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3차원의 세계에서 발견!
요즘 불가리안백에 빠졌다. 불가리안백은 수직과 수평의 세계에 살던 나에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 인터스텔라다. 바벨이나 덤벨처럼 비교적 명확한 형태를 지닌 다른 도구와 달리 불가리안백은 이게 무슨 모양이라고 설명하기 좀 애매하다. 애초에 모티프가 양이기 때문이다. “매에~” 하고 우는 바로 그 동물이 맞다. 우리나라에서 씨름 천하장사에게 황소 한 마리가 주어졌듯이 불가리아 전통 씨름판에서는 챔피언에게 양을 포상으로 주었다고 한다. 이 양을 어깨에 들쳐 메는 게 챔피언의 필수 세레모니였는데, 그 모습을 모티프로 탄생한 것이 불가리안백이다. 모래주머니와 섬유, 고무로 구성돼 있는 내부를 유선형의 가죽이 감싸고 있으며, 메인 핸들 두 개와 보조 핸들 세 개, 스트랩 두 개가 달려 있다. 초승달 같기도 하고 크루아상 같기도 하다(솔직히 나는 처음에 개똥 주머니 같다고 생각했다. 새 봉투가 아니라 이미 개똥이 담겨 있는!).
런지와 스쿼트, 프레스 등 기존 동작들도 수행 가능하지만 불가리안백의 가장 큰 특장점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동작은 ‘스핀’이다. 메인 핸들을 양손으로 잡고 온몸의 무게중심을 이동해 가며 큰 호를 그릴 수 있는데, 이 호가 몸의 앞에서 시작해 뒤통수로 넘어간다. 신발주머니를 돌리듯 원이 몸의 옆에서만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카우보이가 올가미를 돌리듯 원이 몸 위에서만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불가리안백이 그리는 원에는 한가운데에 내가 있다. 아, 그렇다면 훌라후프처럼 수평으로 돌리는 건가? 그것도 아니다. 불가리안백의 스핀은 2차원이 아닌 3차원의 호를 그린다. 비유하자면 나와 불가리안백의 관계는 지구와 달, 아니 명왕성과 카론의 관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인력과 척력은 생각보다 동등하게 작용한다.
불가리안백 스핀도 마찬가지다. 백이 궤도를 탈 수 있게끔 가운데에서 적당한 구심력과 원심력만 유지해야 한다. 그 이상의 힘은 욕심이다. 원이 2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매 순간 적절히 중심을 조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불가리안백을 놓아줘야 하는 구간에서는 여유롭게, 당겨야 하는 구간에서는 과감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연애와 비슷하다. 밀고 당기는 장력으로 상대를 계속해서 내 반경에 들어오도록 유지하는 것, 또는 내가 튕겨 나가지 않고 상대 주변에 존재하는 것. 몸 전체로 만들어내는 회전은 스스로를 하나의 우주로 느끼게 한다. 몸 안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에너지는 만조와 간조 때 파도의 움직임과 같다. 결국 도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백이라는 사실까지 깨닫는 것은 사뭇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 몸은 분명 가로와 세로에 더해 공간이 존재하는 3차원을 살고 있다. 나는 불가리안백 이상으로 몸을 3차원으로 움직이게 하는 도구를 만나본 적 없다. 그래서 효과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11년 차가 넘어가는 운동 인생 내내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원인 불명의 어깨와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몸을 혹사시키며 운동하던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몸이 제일 내게 딱 맞는다는 느낌이 들고, 이 이상으로 키우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어깨와 복근이 남들이 알아볼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회전으로 인해 림프를 비롯한 몸의 모든 순환이 원활해지는 걸 또렷하게 느낀다. 이 운동이 모든 것의 정답은 아니더라도 아직 당신이 떠올리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의 선택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불가리안백을 유력한 선택지로 두고 고심해 보길 바란다. 11년 전 처음 크로스핏을 시작한 이후, 운동으로 이토록 큰 설렘을 오랜만에 느끼는 내가 보증한다.
에리카
여성 전용 헬스장 ‘샤크짐’ 공동대표.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30대에 완전한 ‘운동인’으로 각성했다. 더 많은 여자가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하에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 역시나 여성 전용 바 ‘에리카’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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