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 오간 수협 조합장 선거 '유죄'… 대법 "몰래 한 녹취, 증거 인정"
2019년 3월 지역의 한 수협 조합장 선거에서 선거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조합원 A씨가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A씨의 불륜을 의심한 배우자가 A씨 몰래 3년 치 통화를 녹음했고, 재판 과정에서 이 통화 내역의 증거능력 여부가 쟁점이 됐는데 대법원은 증거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3명의 상고심에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조합장 선거에 나간 후보자 등과 함께 선거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18회에 걸쳐 약 400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고, 선거운동기간 전에 지지 호소, 모임 등 방법으로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하던 중 다수의 통화녹음 파일을 입수해 이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는 A씨의 아내가 약 3년에 걸쳐 몰래 녹음한 것들이었다.
1·2심은 이들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에서 징역 1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A씨 측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뤄진 통화녹음 파일이 '사인에 의한 위법 수집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의 배우자가 A씨의 동의 없이 A씨의 휴대전화를 조작해 통화내용을 녹음했다는 점에서 A씨의 배우자가 A씨의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침해했다고 볼 여지는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A씨의 배우자는 전화통화의 일방 당사자로서 A씨와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A씨의 발언 내용을 직접 청취했으므로, A씨의 배우자가 A씨와의 통화내용을 몰래 녹음했더라도 그로 인해 A씨의 사생활의 비밀, 통신의 비밀, 대화의 비밀 등이 침해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고, 음성권 등 인격적 이익의 침해 정도도 비교적 경미하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배우자는 통화내용이 A씨의 휴대전화에 녹음되도록 했을 뿐, 그 녹음파일 등을 제3자에게 유출한 바도 없다"라며 "A씨의 배우자가 피고인들의 범행에 관한 증거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나 계획 아래 전화통화를 녹음한 것이 아니고, 수사기관 역시 위 전화통화의 녹음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은 채 적법하게 압수한 휴대전화를 분석하던 중 우연히 이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기소 대상이 된 행위는, 조합장 선거에서 금품을 살포해 선거인을 매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른바 '돈 선거'를 조장하는 중대범죄에 해당한다"라며 "선거범죄는 대체로 계획적·조직적인 공모 아래 은밀하게 이뤄지므로, 피고인들의 공모관계를 비롯한 구체적 범행 내용 등을 밝혀 줄 수 있는 객관적 증거인 위 전화통화 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따라서 A씨의 배우자가 A씨의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침해해 통화내용을 녹음했더라도 A씨의 배우자와 A씨 사이의 전화통화 내용 부분은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녹음 경위, 녹음 내용 등에 비춰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 판결"이라고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는 불법검열이나 불법감청에 의해 취득한 전기통신 내용은 재판이나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조항이다.
대법원은 앞서 감청의 개념에 대해 "전기통신의 감청은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기통신 내용을 녹음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만을 말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므로, 전기통신에 해당하는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여기의 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통화의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 몰래 녹음한 경우 감청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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