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태영, 남의 살 아닌 제 살 더 깎아야

대통령실까지 나선 끝에 새 자구안 마련
창업주의 지주사 지분 가치는 약 11억 수준
기업 정상화 의지 드러내기엔 부족
대주주의 손실 분담 원칙 억지로 이행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압박하자 이제야 오너일가 지분을 담보로 맡긴다는 것은 자발적인 게 아닙이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8일 오전 태영건설의 새 자구안에 대해 논의를 마친 뒤, 채권단에서는 이 같은 쓴소리가 흘러나왔다. 태영그룹은 이날 새벽 채권단에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전액(1549억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고, 윤 창업주 등이 보유한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알렸다.

태영건설은 이런 내용이 담긴 새 자구안을 오늘 오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채권단 내부에서는 태영건설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태영건설이 진짜 발표할 것인지 아직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원칙은 '이해관계자들의 자발적인 손실 분담'이다. 채권단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개시를 결정하기 전 항상 대주주의 손실 분담을 강조해왔다. 당연하다. 워크아웃이 시작되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채권단도 손해를 감수하고, 잘못이 없는 직원들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불확실성 속에서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도 유예하고, 부족한 자금 조달을 위해 신규 대출과 유상증자에도 참여한다. 직원들의 희생도 불가피하다. 운이 좋으면 연봉 삭감에 그친다. 대부분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희망퇴직을 당한다. 채권단이 매번 워크아웃 개시 전 대주주인 오너 일가를 향해 사재출연, 지분 담보 등 '손실 분담'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다.

예외는 없다. 주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과 거칠게 각을 세웠던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은 선산까지 담보로 제공했다. 반드시 회사를 정상화해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채권단이 전적으로 지원해줬다. 두산그룹의 경우 채권단의 예상을 뛰어넘어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담보를 맡겼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잡음이 컸든, 작았든 결국 자발적으로 손실 분담을 결정했다.

태영그룹이 이날 오후 새 자구안을 제출하더라도 내용과 형식 모두 반쪽짜리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윤 창업주의 티와이홀딩스 지분율은 0.5%(26만6955주)다. 채권단이 요구한 자금은 890억원인데 담보로 맡긴 지분 가치는 11억원에 불과하다.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압박에 나섰는데도 말이다.

채권단은 대주주인 아들 윤석민 회장의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담보로 맡길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다. 윤 회장의 티와이홀딩스 지분율은 25.4%(1282만7810주)로, 지분 가치는 약 580억원이다.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태영건설은 ‘남의 살이 아니라 제살을 더 깎는 자구안’을 내놔야 한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