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반도체 회사들이 외면하는 한국... 윤 대통령이 있기 때문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기자]
지난 12월 27일,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에서 "동남아 반도체가 대만을 대신할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미·중 반도체 갈등 중에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대만 대신 동남아 국가에 공장을 짓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 동남아의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입장에서 관심 있게 봤습니다. 사회를 맡은 이프로가 방송 중에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반도체 회사들이) 대만 떠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럼 한국, 일본으로 안 오고 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가냐. 그게 궁금하거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반도체 과외를 꾸준히 받아온 대통령이 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우리나라 핵심 산업으로 반도체를 강조했고,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를 자처했으니 지금쯤이면 외국 반도체 회사들이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몰려와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대통령이 제일 먼저 궁금해할 거라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윤석열 대통령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대만을 떠나는 반도체 회사들이 왜 한국에 안 오고 동남아로 가는 건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 파운드리의 웨이퍼 팹 전경. 미국, 대만, EU의 여러 반도체 회사들이 싱가포르에 팹을 확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
ⓒ 글로벌 파운드리 |
싱가포르에서 반도체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싱가포르에도 반도체 회사가 있어?"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도체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대만, 유럽연합(EU)에서만 하는 최첨단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싱가포르는 1968년 미국의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시작으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인피니온 등을 유치하며 진작부터 반도체 산업을 시작했습니다. 웨이퍼 팹을 가지고 있는 종합반도체 회사만 하더라도 한국보다 더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 바로 싱가포르입니다.
세계 3위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 세계 3위의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와 4위인 UMC가 진작부터 싱가포르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럽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제조회사인 STM, 대만의 TSMC와 네덜란드의 NXP가 합작하여 만든 SSMC, TSMC의 자회사이자 전력반도체의 강자 뱅가드도 싱가포르에 웨이퍼 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최주혜 |
미국 회사만 싱가포르에 반도체 팹을 짓는 건 아닙니다. 2022년 초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UMC는 50억 달러를 투자해서 월 3만 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300mm 팹을 짓겠다고 발표하고 2024년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아직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대만의 뱅가드가 싱가포르에 대규모 반도체 팹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라는 닛케이의 보도도 있었습니다.
반도체 팹 외에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도 싱가포르에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프랑스 반도체 소재 공급업체인 소이텍은 지난해 12월 4억 3000만 달러 규모의 공장 증설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소이텍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웨이퍼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ASML과 함께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 회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AMAT는 4억 5000만 달러를 투입해 2024년 완공을 목표로 반도체 장비 생산시설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AMAT의 장비 생산시설은 미국 본사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이 밖에도 칩 설계업체인 AMD는 싱가포르 R&D 분야에 5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고, 반도체 테스트 업체인 아덴텍(Ardentec)도 1억 8000만 달러를 투자해서 시설을 확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싱가포르에는 소재, 장비, 테스트, 설계, 생산 등 반도체 산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아우르는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고, 지금도 전 분야에서 확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포춘의 기사 "인구 600만 명에 불과한 싱가포르가 반도체 제조 유치 경쟁에서 어떻게 더 큰 국가들을 이겼나?" |
ⓒ 포춘 |
그렇다면 왜 수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걸까요? 지난해 11월, 경제지 <포춘>은 이런 현상에 주목하고 "인구 600만 명에 불과한 싱가포르가 반도체 제조 유치 경쟁에서 어떻게 더 큰 국가들을 이겼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포춘>은 보조금까지 줘가면서 반도체 제조업체를 유치하려는 다른 경쟁 국가를 제치고 싱가포르가 투자 유치에 지속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를 "일관된 제조업 전략과 성숙한 반도체 생태계"라고 요약했습니다.
▲ 싱가포르의 제조업을 2030년까지 50% 더 확장하는 것이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의 목표입니다. |
ⓒ EDB |
성숙한 반도체 생태계란 싱가포르에 우수한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 많고, 설계부터 제조, 공급망, 연구개발까지 모두 갖추고 있으며,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포괄적인 인프라 역시 잘 되어 있다는 겁니다. 기존 팹 근처에 추가로 시설을 확장하면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비용을 10~15% 절약할 수 있고, 인력을 확보하기에도 용이하기에 이미 형성된 반도체 생태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해당 기사는 인도가 자국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10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반도체 생태계 자체가 없다시피 하므로 기업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고, 미국은 전문 인력 부족, 높은 인건비 및 보조금 수혜 기업이 이익을 공유하고 기업비밀을 공개해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계획대로 잘되지 않는 점을 싱가포르와 다른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반도체 IP(지적 자산) 관점에서 안전한 나라로 간주되고,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정부의 존재도 큰 장점이라는 분석입니다.
▲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캠퍼스 전경. 정부가 조성하는 국가산단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만 팹을 짓게 될 예정입니다. |
ⓒ 삼성전자 |
사실 <포춘> 기사에서 싱가포르의 장점으로 언급한 내용을 한국에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968년에 아남산업이 처음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을 만큼 역사가 깊고, 싱가포르보다 열 배나 많은 인구에 반도체 인재 역시 부족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업체가 둘이나 있을 뿐만 아니라 DB하이텍 같은 파운드리 업체도 자리를 잡고 있고, 그 회사들과 함께하는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장비 회사들도 많아서 반도체 생태계 역시 싱가포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싱가포르가 인도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물류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국이야말로 반도체 생산과 소비에 큰 역할을 하는 중국, 반도체 소재와 장비에서 앞서가는 일본과 바로 붙어 있어서 위치는 더 좋습니다.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과의 실제 거리도 한국이 싱가포르보다 더 가깝습니다. 첨단 반도체의 물류는 배가 아니라 비행기가 더 큰 역할을 합니다.
"싱가포르는 미·중 양국과 경제·안보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미·중 패권경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역내 재균형 전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와는 조심스럽게 구분하고 있으며, 경제 분야 뿐만 아니라 군사안보 측면에서도 중국과 실질적인 협력을 전개하고 있다. 이중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싱가포르는 미·중 사이에서 자국의 생존과 국익을 확보할 수 있는 동태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미·중 뿐만 아니라 그 어느 국가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실용 외교를 펴고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양국의 갈등 속에서도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 그런 외교가 한 번에 수조에서 수십조 원까지 써야 하는 반도체 분야의 투자를 결정할 때 장기 안정성 면에서 큰 장점이 되는 겁니다.
▲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의 클린룸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등과 함께 방진복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중국과 직접 갈등 중인 미국마저도 중국을 향한 전략이 '디커플링'(분리)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제거)라며 긴장 완화를 시도하는 중에 한국 대통령만 연일 강도 높은 발언으로 중국을 자극하고 있는 겁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 수출의 18.1%, 수입의 35.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 1위 국가로서 글로벌 수입의 28.5%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을 공공의 적이라 여기고 반도체 동맹의 맨 앞줄에 서서 갈등을 유발하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 어떤 다국적 반도체 기업이 한국에 팹을 지으려 할까요? '메이드 인 코리아'가 찍힌 소재나 부품이 중국으로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소부장 업체들이 한국에 생산시설을 지으려 하겠습니까? 미·중 반도체 갈등에 영향을 받아 대만을 떠나는 반도체 회사들이 미국 편에 붙어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한국에 들어오겠습니까?
싱가포르에 다국적 반도체 업체들이 새로운 팹을 두 개나 추가로 짓는 동안 한국에는 다국적 반도체 제조 업체들의 투자 소식은 전무합니다. 용인에 새로 만든다는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들만 팹을 짓겠다고 할 뿐입니다. 동시에 그 두 회사마저 재생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대신 미국에 팹과 패키징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팹은 이미 전 세계 반도체 웨이퍼 생산량의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 일본을 눌러 앉혔듯이 싱가포르가 한국을 뛰어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대만을 떠나는 반도체 회사들이 왜 한국으로 안 오고 싱가포르로 가는 걸까요? 그건 바로 한국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말로 끊임없이 국가 간 갈등을 유발하는 대통령의 외교 방식이 진작부터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된 제조 강국 한국에 투자하려는 다국적 반도체 기업들을 쫓아내고 있는 겁니다. 어느 국가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실용외교, 그래서 다국적 기업들이 맘 편히 투자할 수 있는 안정성.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배워야 할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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