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포스코 CEO 퇴짜 놓은 국민연금, KT&G엔 유독 침묵 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3연임이 무산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백복인 KT&G 대표이사의 4연임 여부로 쏠리고 있다. 특히,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에 적극 목소리를 내왔던 국민연금의 입장이 주목된다. 소유 분산 기업이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돼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들로, KT&G를 비롯해 KT, 포스코 등이 해당된다. 앞서 국민연금은 KT와 포스코 CEO들의 연임 시도에 제동을 걸어 모두 무산시킨 바 있다.
4연임 가능성에, ‘셀프 연임’ ‘경영성과’ 논란
KT&G는 지난달 28일 시작한 차기 사장 후보 공개모집을 오는 10일 마감한다. 이사회 내 지배구조위원회가 후보군을 압축하고,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심층면접 등을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하면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최종 차기 사장이 선임되는 절차다. 백복인 대표가 4연임에 도전할 것인지 명확히 확인하지 않았지만, 후보 공모 마감을 사흘 앞둔 7일까지 포기 의사도 밝히지 않았다. 경제계에선 그의 4연임 도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KT&G 최초 공채 출신 사장인 백 대표는 2015년 10월 취임해 2018년, 2021년 2차례 재선임됐다.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백 대표 재임 시절 KT&G의 실적 악화를 지적하며 4연임에 반대하고 있다. KT&G의 영업이익은 2016년 1조4688억원에서 2022년 1조2676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더 줄어들 것으로 증권사들은 전망하고 있다. 주가는 백 대표 재임 동안 약 22%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28% 상승했다. KT&G 주식의 60.36%(2023년 6월말 기준)를 보유한 개인 주주들의 불만도 크다.
이런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백 대표가 연임에 도전하면 쉽게 성공하는, 이른바 ‘셀프 연임’이 가능한 구조라는 점을 FCP는 비판한다. 사장 후보를 결정하는 지배구조위원회와 사장후보추천위원회 모두 외부 전문가 없이 현 이사회의 사외이사들로 구성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유선규 FCP 상무는 “사외이사들은 백 대표 재임 기간 중 선임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백 대표의 연임에 찬성할 것”고 말했다. 현 사외이사 6명 중 4명은 2021년 백 대표 연임을 찬성했던 인사 그대로다.
KT·포스코 제동 건 국민연금, KT&G에는
KT&G의 ‘셀프 연임’ 가능 구조에 침묵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향후 입장이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중소기업은행과 미국계 사모펀드 퍼스트이글인베스트먼트에 이은 KT&G의 세 번째 대주주(지분율 6.31%)다.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지난 7월 KT&G 지분을 일부 매각해 3대주주로 바뀐 동시에,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바꿨다. 주주로서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KT&G 주가와 배당에 불만이 큰 행동주의 펀드 측은 국민연금이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유 상무는 “KT&G의 최대주주는 기업은행(6.93%)이지만, 국민연금의 시장 영향력 때문에 사실상 국민연금 입장에 따라 다른 주요 주주 입장도 좌지우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KT&G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최대주주인 기업은행도 현재까진 조용하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8년 백 대표의 첫번째 연임에 반대한 바 있다.
지난달 28일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언급하며 최정우 포스코 회장 3연임 도전에 부정적 입장을 낸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그 이후 언론 접촉을 피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사장 임명 절차에 대해선 어떤 입장도 내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 상무는 “포스코와 KT&G 모두 사장 후보 선임 절차가 불공정한 건 마찬가지인데 (국민연금이) 왜 KT&G에만 입을 닫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이건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의 CEO 선임 과정에 개입하는 사례를 반복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공단이 정작 국민에게 중요한 국민연금 제도 개선에는 소홀하면서도, 소유분산기업의 경영과 경영진 교체에는 유독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며 “개입 자체도 논란이 있지만 일관된 원칙이 없다보니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명한 방식으로 결정해 주주 권한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공단 이사장의 비공식 발언으로 민간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입장에도 눈길이 쏠린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소유분산기업의 경영 및 경영진 교체에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금융위원회 보고를 받으며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KT&G 사장 인선 문제는 아직까진 중요하게 보진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셀프 연임’ 논란에 대해 임민규 KT&G 이사회 의장은 지난 3일 입장문을 내고 “더욱 공정한 자격 심사를 위해 인선 자문단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KT&G는 백 대표 재임 기간 중 실적 비판에 대해선 “매출이 2016년 4조5033억원에서 지난해 5조8565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매출은 1조6895억원으로 역대 분기 매출 최고였다”며 매출 성장세를 강조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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