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분석 말고 음미하세요, 자연 품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의 맛

김현정 2024. 1.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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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서며 예술계에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나 사물·자연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미술 사조가 크게 발달했습니다. 딱 보면 알 수 있는 사람이나 물건, 동식물과 자연 등을 그대로 그린 게 아니기 때문에 어렵게 여겨지는 그림들, 바로 추상미술이죠. 이름은 잘 몰라도 검정·노랑·빨강의 강렬한 원색과 점·선·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는 순간 ‘아! 이거 알아, 본 적 있어’ 하게 만드는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작품들은 추상미술 중에서도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효시로 꼽히는데요. 이번에는 특히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세계를 탐구해봤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찾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 학예연구사가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국내에서 어떻게 전개됐는지 알려주고 있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단순한 점·선·면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의 한 경향으로 20세기 내내 현대미술의 주류 중 하나로 꼽혔어요. 미술 교과서에도 실렸던 피에트 몬드리안이나 바실리 칸딘스키, 카지미르 말레비치 등의 작품이 그 출발점으로 꼽히죠. 한국에서도 1920년대부터 그 영향을 받았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관에서 선보이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에선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명의 기하학적 추상 작품 150여 점 및 자료 10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추상미술도 아리송한데, 기하학적 추상미술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나섰죠.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 학예연구사를 만난 구시연·서윤하 학생기자는 먼저 “현대미술의 특징은 뭔지” “추상미술은 어떻게 등장했는지”부터 물어봤어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전통적으로 그림은 보이는 대로 그렸다면,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그럴 필요가 줄어들었어요. 사실적인 묘사·표현을 벗어난 좀 더 새로운 표현이 필요해졌죠. 현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이 가진 특징을 요약하거나 내용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게 현대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1세대 추상미술가로 1970년대부터 기하학적 추상에 몰두한 이준의 ‘송-유향’(1985). 그의 작품은 고향인 경남 남해의 모습을 기하학적 조형과 연계한 것이 특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시대가 바뀌면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도 이에 호응해 바뀌어 갑니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현실을 파괴하고 많은 희생이 따르는 전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죠. 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추상미술은 20세기 미술의 주요 장르 중 하나예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충격으로 서양미술은 전통을 거부하고 변화를 꾀했죠. 눈에 보이는 그대로보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관심을 갖고 이를 표현할 때도 기존과는 다르게 하려고 했어요. 유토피아나 정신적인 세계 등을 그릴 때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아닌 순수한 점·선·면 등을 가지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식이죠.”

전 학예연구사는 “몬드리안·칸딘스키·말레비치의 작업을 통해 추상미술 중에서도 기하학적 추상이 등장했다”고 소개했어요. “기하학적 추상은 작가마다 시대별로 다른 모습을 띠지만 기본적으로 선과 색, 형태 등 조형적인 요소를 살리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1960~70년대에 기하학적 추상이 유행했던 것으로 봤는데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1920~30년대에 기하학적 추상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시대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음을 5개 섹션으로 구성해 보여주며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지닌 의미와 독자성 또한 알리고자 합니다.”


한국에 온 기하학적 추상

소중 학생기자단은 1920~30년대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극장을 찾은 모던 보이와 모던 걸처럼 영화 주보를 구경했어요. 주보는 매주 나오는 잡지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와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영화 주보는 사람들을 보러 오게끔 하는 전단지 역할을 했죠. “당시 조선인 대상 영화관으로 인기였던 단성사와 조선극장은 서로 경쟁하며 관객을 끌기 위해 영화 주보를 발행했어요. 주보에는 배우나 영화 관련 이미지를 넣기도 했지만 지금 보는 것처럼 원색과 기하학적 구성을 가지고도 만들었죠. 요즘 디자인 전공하신 분들이 와서 봐도 감각적이다, 멋지다고들 하세요.”

기하학적 추상으로 꾸며진 『단성주보』제300호 표지. 국립현대미술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인들이 잡지를 만드는 건 허가해줬지만 그만큼 더 강하게 검열했습니다. 많은 잡지가 만들어지고 폐간되고 이름을 바꿔 재발행하는 일을 겪었죠. “여기 보면 『제일선』 『신인간』 같은 시사 종합지 표지도 기하학적 추상으로 꾸몄잖아요. 조선의 고유 사상이나 독립 의지 등을 바로 표현하면 폐간되니까 기하학적으로 추상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기하학적 추상이 영향을 미친 건 디자인 분야만이 아닙니다. 전 학예연구사는 시인 이상이 쓴 시 ‘건축무한육면각체’(1932) 앞으로 이끌었죠. 건축가이자 삽화가이기도 했던 그는 시·소설·책표지 등에 기하학적 요소를 많이 활용했어요.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이상이 미츠코시 백화점을 둘러보고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과 같이 기하학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옆에는 백화점 층별 안내도와 쇼윈도·갤러리·옥상전망대 등의 공간 사진을 함께 전시해 그를 비롯한 당대 사람들이 입체적으로 체험했던 기하학적 디자인과 건축을 엿볼 수 있게 했죠.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1932) 옆에는 시의 배경인 미츠코시 백화점 안내도·사진을 전시해 당대 기하학적 디자인·건축도 함께 볼 수 있다.


한국의 1세대 추상미술가들은 1930년대 기하학적 회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유학한 김환기는 유럽에서 전개된 다양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경향을 취사선택해 수용했죠. 이를 통해 ‘론도’(1938)와 같이 곡선적인 요소와 색면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효과를 강조한 작품을 제작했어요. 유영국 역시 ‘역정 2’(1938) ‘작품 1(L24-39.5)’(1939)처럼 당시로선 드물고 새로운 화풍을 선보였습니다.

“서구에서 유행한 기하학적 추상은 일제 치하 암담한 현실에서 새로움과 혁신을 갈망했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새 시대를 만들고 싶었던 이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했어요. 미술뿐 아니라 문학·건축·디자인 등 다양하게 그 흔적이 나타나죠.”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변화를 일부 반영해 고층빌딩·고속도로 등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추상작품도 선보인 최상철의 ‘무더운 여름 Ⅱ’(1968) 앞에 선 서윤하(왼쪽)·구시연 학생기자.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도 잠시,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국내 정세는 다시 어려워집니다. 전후 복구에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던 1950년대 말, 화가·건축가·디자이너의 연합 그룹인 신조형파가 결성돼요. 이는 1919년 건축을 기반으로 공예·예술·기술의 통합을 시도하며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예술 종합학교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한 것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 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미술가·건축가·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던 바우하우스처럼, 신조형파는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기에 미술·건축·디자인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했어요.

“이렇게 세 분야의 예술가들이 연대하려고 한 것은 국내 처음이었죠. 예술뿐 아니라 국가 발전,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하려 했던 점에서 공리적인 측면도 있어요.” 전 학예연구사는 그림 사이 전시된 사진들을 가리키며 설명했습니다. “건축가 이상순이 ‘신조형파전’ 전시장과 작품을 촬영한 사진이에요. 당시 카메라는 거의 집 한 채 가격이었는데요. 덕분에 생동감 있게 그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당시 잡지 등 기하학적 추상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1957년 신조형파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변영원의 ‘전위정신’(1959)은 그가 생각한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전위미술, 즉 현대미술이 점·선·면의 단순한 형태에 기초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밖에 건축 도면, 디자인 작품, 섬유 패턴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예술을 지향했던 분위기를 느껴봤어요.


한국적인 기하학적 추상

‘새로움과 혁신, 근대의 감각’과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에 이어 세 번째 섹션인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에서는 김환기·유영국·류경채·이준 등 1세대 추상미술가와 이기원·전성우·하인두 등 2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특수성을 살폈습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떠올려 보세요.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은 자·컴퍼스 등으로 그린 듯 정확하고 명확하게 나타난다면,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은 자연이란 요소를 중시한 게 특징이에요. 자나 컴퍼스가 없어서 똑바로 선을 못 그린 게 아니라 그림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겁니다.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담겼다고 할까요.”

전성우의 ‘색동만다라’(1968)를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간송 전형필의 아들이기도 한 전성우는 ‘만다라 화가’로 불릴 만큼 만다라를 화두로 동양적이자 한국적인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 추상을 제작하거나 자연을 대하는 서정적인 감성을 부여한 작품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히는 유영국의 '산'과 전성우의 ‘색동만다라’를 들여다봤습니다. ‘산’의 경우 삼각형과 초록·빨강·노랑 등으로 표현돼 소중 학생기자단은 “제목을 몰랐어도 산이 떠오르는 것 같다”고 했죠.

“산은 다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산마다 다 다르게 생겼죠. 그 모든 산의 형태의 교집합으로 삼각형을 나타낸 거예요. 완벽하고 엄격한 형태보다 자연에 가까운 작품, 자연의 요소를 가지고 기하학적 추상으로 표현했죠. 그 지점이 서양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색동만다라’의 경우 삼각형 캔버스를 쓴 것부터 특이한데요. 기하학적 형태를 띤 불교의 만다라를 활용해 전통적인 색상으로 그려내 철학적·종교적인 부분을 함께 드러낸 작품이에요. 김환기의 ‘달 두 개’를 볼까요. 달이 완전히 동그랗지 않은 것을 반영하고 그 안에 곡선을 그려 산이나 물이 흐르는 모습을 단순화해서 표현했죠. 자연이든 사물이든 단순화하고 형태를 작게 줄여나가다 보면 점이 되고, 색이나 선 정도만 남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기하학적 추상은 자연에 출발점을 놓는 게 특징이에요.”

전유신 학예연구사는 김환기의 ‘달 두 개’(1961)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기하학적 추상은 자연에 출발점을 놓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환기·유영국 같은 1세대 추상미술가들은 그림이란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심지어 인격의 반영이라고 보는 문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미술에 입문했습니다. 자연 역시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담아내는 매개이자 그 자체로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여긴 거예요. 이와 함께 한국적인 정체성·전통 관련 소재인 자연과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연계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났죠.

한국에서 기하학적 추상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전방위적으로 퍼졌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미술사조는 엥포르멜이라고 해서 즉흥적이고 격정적이며 개인의 주관적·서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추상미술로, 이른바 ‘냉정한’ 기하학적 추상과는 대척점에 있었어요. 기성 미술을 타파할 대안으로 기하학적 추상이 떠오르며 거의 모든 작가들이 뛰어들었다고 할 정도로 퍼졌죠. 기하학적 추상의 시기로 불릴 만큼 기하학적 형태를 강조한 작품이 많이 나와 신문에 ‘자로 그린 그림’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였어요.”

구시연 학생기자는 “흰색을 좋아하는데 흰색과 검은색이 규칙적이면서도 비규칙적으로 그려져 좋다”며 이태현의 ‘공간 70-1’(1970)을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골랐다.

전 학예연구사는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전시실을 한눈에 쭉 둘러보며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골라보라고 했죠. 시연 학생기자는 “흰색을 좋아하는데 흰색과 검은색이 규칙적이면서도 비규칙적으로 그려져 마음에 든다”며 이태현의 ‘공간 70-1’(1970)을 꼽았어요. 윤하 학생기자는 “그림도 멋지고 제목도 인상적”이라며 이승조의 ‘핵 F-90-G7’(1970)을 골랐죠.

“기하학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형태를 다 동일하게 그리진 않았어요. 반복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게 변주하며 지루하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표현했고 색도 보색을 써서 강조하는 등 재미있게 볼 수 있죠. 추상미술이라고 하면 보통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소중 학생기자단 여러분처럼 좋아하는 색이나 형태 등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핵’ 연작을 출품하며 본격적으로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선보인 이승조의 ‘핵 G–999’(1970). 국립현대미술관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가 어떻게 전개했는지는 크게 셋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먼저 1967년 12월 결성된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중심으로 당시 청년작가들이 기성 미술의 대안으로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활용했던 것을 보여주죠. 최명영·서승원 등과 함께 오리진 그룹을 만든 이승조는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핵’ 연작을 출품하며 본격적으로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전 학예연구사는 이승조의 ‘핵 G–999’(1970)은 BTS의 RM이 유심히 봤던 작품이라고 귀띔했죠.

1967년에는 ‘회화·조각·건축의 종합적인 창조’에 기반해 새로운 조형 시대를 여는 것을 목표로 미술가와 건축가가 참여한 한국조형작가회의도 창립됐어요. “1965년부터 서울시 개발 사업이 본격화하며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도시와 건축물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됐죠. 미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가 함께하는 일도 늘어났고요. 1968년 열린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에선 국가 발전을 상징하는 미래적 이미지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활용됩니다. 박람회 정문·외벽 등은 기하학적 조형과 원색으로 꾸며졌죠. 또 한영섭의 ‘단청과 콘크리트 No.9’처럼 전통 건축서 찾은 조형과 색을 현대적 건축 재료와 접목하려는 시도가 계속 나타났어요.”

1969년 브라질 비엔날레에 출품했을 때 사진과 함께 최초로 공개된 윤형근의 ‘69-E8’(1969). 국립현대미술관


1969년 브라질 비엔날레에 출품했을 때 사진과 함께 최초로 공개된 윤형근의 ‘69-E8’(1969)을 비롯해 박서보·하종현 등 한국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기하학적 추상 시대의 작품을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와 만났습니다.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어요. 우리나라에선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에 초대형 TV를 설치해 약 10만 명 인파가 몰렸고, 11월에는 아폴로 11호의 우주인 3명이 내한해 카퍼레이드를 벌였죠. 이런 역사적 이벤트는 미술가들에게도 영감의 대상이 됐습니다. 우주시대를 연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연계도 활발했어요.”

전시장 벽면에는 “아폴로 우주선 발사로 새롭게 우주의 공간 의식에 눈뜨고부터 시작한 이 작업이 작가인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 같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승조의 말을 인용해뒀죠. 관련 사진과 신문기사를 보고 작품을 보니 당시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기하학적 추상 작품의 느낌도 더 잘 와 닿았습니다.

변영원의 ‘합존 97번’(1969) 속 다양한 원의 모습은 세상의 기본 요소인 원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20세기 후반 한국사회는 초과학시대, 특히 원자시대가 될 거라고 전망한 변영원은 어떤 물체든 원자로 이루어지듯 이 세상 모든 대상은 단순한 선과 색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봤죠. 즉 추상미술이야말로 현대과학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겁니다. ‘원중원’ 시리즈를 비롯한 그의 1960~70년대 작품들은 원색의 바탕 위에 원을 다양하게 배치했는데, 이는 세상의 기본 요소인 원자를 연상시키기도 해요.

기하학적인 형태와 수학적으로 계산된 듯한 작품을 선보이던 한묵은 우주시대에 관심을 가지며 원형과 나선형의 움직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잘 보여주는 ‘금색운의 교차’(1991)를 보고 중앙홀로 나온 소중 학생기자단은 다섯 번째 섹션 '마름모-만화경'을 통해 창작집단 다운라이트&오시선의 커미션 작품과 만났어요. 아티스트·디자이너·엔지니어로 구성된 이들은 이번 전시 출품작들이 지닌 마름모와 같은 반복적 패턴에 주목, 홀 이곳저곳에 마름모 형태의 구조물을 놓고 만화경처럼 들여다볼 수 있게 구성해 영상·사운드·조각을 함께 즐기도록 했어요. 그 사이사이에는 사각형 의자도 놓여 작품을 감상하면서 앉아서 쉴 수 있죠.

1930년대부터 꾸준히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선보인 유영국의 ‘산’ 시리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윤하(왼쪽)·구시연 학생기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작가는 누구인가요?” 시연 학생기자의 질문에 전 학예연구사는 유영국 작가를 꼽았습니다. “그는 193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일관적으로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선보였어요. 기하학적 추상이 서구 미술계에서 아주 중요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디자인적·장식적 미술이나 한국적이지 않은 추상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업하며 한국적인 요소와 결합하려 노력한 점도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지닌 독자성을 밝히고 숨은 의미를 복원하고자 한 이번 전시와 잘 어울리죠.”

윤하 학생기자는 “기하학적 추상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점을 눈여겨봐야 하는지, 전시 관람 팁과 함께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기하학적 추상뿐 아니라 추상작품을 볼 때 이게 나무인지, 산인지, 뭘 그린 건지에 집중하면 어려워요. 구체적인 형태나 내용,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게 뭔지 스스로 질문하거나, 평소 내가 좋아했던 것을 역으로 작품에서 찾는 등 직접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작품 설명 등을 읽어보면 조금 더 재미있을 거예요. 이번 전시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전후 부흥을 일궈나간 1970년대까지 엄청나게 변화했던 사회적·역사적 측면과 함께 보는 재미도 있죠. 미술의 영역을 넘어 건축·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해 온 측면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고요. 다양하게 탐색하면서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름모꼴 형태 안에 원형의 오브제를 배치하고 형광 도료로 채색한 하동철의 기하학적 추상작품 ‘반응-72-감마’(1972) 앞에 선 소중 학생기자단.

■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 기간: 5월 19일까지
장소: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층 1·2전시실 및 중앙홀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료: 2000원

■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추상미술이라는 장르가 생소하다 보니 처음엔 별로 재미도 없고 지루할 것 같았는데요. 미술관 여기저기 전시된 기하학적 추상미술 작품들을 보며 정말 대단한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서구 미술 중 하나인 추상미술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왔다고 해요. 특히 1960~70년대는 우리나라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인기를 끌었죠. 그중 1957년쯤 우리나라의 여러 화가·건축가·디자이너 등이 만든 예술 모임인 신조명파가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을 겪은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신조명파를 만들고 획기적인 작품들을 선보였죠. 이처럼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우리나라 화가들의 영혼이 깃들어있는 미술 장르예요. 소중 친구들도 조금 낯설었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대해 알아보면 어떨까요.
-구시연(서울 월촌초 6) 학생기자

평소에 추상미술 또는 현대미술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작정 난해하게만 느껴졌지만, 특별히 이번 취재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어서 새로운 분야를 접한다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전시 포스터에도 나타났듯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접해온 원·삼각형·사각형 등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어 생각보다는 쉬웠어요. 이번 전시로 본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특징은 주로 자연을 단순화했다는 것, 그리고 화가의 생각이 많이 들어갔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의 시대상에 따라 그림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도 신기했고요, 추상미술이라고 해서 꼭 다 몬드리안의 그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새로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추상미술이 우리 일상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죠. 앞으로 추상미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서윤하(경기도 홈스쿨링 중1) 학생기자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국립현대미술관, 동행취재=구시연(서울 월촌초 6)·서윤하(경기도 홈스쿨링 중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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