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각하’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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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閣下)'는 조선시대 판서 이상 대신을 지칭한 용어다.
북한에선 198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일컫는 여러 호칭 중 하나로 각하가 매체에 처음 등장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다음 날인 94년 7월 9일 북한 대남방송은 김정일을 각하라 부르며 권력승계를 공식화했다.
북한의 '각하' 사탕발림이 우리나라에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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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閣下)’는 조선시대 판서 이상 대신을 지칭한 용어다. 황제를 뜻하는 ‘폐하(陛下)’, 왕의 ‘전하(殿下)’, 왕족이나 정승의 ‘합하(閤下)’보다 서열이 낮다. 그런데 군사정권 시절 절대권력 대통령만의 칭호로 쓰여졌다. 박정희정권 청와대 경호실장인 차지철은 “각하가 곧 국가다”라고까지 했다. 권위적,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에 사용이 줄어들다 김대중정부에서 공식 폐기됐다.
북한에선 198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일컫는 여러 호칭 중 하나로 각하가 매체에 처음 등장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다음 날인 94년 7월 9일 북한 대남방송은 김정일을 각하라 부르며 권력승계를 공식화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뒤 각하 사용이 빈번해졌다. 2012년 4월 주체사상세계대회 선언문에서 “김정은 각하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영도자와 꼭 같으신 위인”이란 표현이 나왔다. 2013년 독일 취재진이 방북했을 때 안내원이 “그분을 각하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 축전 등이 올 때 노동신문 등에 ‘김정은 각하’란 제목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외국 정상을 상대로는 이용 가치에 따라 ‘각하’가 붙었다 떼졌다 했다. 북·미 관계가 좋던 2018년 12월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선 각하란 표현이 9번이나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차 방북했을 때 “대통령 각하”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이듬해 남북, 북·미 관계가 악화되자 “삶은 소 대가리”로 단숨에 격하됐다.
김 위원장이 지난 6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이례적으로 ‘각하’라 부르며 지진 피해를 위로하는 전문을 보냈다. 남한엔 각을 세우고 철천지 원수라던 일본에 뜬금없이 유화 제스처를 썼다. 정상 국가임을 보여주고 한·미·일 동맹을 흔들며 북·일 수교 떡고물도 염두에 둔 때문 아니겠나. 뻔한 수에 실소만 나온다. 남한 용어 쓰는 주민은 처벌하면서 남한에서 폐기된 한물간 호칭은 열심히 쓴다. 북한의 ‘각하’ 사탕발림이 우리나라에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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