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전환의 1월, 정진하는 새해
그 어원은 두 얼굴의 '야누스'
과거 돌아보며 미래 맞이하는
두 개의 시선이 필요한 시기
전쟁·갈등의 2023년을 넘어
세계 50여개국 선거 열리는
선택의 해 2024년이 왔다
변화의 폭풍 속에 버텨내려면
균형 잡게 도와줄 새로운 지식
읽고 배우기를 멈추지 말아야
1월을 뜻하는 영 단어 ‘January’는 고대 로마신화 속 두 얼굴의 신 야누스(Janus)에서 유래했다. 하나의 몸에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는 출입문과 변화를 관장하는 존재로 로마의 유적지 입구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조각상이다. 반대쪽을 향하고 있는 두 얼굴이 암시하듯 야누스는 입구와 출구, 시작과 끝, 원시와 문명, 도시와 시골, 젊음과 노년, 행운과 불운처럼 대조적인 두 가치의 중간 지점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1월은 지난해를 보내며 새해를 시작하는 경계이자 두 방향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전환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음력설이 진정한 새해였기에 양력 1월은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두 해를 연결하는 다리 같은 기간일 수 있겠다.
야누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유명한 미술작품이 있다.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의 1920년작 ‘앙겔루스 노부스’. 이 라틴어 제목을 직역하면 ‘새로운 천사’지만 ‘미래에 올 천사’를 뜻하기도 한다. 클레는 천사를 주제로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천사들은 단순한 직선, 곡선, 원, 세모, 네모로 이루어진, 성별도 없고 위엄도 없는,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유머가 넘치는 아이들 그림 같다. 앙겔루스 노부스 속 천사의 두 눈이 한곳을 응시하는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쪽을 보기에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다. 지금은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은 유대계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었다.
클레의 친구였던 벤야민은 1921년 이 그림을 보자마자 1000마르크에 사들였고 나치 치하의 독일을 떠나 망명 중에도 소중히 간직했다. 그림 속 천사에게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얻었던 벤야민은 이 그림을 ‘역사의 천사’라고 명명했다. “천사는 자신이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는 듯 그려져 있다. 눈은 크게 뜨고 입은 벌렸으며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얼굴은 수많은 사건이 있었던 과거를 향하고 발 아래엔 과거의 잔해들이 쌓이고 있다. 천사는 죽은 자들을 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복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낙원으로부터 폭풍이 몰려오고 그 바람 때문에 날개를 닫을 수도 없다. 잔해더미는 쌓여가고 있고 천사의 몸은 미래를 향해 있진 않지만 폭풍은 천사를 미래로 내몬다. 이 폭풍이 바로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다.”(역사철학테제, 1940)
벤야민은 천사의 한 눈은 과거를, 다른 한 눈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고 봤다. 파국 속에서도 역사는 진보를 향해 가고 있고 천사는 그 거센 폭풍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듯 날개를 편 채 버티고 있다. 벤야민은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교수가 될 수 없었고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으며 원고료를 못 받아 늘 곤궁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목도한 무솔리니, 히틀러의 파시즘을 부정하며 정치적 활동에는 거리를 뒀지만 평생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1940년 독일 군대가 프랑스로 진군해 오자 그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스페인 국경으로 향했다. 피레네산맥까지 넘으며 간신히 프랑스를 탈출했지만 스페인 국경에서 붙잡혀 계획이 좌절되자 음독자결했다.
전운이 감돌던 20세기 초 유럽처럼 지난해는 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해였다. 새해에는 50곳 넘는 나라에서 40억명이 한 표를 행사하는 선거가 열린다. 2024년은 선택의 해인 것이다. 불어오는 폭풍 속에서도 균형을 잡으며 버텨내야 한다. 그러려면 그림 속 천사처럼 눈은 크게 뜬 채 깨어 있고 말은 아끼며 귀는 열어야 한다. 클레가 천사의 머리와 날개를 두루마리 문서인 여러 개의 스크롤로 표현한 건 인류가 쌓아온 문자와 지식을 표상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내용을 읽고 배우길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신문이든 책이든 다른 이들의 삶이든. 글을 읽을 여건이 되지 않으면 틈틈이 영화라도 보면서 어떻게든 오고야 말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다가오는 미래가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인류의 지혜가 담긴 글과 문자를 늘 가까이해야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균형 잡으며 버텨낼 수 있다.
클레의 천사는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인류가 보다 강건한 자세로 새 시대에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를 소망하며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다양한 천사 그림은 종교를 떠나 천사란 다름아닌 일상의 우리들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우미성(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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