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검사의 길
‘황운하 판례’ 파장이 만만치 않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전 중구 후보로 출마한 당시 황 치안감은 공무원 신분으로 당선됐다. 법정 다툼이 있었지만 사표가 수리되지 않더라도 선거 90일 전 사직원만 제출하면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덕에 현재까지 국회의원 신분이다.
이런 사례를 참고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22대 총선을 앞두고 현직 검사들이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거론되는 출마 예상자는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 박대범 광주고검 검사(전 창원지검 마산지청장),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서울고검장),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수원지검장)이다.
김 검사는 지난해 추석 때 “나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이다. 지역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는 사람이 되겠다”며 총선 출마를 시사하는 문자를 발송했다. “정치와 무관하다”고 내부에 해명해 단순 경고만을 받은 후 최근 출마를 공식화했다. 지난 6일 출판기념회까지 열었다. 박 검사는 총선 출마를 위해 외부인과 부적절한 접촉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고검으로 좌천성 인사를 냄과 함께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들에 대한 강력한 감찰을 주문했고, 두 검사에 대한 징계가 예상된다.
지역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이성윤 위원은 지난해 11월 조국ㆍ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출마 선언과 다름없는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신성식 위원도 지난달 20일 저자와의 대화 행사를 했다. 이 위원은 ‘김학의 긴급출금 사건’으로, 신 위원은 ‘한동훈 녹취록 오보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이 위원은 조 전 장관의 북 콘서트에 참석해 “윤석열 사단은 전두환의 하나회에 비견된다”는 등 정치적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감찰도 받고 있다.
이들 모두 비위와 관련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나 내부 감사 또는 조사 중인 때 퇴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국가공무원법(78조)에 따라, 아직 검사 신분이다.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을 자초한다”는 검찰 내부의 비판이 거세지만 대법원의 ‘황운하 판례’ 때문에 출마의 길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 위원과 신 위원이 출마하면 형식적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2019년 1월 기소된 상태였던 황운하 의원과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 황 의원은 1심 재판에서 수사 청탁을 받아 관련 수사를 진행한 점이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렇지만 하염없이 늘어진 재판 덕에 2심, 3심 판결은 언제 나올지 모르고, 임기를 꽉 채우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4월 총선 불출마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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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일 전 사직원만 내면 출마 가능
내부 감사ㆍ조사 중엔 예외로 해야
현행 법 규정보다 직업윤리 중요
」
검찰 안팎을 들끓게 하는 건 최근까지 일선 수사 지휘 라인에 있던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출마하려는 지역구까지 맘에 두고, 외부에까지 그 사실을 알린 이들이 각종 수사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을 것이라 믿을 수 있을까. 황 의원이 만들어놓은 사례가 있다지만 현직 검사의 정치권 직행을 불러온 건 ‘검사 전성시대’로 불리는 현 정부ㆍ정치권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물론 금융감독원장, 방송통신위원장, 특히 검사에서 법무부 장관을 거쳐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행한 한동훈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검사 경력이 붙어 있다.
어떤 이들은 국회에 발의돼있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거론하기도 한다. 검사가 퇴직한 후 1년 동안 공직 후보자 출마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 논란이 있다. 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일률적으로 국회 입성을 제한하는 건 부당한 측면도 있다. 입법 기관에 법을 잘 아는 이들이 입성해 제대로 활동한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수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는 마당에 자신의 입신이나 정치적 복권을 위해 현직 검사 신분으로 총선에 뛰어드는 건 다른 이야기다.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다”는 한 위원장의 말처럼 현직 검사들의 ‘길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질지도 모르겠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황운하 판례’를 나오게 한,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공무원의 면직 시점을 사직원이 접수된 때로 본다는 공직선거법 53조 4항을 개정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관련 개정안도 발의된 바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법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해도 소명감과 직업윤리에 따라 자제하는 모습이다. 꽁꽁 얼어붙을 빙판길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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