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길눈’과 양잠이 빚은 마을, 시라카와촌
이른바 ‘일본 알프스’에 포함된 기후현 하쿠산 일대의 첩첩 산골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엄청난 양의 눈이 쌓여 겨우내 고립된 ‘외딴 섬’이었다. 연 강설량이 972㎝, 최대 적설량이 297㎝라니 한 길(3m)이 쌓이는 ‘길눈’의 설국이다. 생활이 불가할 것 같은 이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라카와(白川)촌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이 마을은 ‘갓쇼(合掌)조’라는 매우 독특한 집들로 이루어졌다. 마치 스님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45~60도의 가파른 맞배지붕은 적설에 대비하기 적합한 구조다. 지붕 속 공간까지 활용해 3~4개 층이 되며 1층은 주택으로, 2층 이상은 창고와 작업공간으로 사용한다. 지붕은 ‘사스’라 하여 억새나 갈대를 두텁게 쌓아 방수와 보온 기능이 뛰어나다. 사스는 대략 30년마다 교체하는 데 100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대형 공사로 ‘유이’라는 마을의 협업조직이 담당해왔다.
원래는 산골 좁은 평지에 논농사로 연명하던 소박한 집들이었으나 18세기에 양잠업을 도입하면서 갓쇼조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높은 지붕 속 공간이 누에치기의 습도와 통풍에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인근 도시들이 번성해 여러 물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시라카와는 누에고치뿐 아니라 화약과 종이 생산도 담당하게 되었다. 산골에 일종의 주-공 복합단지가 들어서게 된 까닭이다.
높은 건물은 지진이 잦은 일본의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갓쇼조 주택은 모든 구조체를 짚으로 꼰 새끼줄로 엮어 매어 지지한다. 원초적이기는 하지만 웬만한 진동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효율적 구조법이다. 다시 말해 시라카와의 집들은 적설에 대비하고 양잠에 적합하며 지진에 유리한 최적의 구조물인 셈이다. 40여 채 갓쇼조 주택들이 모여 동화 속 마을 같은 오기마치는 이미 국제적인 관광지로 변했지만, 인근의 스가누마나 아이노쿠라 마을은 아직도 예전의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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