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종이신문 신년호가 주는 단상
토끼의 해에서 용의 해로 바뀐 새해 첫날엔 좀 분주했습니다. 신년호 종이신문을 파는 곳을 찾으러 헤맸기 때문입니다. 버스터미널이나 정류장 가판대가 홀연 사라져버려 손쉽게 구매하던 건 옛 얘기가 됐습니다. 종이신문 이용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지요. 하루 평균 종이신문 이용 시간이 17.5분(2011년), 7.9분(2015년), 4.2분(2019년), 2.7분(2021년)으로 추락 중입니다(『언론수용자 의식조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한때는 천하를 녹이던 퇴기의 신세가 된 신문입니다. 무상(無常)한 게 세상인가 봅니다.
매년 주요 종이신문의 신년호들을 챙겨보는 나름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새해에 대해 진중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는 여론조사 기획물은 매력적입니다. 낮은 응답률, 샘플의 대표성, 결과의 과도한 일반화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데이터 정보는 아침 항구에 제일 먼저 도착한 만선의 배가 부려놓는 물고기처럼 펄떡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에너지가 되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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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관련 여론조사 공통 등장
특검법에 소모적 여야 공방 필연
국민 우려에 사과·개선책 필요
내년 신년호, 미래 비전 제시를
」
방송과 디지털미디어의 현란한 대중 소구력에 밀려 종이신문이 미디어 경쟁력에서 임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비관론은 20년도 더 된 과학적 상식입니다만 미디어를 이용 빈도와 이용량으로만 평가해서는 곤란합니다. 정보의 질 또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요 종이신문의 콘텐트 생산 체제와 과정 및 인력은 여타 미디어를 압도하는 신뢰성, 완결성, 심층성, 종합성을 갖춘 ‘양질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유튜브, 소셜 미디어를 포함하여 셀 수없이 많은 자칭·참칭의 무책임한 미디어가 난립하여 선정성과 확증편향성 경쟁을 벌이는 속에서 제 값어치를 하는 ‘좋은 정보’를 찾으려는 소비자는 목이 탑니다. 혼돈의 과도기를 거치노라면 좋은 정보는 더 주목받을 것이고, 정보 소비자의 옥석을 가리는 능력은 예리해질 것입니다.
올 신년호들이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여론조사 콘텐트는 모두 4월 10일 22대 총선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한국인은 모두 시인이라는 얘기처럼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모두 정치적인가 봅니다. 내용은 주로 여당과 야당, 여야 대표, 차기 대통령, 신당에 대한 지지도와 분석입니다. 지지도는 지역이나 세대와 같은 요인에 따라 변동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어느 한쪽의 우세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정치의 문제인 거대 양당의 비타협·진영대결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신당의 의석 확보가 필요한데, 양당을 거부하는 무당층이 30% 안팎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원내 1당과 2당의 의석 차이가 작을수록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될 수 있다지만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선거전략과 후보자를 살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1명만 살아남는 비정한 시험, 신뢰도가 꼴찌인 직업에 인생을 거는 이들이 이리 많다는 게 신기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제공되는 가공할 권력과 특전이 이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대 야당이 밀어붙인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공통적인 이슈로 여론분석, 기사, 사설로 다양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총선용 정략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소모적인 여야의 말싸움은 필연적이고, 그 탓으로 총선이 형해화될 것 같아 걱정됩니다. 어쨌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우세한 여론조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다수의 국민이 우려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정직함과 ‘국민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는 정신에 걸맞은 설명과 개선책이 필요합니다. 사과도 주저치 말아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고통의 끊임없는 악순환은 효과적인 사과가 부재하기 때문에 초래되었다”(『한 마디 사과가 백 마디 설득을 이긴다』, 케이도)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사과는 위기관리 전략을 넘어 전화위복의 사회통합을 가져오는 소통행위입니다.
내년의 첫날 주요 종이신문들은 국민의 삶의 질을 고양하는 정책, 국민이 나라에 바라는 의제에 대한 여론조사 데이터를 비중 있게 다루었으면 합니다. 정치꾼들의 권력 욕망보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다루는 콘텐트를 기다립니다. 44세 늦깎이로 데뷔한 작가 이병주는 27년간 한 달에 1000매 이상의 원고지를 메우는 초인적인 작업을 하며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습니다. 2024년 1월 1일 신년호에 담긴 정보가 역사가 될지 신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역사도 되고 신화도 되면 좋겠습니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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