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주차장’ 만든 서울시…퇴근길 지옥사태에 화들짝
평소 광역버스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 A씨는 지난주 내내 퇴근길 지옥을 맛봤다. 서울역에서 명동역까지 한 정거장 가는 데 걸린 시간만 1시간이 넘었다. 처음엔 사고가 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서울시에서 명동입구 정류소에 설치한 ‘줄서기 표지판’ 때문임을 듣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A씨는 7일 국민일보에 “원래도 인도 바닥에 차량 번호가 써 있어서 그걸 보고 줄을 서곤 했다. 평소에도 상습 정체 구역이었는데, 뭘 해결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한 명동입구 정류소에는 총 29개 노선이 지난다. 출퇴근 시간에만 운영하는 노선 4개를 제외하더라도 25개나 된다. 하루 탑승객은 거의 1만명에 달한다.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이곳에 줄서기 표지판 총 25개를 설치했다.
원래 이곳 정류소 바닥엔 버스 번호가 파란색 라커나 페인트로 적혀 있었다. 버스 회사에서 편의상 임의로 적어놓은 것이었다. 탑승객들은 바닥에 쓰인 번호를 확인한 뒤 줄을 서곤 했다.
그렇다고 모든 버스 번호가 다 적힌 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위험한 상황도 많이 발생했다. 버스 정차면까지 진입한 뒤 승객을 태워야 하지만, 일부 버스의 경우 그날그날 정류소 정차 상황에 따라 정차면보다 훨씬 전에 승객을 태우는 경우도 많았다. 정차면에 서있던 승객들은 행여 버스를 놓칠까 뛰어가기 일쑤였다. 다른 버스 줄과 엉키는 일도 많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단 뒤에서 봐도 버스가 어디 서는지 알 수 있도록 하자고 해서 (표지판을) 만들었다. 버스를 잡기 위해 차도로 뛰어가거나 하는 경우도 많고 민원도 많았다”고 말했다.
줄서기 표지판이 명동을 주차장으로 만들 줄은 서울시 관계자들도 미처 예상치 못했다. 광역버스들이 고정된 정차 위치에 선 뒤에야 승객을 태울 수 있게 되면서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광역버스 줄이 명동입구에서 서울역 인근까지 100m 이상 늘어섰다. 흡사 ‘버스열차’를 연상시켰다. 평소 막혀도 20분 걸리던 ‘서울역-명동입구’가 1시간 넘게 소요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줄서기 표지판 설치 전에는) 무질서 속에 그래도 지금보단 빠른 승하차가 이뤄졌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전날 급히 현장을 찾아 “정해진 줄에서만 버스를 타다 보니 앞에 버스가 빠지지 않으면 뒤에 버스가 밀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정말 많은 불편을 초래하게 됐는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일단 문제의 원인이 된 줄서기 표지판을 철거하고 운영을 이달 말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고심 끝에 서울시는 노선 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수원, 용인 등으로 향하는 6개 노선(M5107, 8800, M5121, M5115, 5007)에 대해 승하차 지점을 지금의 명동입구에서 청계천 광교 인근에 위치한 우리은행 종로지점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9401번 버스의 경우 명동입구 전 롯데영프라자 시내버스 정류소로 정차 위치를 옮긴다.
명동입구 정류소로 진입하는 광역버스 중 5개 안팎의 노선을 을지로와 종로 방면에서 즉시 회차하거나 명동 정류소에 무정차하도록 조정해 도심 내부 교통 혼잡을 줄일 계획이다. 그간 해당 노선들은 서울역을 거쳐 명동까지 진입해 도심 차량 흐름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서울시는 이달 둘째 주까지 해당 노선의 변경을 경기도와 협의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달 말까지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에 직권 노선 조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1개 노선에 대한 조정이 이뤄질 경우 데이터상으로 일일 탑승객 수가 약 40%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게 된다면 줄서기 표지판을 시행하더라도 이용하는 승차객 자체가 줄기 때문에 혼잡도는 줄어들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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