, 정신적, 감정적 노동이다. 돌봄 노동 없이 누구도 생존할 수 없고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없다. 돌봄은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의 공존, 존중, 상생의 가치를 지닌다. 이렇게 중요한 돌봄 노동인데도 가치는 저평가되어 있고, 여성들의 경제, 사회 활동을 제약하는 모순적 상황은 여전하다. 이는 국가가 돌봄을 취약계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프로그램 정도로만 인식해 온대 그 원인이 있다. 최근 발표된 제3차 사회보장 기본계획(2024~2028)도 이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돌봄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복지 정책을 뛰어넘는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초저출산·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문제다. 전 사회적 돌봄의 재조직화, 즉 국가, 기업, 지역사회, 가족 모두의 책임으로 구성된 돌봄 체계가 필요하다. 돌봄은 인권으로서 위상을 가져야 하고, 정부의 돌봄 정책은 선별적 복지가 아닌 최소한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준 보편적 복지로 작동해야 하며, 역 돌봄과 돌봄의 사각지대는 없어야 한다. 또 유급 돌봄 노동이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가 되도록 정책적으로 견인해야 한다. 한국노총 여성본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돌봄서비스 희망 임금은 시간당 1만6000원이다. 불안정노동일수록 기본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을 필요가 있다. 남성 간호사처럼 남성 요양보호사, 남성 간호인도 많이 육성해야 한다.
기업은 직원을 (유급) 노동과 (무급) 돌봄을 동시에 하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인사관리를 해야 하며 가족 돌볼 권리를 유연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지역사회도 의료·복지 통합돌봄과 더불어 공유경제 차원에서 주민 간 상호돌봄 프로그램도 촉진해나가야 한다. 일상의 돌봄 배분은 남녀가 동등한 책임을 가져야 하고, 돌봄자 지정제도를 마련해 혼인, 혈연, 입양 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도 생계, 의료, 일상 돌봄, 장례 등에서 돌봄의 역할을 공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돌봄 체계의 진전은 몇몇 선별적 복지 프로그램을 추가하거나 대상을 조금 확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돌봄 국가 차원의 총괄적 방향 설정과 전면적 체계 개편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돌봄 기본법을 제정해서 돌봄 정책의 방향과 추진체계를 명확히 하자. 돌봄 국가를 선언하고 돌봄 정책 이니셔티브를 만들자.
차인순 배재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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