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이재명…정치 테러 끊고 싶나요 [신율의 정치 읽기]

2024. 1.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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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 파장 커져
‘정치의 인격화’로 정치적 상대 타도 대상 전락
민주당 분열 수면 아래로…국민의힘 타격 가능성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2024년 새해 벽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괴한에게 피습을 당했다. 역대 다른 피습 사건보다 그 심각성이 크다. 일단 흉기가 식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피습 흉기는 커터 칼이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은 60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중상을 입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망치로 가격당한 부위도 머리였지만, 다행히도 위중한 상황은 면했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 피습 부위는 목이다. 목을 식칼로 찌른 것은 범인이 이재명 대표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테러는 국적을 가리지는 않는다. 바로 얼마 전, 아베 전 일본 총리가 테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 의장, 우리식으로 말하면 국회의장을 맡았던 볼프강 쇼이블레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한 괴한으로부터 피습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미국에서는 정치 테러로 대통령이 목숨을 잃은 적도 있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지만, 발생 빈도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테러가 자주 발생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송영길 전 대표 외에도,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는 과도로 공격받았고,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단식 투쟁 중 공격을 받았다. 정치인에 대한 계란 투척까지 합하면 그 빈도는 더욱 늘어난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월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흉기 피습으로 입원 치료 중인 이재명 대표의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유독 정치적 테러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우리 정치 문화에 뿌리 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치의 인격화란 정치를 시스템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는 특성을 말한다.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특정인에 대해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정치의 인격화에 충실한 이들은, 특정 정치인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고, 민주주의를 상징하며,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반면 해당 정치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측은 모조리 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면, 정치적 상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 된다. 이때 정치는 ‘감성화’된다. 정치가 감성화되면, 이성적인 판단으로 움직여야 할 정치는 사라진다. 즉,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야 할 정치가 사라지고, 그 대신 자신들이 추종하는 정치인 혹은 정치 세력만이 절대 선이고 절대적 정의라는 식의 ‘자가당착적 무오류성의 강조’만이 판치게 된다.

이때 상대를 악으로 생각하는 성향은 더욱 강화된다.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정치의 감성화라는 괴물을 낳고, 정치의 감성화가 정치의 인격화를 더욱 강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정치 팬덤’ 현상이다. 정치 팬덤은 정치의 인격화 현상의 산물임과 동시에, 정치의 감성화를 촉진시키는 촉매제다. 정치 팬덤 본인들은,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이야말로 민주주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정치 팬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행위임에도 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팬덤들이 미국 의사당을 공격했던 것을 보면, 팬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망가트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표 테러 배경에는 바로 이런 극단적 형태의 정치 감성화가 자리한다. 또한 이 대표에 대한 테러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라든지 혹은 “자작극”이라는 진보, 보수 양측에서 나오는 황당한 주장도, 이런 정치의 감성화의 극단적 양태다. 한마디로 이번 테러의 원인이, 테러 이후 정치적 공방에서도 그 위력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정치권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정치권은 팬덤에 끌려가고 그래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정치적 상대방을 타도하거나 제압하려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정치인 스스로가 정치를 사라지게 하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이다.

정치란 본래, 무한 투쟁인 사회적 갈등을 정치라는 이름의 링 위에 올려놓고, 규칙에 입각해 대신 싸워 갈등을 축소시키는 것이 그 존재 목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그대로 투영하거나 오히려 증폭시킨다. 동시에 갈등 축소를 존재 목적으로 하는 정치를 정치인들이 나서서 말살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 토양을 없애는 ‘기현상’이, 제1야당 대표 피습으로 이어졌다 볼 수 있다.

결국 정치의 인격화와 감성화를 없애지 않으면, 그리고 정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 가지 중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쉬운 개선책이다. 정치의 인격화는 ‘문화적 존재’기 때문에 단시간에 교정되기 어렵다. 정치권이 먼저 나서 상대를 증오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그리고 상대를 협상의 파트너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치는 복원될 수 있다. 당장은 강성 지지층의 비난을 받겠지만 이런 비난을 감수해야만 정당이 ‘이익 집단’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공당’임을 증명할 수 있다.

이번 이재명 대표 테러는, 앞으로의 정치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이다. 이 대표와 관련된 재판 중,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나 위증교사 사건 관련 1심 재판 결과는 2월 정도에 나올 가능성이 점쳐졌는데, 이게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재판이 지연되면, 간접적으로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현재 민주당의 분열 움직임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이낙연 전 대표 신당 창당 선언이 1월 4일경에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이런 정치 일정이 지켜지기 상당히 힘들게 됐다. 일정을 계획대로 강행한다면, 이재명 대표 체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마저도 신당 창당을 외면할 수 있다. 테러 때문에 병상에 있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인간적 도리가 아니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과 상식’도 마찬가지다. ‘원칙과 상식’에 속한 의원들 역시, 1월 초순에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됐다.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비명들은 본의 아니게 계획을 수정하게 됐고 스텝이 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국민의힘도 일정 부분 타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피해자에게 강한 동정심을 갖는 성향이 강하다. 범인 범행 동기가 어떻든, 이번 테러의 피해자는 분명 이재명 대표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가 강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뜩이나 정권 심판론으로 선거가 흐를 가능성이 있는 판국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동정 여론이 강해지면, 여당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 피습 사건이 유권자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와 별개로 이번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고,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치의 감성화,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증오의 악순환을 정치권이 나서서 끊어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2호 (2024.01.10~2024.01.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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