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특별법’…“독립적 진상조사 필요” VS “편향된 ‘특조위’ 안 돼”
여야가 오는 9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놓고 막판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수차례 물밑 협상을 시도했으나 진전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야 합의가 끝내 불발될 경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핵심 쟁점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구성 문제다.
민주당은 경찰 수사가 일선 책임자 ‘꼬리 자르기’ 선에서 끝났기 때문에 독립적 진상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또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는 5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고 그나마 정부의 비협조로 ‘반쪽짜리’에 그쳤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진상조사 전권을 가진 특조위를 구성해 정부·지방자치단체 등 재난관리 책임이 있는 기관 전반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조사를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출신의 김진표 국회의장은 앞선 민주당 발의안(남인순 의원 최초 발의 후 수정된 법안)에 포함됐던 특별검사 임명 요청·운영권을 제외하고, 4월 총선 이후 법을 시행토록 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에 특조위 구성 여부는 따로 포함돼 있지 않았다. 김 의장은 중재안을 바탕으로 지난 4일 국회 신년기자간담회에서 “꼭 (여야)합의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특조위 존속’을 전제로 한 이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7일 통화에서 “중재안에서 특검 여부를 제외했든 아니든, 특조위 조항이 존속하는 한 특별법은 받기가 어렵다”며 “이태원 참사는 이미 수사와 재판을 통한 책임자 파악과 처벌, 국회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이뤄진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특히 특조위 구성 조항이 민주당에 편향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상임위원 5명을 포함한 11명의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특조위원 구성 비율이다. 특조위원은 국회의장이 1명, 국민의힘이 4명, 민주당이 4명, 유가족단체가 2명을 각각 추천하게 돼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사실상 여당 측 4명, 야당 측 7명 구조”라며 “야당에 편향된 특조위를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김 의장 추천 1명과 유가족 추천 2명을 무조건 민주당 측으로 해석하는 건 국민의힘의 억지 논리”라고 반박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의 특조위원 구성 방식은 2014년 11월 제정된 ‘세월호진상규명법’과는 차이가 있다. 여야 추천을 동수로 하고, 관계기관 추천을 가미한 게 특징이다.
세월호진상규명법은 특조위를 국회 선출 10명(여야 각각 5명), 대법원장 지명 2명, 대한변호사협회장 지명 1명, 희생자가족대표회의 선출 3명 등 17명으로 구성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2020년 12월 제정된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은 여야가 특조위원을 각각 4명씩 추천하되, ‘캐스팅보트’ 성격으로 국회의장 몫을 1명 넣는 방식을 택했다.
특조위가 감사원에 감사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에서는 뒷말이 나온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징계 사유가 인정되는 공무원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고, 감사원은 감사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내 감사결과를 특조위에 통보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특조위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했다는 입장이다.
감사원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헌법이 부여한 감사원의 감사 권한을 제약하고 직무상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감사원에 대한 감사요구 권한 부여는 앞선 세월호진상규명법이나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에도 동일하게 있는 조항이라는 이유다.
국민의힘은 특조위가 조사 대상자에게 자료 제출과 동행을 명령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하면 검사에게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 행안위 소속 김웅 의원은 지난해 8월 특조위를 겨냥해 “(진상)조사뿐만 아니라 (자료 제출명령이 안 받아들여지면) 영장청구도 사실상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야만적인 기구가 출현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조위원의 경력요건 완화도 논란거리다.
세월호참사진상규명법이나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은 관련 분야 종사자의 경력요건을 ‘10년 이상’으로 한 데 비해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5년 이상’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진상규명을 강조하면서도 특조위원의 전문성은 완화하는 민주당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 ‘김진표 중재안’이 아닌 당초의 민주당 발의안대로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협상이 실패하면 원안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건 김 의장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도 모두 공지가 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중재안에 포함됐던 특검 제외나 총선 후 시행은 없던 일로 하겠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세부적인 진척 상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특조위 상임위원들에게 막대한 연봉과 출장비를 주는 데 혈세를 쓰기보다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치유와 지원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피해지원심의위원회와 희생자추모위원회 구성, 피해자 보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10·29 이태원참사 피해구제 특별법’(이만희 의원)을 지난해 12월 11일 발의해놓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각오했던 다른 법안들과 달리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강행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정부의 실질적 협조가 없으면 특조위 활동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특조위에서 증인 출석이나 자료제출 등 협조를 얻으려면 여야 합의 처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자창 이동환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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