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10명 중 4명 운동권 “특권론은 정치적 프레임”

양민철,박재현,박성영 2024. 1. 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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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운동권 특권정치 VS 검찰공화국]
與 비난 청산세력 실체 불분명
전문가 “선거철 지지층 결집용”


22대 총선을 석 달가량 앞둔 시점에서 상대 당을 겨냥한 정치권의 프레임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야당을 겨냥하며 “수십년간 386이 486, 586, 686 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검찰 정당’이라고 반박한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0일 논평을 통해 “한 위원장을 통해 국민의힘에서 ‘검사의힘’으로 그 본색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를 ‘운동권 특권세력’과 ‘검찰 공화국’으로 공격하는 상황인데, 이런 규정이 맞는지 21대 국회 구성을 토대로 짚어봤다.

운동권은 1980, 9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관련 단체에 속해 있던 인사를 통칭한다. 특히 1990년대에 탄생한 용어 ‘386’은 1960년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나온 진보 성향 30대를 지칭하는데, 시대 변화에 맞춰 486(40대), 586(50대), 686(60대)으로 명칭이 달라졌다. 한 위원장의 “386이 486, 586, 686 되도록”이란 언급은 이런 정의에 해당하는 세대를 포괄적으로 묶어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일보는 7일 기준 21대 국회 민주당 현역 의원(송영길 전 대표 등 탈당·제명 인사 제외) 167명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1980년대를 전후해 학생운동에 참여한 공식 기록이 남아 있거나 자신의 역대 선거공보물에 운동권 경력을 직접 기재한 의원은 10명 중 4명(65명·38.9%)이었다. 1957년생으로 연세대 재학 시절인 1981년 ‘전두환 퇴진운동’을 벌였던 우원식(4선) 의원,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1952년생 이학영(3선) 의원 등도 학생운동가로 분류했다.

‘86세대’ 범주에 해당하는 1960년대생·1980년대 학번 민주당 의원은 49명(29.3%)이었다.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 이력이 있는 의원은 총 30명(18.0%)이었다. 다만 1983년생 장경태(초선), 1991년생 전용기(초선) 의원 등 4명은 총학생회장 출신이지만 학생운동가가 아닌 정당인으로 분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보좌진으로 활동한 김한정·황희(모두 재선) 의원을 비롯해 1988년부터 선거 도전에 나선 김두관(2선) 의원 등 20명(12.0%)도 정당인으로 구분했다. 주요 경력으로 노동·여성·환경운동 등 시민단체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같은 법조인 단체 등에서 활동한 의원은 각각 시민운동가와 법조인으로 분류했다.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 창립 멤버이자 여성운동가로 활동한 김상희(4선) 의원 등 시민운동가 출신 민주당 의원은 총 14명(8.4%)이었다.


참여연대 민변 등에서 활동한 변호사 출신 이재정·박주민(재선) 의원을 포함해 검찰 출신 백혜련·소병철(재선) 의원, 판사 출신 이수진·이탄희(초선) 등 법조인 출신 의원은 총 23명(13.8%)으로 집계됐다. 그 외에는 언론인(12명·7.2%), 행정고시 출신 등 공직자(12명·7.2%), 교수 등 교육계(5명·3.0%) 등의 순으로 많았다. 기업인 등 기타 경력 의원은 총 16명(9.6%)이었다.


민주당 지도부에 이른바 ‘86세대’가 전진 배치된 것은 2016년 20대 총선이 기점이었다.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한 2014년부터 당대표·원내대표 구성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1960년대생·1980년대 학번 기준에 속하는 지도부는 2016년 5월 취임한 우상호 원내대표가 최초였다. 학생운동 출신 의원들의 원내대표 이력은 우원식(4선)·이인영(4선)·김태년(4선) 의원으로 이어졌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대표 및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김한길 안철수 박영선 문희상 문재인 김종인 추미애 전 의원 등이 올랐던 것과 비교해 학생운동 세대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 당대표(직무대행·비대위원장 포함) 역시 2021년 김태년 의원을 시작으로 윤호중 송영길 박홍근 우상호 의원까지 학생운동 경력 의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한동훈의 ‘특권 정치’ 비판, 실체는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민주당 의원 65명의 정치 입문은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시점부터 본격화했다. 정치에 뛰어든 이들의 평균 선거 출마 연도는 2007년 후반, 평균 당선 연도는 2014년 초반이었다. 원내 입성이 가장 빨랐던 의원은 김민석 의원이다. 1996년 첫 국회의원 당선 이후 3선을 역임했다. 2004년에는 이인영(4선) 윤호중(4선) 우원식(4선) 정청래(3선) 등 10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학생운동 경력 의원들의 당선 이력은 평균 2선이었지만, 21대 국회 들어 처음 입성한 초선 의원도 25명이나 됐다.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의원 30명의 평균 출마 연도는 2006년 초반, 국회의원 당선 평균 연도는 2014년 후반이었다. 이들의 당선 이력은 평균 1.9선이다.

한 위원장은 그동안 ‘운동권 특권’을 여러차례 거론하면서도 구체적 기준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운동권 정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야당 의원과의 설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경향을 보였다. 과거 운동권과 관련된 사건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거나, ‘내로남불’ 지적이 나오는 사례를 언급하며 자신을 향한 공격에 반박하는 방식이었다.

한 위원장은 2022년 9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자신을 ‘기득권 카르텔의 중심’이라고 비판하자 “이 나라의 진짜 기득권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이라고 많은 국민이 생각하실 것”이라고 응수했다. ‘민주당 돈봉투 의혹 사건’과 관련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와 논쟁을 벌이면서는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사회에 생산적인 기여도 별로 없이 시민들 위에 군림하며 수십 년간 대한민국 정치를 후지게 만들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2년 5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민형배 민주당 의원과의 언쟁이 과열되자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던 경우에 민간인을 고문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민주화운동 전체를 폄훼하진 않지 않으냐”며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언급했다. 이는 1984년 서울대 학생회 소속 일부가 민간인 4명을 감금해 프락치 활동을 자백하라며 폭행한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서영교 민주당 최고위원이 ‘이정섭 차장검사 처남 마약’ 의혹을 거론하며 법무부 장관 책임론을 꺼내자 한 위원장은 과거 서 최고위원의 딸·동생 보좌진 채용, 사건 청탁 논란을 언급하며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보시라”고 반박했다.

한 위원장은 송 전 대표 등을 향해서도 “일부 운동권 정치인들은 겉으로 깨끗한 척 하면서 NHK(유흥주점)에 다닌다”고 직격했다. 송 전 대표 등이 2000년 5월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전야제 참석을 위해 광주에 갔다가 ‘새천년NHK’라는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셔 논란이 된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내로남불” vs “정의 모호”

운동권을 비판하는 쪽에선 이들의 ‘집단 문화’와 ‘편 가르기’ 폐해가 주로 거론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정치를 종교로 만드는 사람들’에서 “운동권과 운동권 지지세력은 보수파의 운동권 비판을 자기정당화의 근거로 삼는다”며 “뭐든지 보수언론의 주장과는 반대로 하면 된다는 이야긴데, 이게 바로 전형적인 운동권 체질의 악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저서 ‘불평등의 세대’에서 “586 운동권 정치의 청년세대 약탈론”을 주장했다. 이 교수는 “586세대가 민주화운동으로 얻은 기회와 특권으로 후속세대에게 분배돼야 할 부와 권력을 지난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독점하면서 이제는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니라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했다”고 했다.

다만 한 위원장이 청산 대상으로 지칭한 ‘운동권 특권 정치’는 그 정의가 모호하다는 반론도 있다.


현 민주당 지도부 인적 구성에서 이재명 당 대표는 운동권 출신이 아닌 변호사 출신이다. 홍익표 원내대표 역시 정치학자이자 북한전문가로 분류된다. 최고위원 7명 중 학생운동가 출신은 서영교(3선)·정청래(3선) 의원과 서은숙(원외) 최고위원 등 3명이다.

당대표가 임명하는 정무직 당직자 의원 11명 가운데서 학생운동가 출신은 4명(조정식 김성주 김윤덕 한병도 의원)이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용퇴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영춘 전 의원과 최재성 전 정무수석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현역인 우상호 의원 역시 22대 총선 불출마 방침을 밝혔다. 86세대 운동권의 맏형 격으로 꼽히는 송 전 대표는 현재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민주당을 탈당했고, 정치권 재진입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학생운동 경력 정치인은 국민의힘 등 여권에도 존재한다. “운동권에서는 조국(전 법무부 장관)이 나한테 명함도 못 내민다”고 발언했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활동한 하태경 의원, 한오섭 대통령실 정무수석,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등이 대표적 인사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 위원장이) 운동권 특권세력 이렇게 묶어서 이야기할 실체가 있기는 있는 것이냐”며 “한 위원장이 말하는 운동권 특권 정치라는 건 뭘 이야기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시라”고 반박했다.

‘특권 세력’은 정치적 프레임 공격

전문가들은 여야의 운동권 논쟁이 과열된 프레임 공격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양당이 서로를 운동권 세력이라고 하거나 검찰당이라고 하는 것은 늘 있어 왔던 프레임 싸움”이라며 “그 이상 그 이하의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선거철마다 여야가 상대방을 ‘○○당’이라고 규정하며 지지층 결집을 유도하는 사례는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양당은 상대를 ‘친중 정당’ ‘무능 정당’과 ‘친일 정당’ ‘극우 정당’으로 규정하며 프레임 공방을 벌였다. 20대 총선에는 ‘친박 정당’ ‘부패 정당’ 대 ‘종북 정당’ ‘운동권 정당’ 프레임이 등장했다.

‘운동권 카르텔’ ‘운동권 특권’ 등의 용어가 오남용된다는 항변도 있다. 권지웅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민주화운동은 정치 체제를 바꿨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인권과 보편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성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최근 민주당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투자 논란이나 이경 전 상근부대변인의 보복운전 논란은 운동권 특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함께 묶여 비판 대상에 오르고 있다”며 “운동권에 대한 내로남불 비판과 정부 여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결국 (한 위원장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언어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프레임 싸움’이 정치권 세대교체론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선웅 문재인정부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은 “한 위원장 발언은 실제 586 세대교체에는 하등에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진영 정치를 부각하는 전형적인 여의도 사투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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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철 박재현 박성영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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