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특화매장 ‘CU 홍대상상점’… 그야말로 ‘라면 천국’
파격 시도에 과연 될까 노심초사
특별한 경험 찾는 소비자들 열광
외국인 관광객에 명소로 꼽히기도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예상되는 곳들이 있다. 처음 가보는 장소여도 그렇다. 이를테면 편의점 같은 곳. 규격화된 짜임새, 예측 가능한 구성, 낯선 장소에서도 그려낼 수 있는 동선. 그런 편리함이 편의점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흔한 광경을 예상하고 들어섰을 때, 어쩐지 주춤하게 되는 편의점이 있다.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분위기는 아닌데, 낯설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색색의 ‘무언가’가 가득 꽂혀있다. 입구와 벽 사이에는 둥근 스탠딩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모습은 ‘컵라면’과 닮았다. 벽면을 가득 메운 것은, ‘라면’이다.
‘라면에 진심’인 공간이 펼쳐져 있다. 이름에도 그 마음이 담겼다. ‘라면 라이브러리’. 그래서 재밌고 흥미롭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가 지난달 초 서울 마포구에 오픈한 ‘CU 홍대상상점’은 라면특화매장으로 꾸려졌고, ‘라면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까지 화제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라면 라이브러리’를 검색하면 각종 후기 영상과 인증샷이 쏟아진다. 한 달간 라면 매출의 62%는 외국인에게서 나왔다. 이 매장 매출 1위는 라면인 것도 특별한 대목이다.
지난 2일 오후 방문한 CU 홍대상상점 ‘라면 라이브러리’에는 연초부터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매장에서는 베트남에서 왔다는 대학생 응우옌(20)씨를 만났다. 응우옌씨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한국라면을 여기에 오면 구할 수 있다는 유튜브를 보고 찾아 왔다”며 “불닭볶음면이나 신라면이 워낙 유명해서 많이 먹어봤는데 ‘순한맛’은 드물어서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의 손에는 순한맛 라면인 ‘안성탕면 해물맛’이 들려 있었다.
세계적으로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면서 라면 시장도 급성장했다. 한국음식의 대표 메뉴로 라면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잖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라면 수출액 규모는 9억3830만달러(약 1조21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4.7% 증가했다. 라면 수출 1조원 시대를 맞게 됐다.
고물가 시대 살아가는 글로벌 소시민들에게 한 끼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성장한 ‘K라면’이 소시민의 생활밀착형 플랫폼 편의점과 만나서 시너지를 극대화한 공간이 ‘라면 라이브러리’다. 라면 라이브러리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고, 얼마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을까. 지난 2일 홍대상상점을 거쳐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에서 라면 라이브러리 구축의 주역인 이은관 상품본부 전략MD팀장과 황지선 상품본부 가공식품팀장을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었다.
이렇게 잘 될 줄 알았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복잡한 표정으로 웃음부터 터뜨렸다. “몰랐죠. 오픈하고 일주일은 매일 홍대상상점으로 출근하면서 노심초사했습니다.”(황지선 팀장) “출구전략도 고민하면서 준비를 했는데 매일이 새롭더라고요. 하루하루가 수정과 업그레이드의 시간이었어요.”(이은관 팀장)
한쪽 벽면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라면으로 메우는 건, 업계에선 파격적인 시도다. 봉지라면은 편의점에서 주력 상품이 아니다. ‘안 되는 걸로 벽 하나를 채우다니.’ 이런 우려가 나올법한 광경이었다.
“한 켠의 빈 공간을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용기라면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책처럼 봉지라면을 꽂아놓는 건 당장 매출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VMD(비주얼머천다이저·브랜드 콘셉트에 맞춰 상품으로 매장을 꾸미는 것)를 대규모로 보여주는 것 자체로 의미 있지 않겠나. 그래서 시도를 하게 됐습니다.”(이은관 팀장)
하지만 결과는 뜻밖의 대박이었다. 라면 라이브러리의 봉지라면은 ‘비주얼 담당’이었다. 하지만 매출로 연결되는 의외의 결과가 이어졌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오픈해 한 달 동안 판매된 라면은 총 1만5000여개다. 하루 평균 500개씩 팔린 셈이다. 일반 점포 판매량의 10배 이상에 이르는 수치다. 편의점에서는 컵라면 매출이 봉지라면 매출의 4배가량 된다. 라면 라이브러리에서는 라면 매출 비중의 72.3%가 봉지라면, 27.3%는 컵라면이었다.
봉지라면 매출이 높을 수 있었던 건 ‘즉석조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석조리기계가 매장에 비치돼 있어서 봉지라면도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다. 이 팀장은 “국내 소비자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영화, 예능, 드라마 등 K콘텐츠를 통해 점포에 설치된 즉석조리기로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더라”며 “즉석조리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라면 라이브러리의 봉지라면은 애초에 ‘판매용’ 개념이 아니었다. 황 팀장은 “판매순위와 재고를 고려해서 제품을 구성했다. 일부 재고를 각오했는데 오히려 봉지라면이 인기였고, 심지어 빠르게 팔려나가는 걸 목격했다”며 “소비자 관심을 보면서 일주일 된 시점에 ‘이거, 됐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일주일 만에 확인할 수 있었던 소비자 반응은 모든 예측을 빗나갔다. 이를테면 ‘매출 상위 톱5’ 제품의 순위다. 아무리 ‘남들은 잘 모르는 라면’까지 구성했다고 해도, 라면업계를 지배하는 건 스테디셀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면 라이브러리’의 인기 상위 순위는 스테디셀러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우리가 ‘잘 모르는 라면’이거나 ‘나만 알고 싶은 라면’일 수 있겠다. 순위는 이렇다. 부대찌개라면(농심), 참깨라면, 크림 진짬뽕(이상 오뚜기), 얼큰 장칼국수(농심), 진짬뽕(오뚜기) 순이었다.
황 팀장은 “첫 시도인 만큼 인지도가 있을 법한 상품들 중심으로 구성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중에서도 ‘생소한 상품’ 위주로 찾더라”며 “앞으로는 보다 과감하게 희귀한 상품, 해외 상품으로 확대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예전에는 관광객이 ‘기념품’을 샀다면 지금은 ‘경험품’을 산다. 경험이 상품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시대인 만큼, 디테일과 스케일에서 소비자 경험을 충족시켜주는 게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 방문하기 전 줄 수 있는 팁은 두 가지다. 눈치 보지 않고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다는 점, 매장에 표기된 안내로 매운맛 정도를 가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업에서는 매일 홍대상상점에 출근하며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매장의 작은 문구 하나까지 고심해 만들었다. ‘제2의 라면 라이브러리’도 구상하는 중이다. 올해도 라면 시장은 제조부터 플랫폼까지 뜨거울 전망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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