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사흘째 서해 포사격…김여정은 “포탄 아닌 폭약” 기만전술
북한이 7일까지 사흘째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포 사격을 이어갔다. 이를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남북 관계를 ‘적대적 관계이자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언제든지 무력충돌을 기정사실화 하라”고 지시한 것의 후속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말폭탄’을 행동으로 뒷받침하려 한다는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군이 오후 4시부터 5시 10분까지 연평도 북방에서 90여 발 이상의 포병 사격을 했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의 계속되는 적대행위 중지구역 내 포병 사격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라면서 “북한에 엄중 경고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군 포탄이 NLL 이남에 낙하한 것은 없고, 우리 군·민간인 피해는 없다”며 “우리 군의 대응 사격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저녁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7일 강령군 등암리로부터 연안군까지 배치된 해안포 23문을 동원해 88발의 포탄으로 해상 실탄 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총참모부는 “해상 군사분계선과 평행선상의 동쪽 방향”이라고 포 사격 방향을 설명하면서 “방향상으로 군사 분계선과 무관하며 적대국에 그 어떤 의도적인 위협도 조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앞서 총참모부가 5일 200발의 해안포 사격 이후 “백령도와 연평도에 간접적인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포를 쏘고 나서 “위협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며 강조하는 것으로 도발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에 앞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된 담화를 통해 “전날(6일) 우리 군대는 130mm 해안포 포성을 모의(모방)한 발파용 폭약을 60회 터뜨렸으며, 단 한 발의 포탄도 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여정은 “대한민국 군부 깡패들의 실지 탐지 능력을 떠보고 개망신을 주기 위한 기만 작전을 했는데 그들이 우리가 던진 미끼를 덥썩 물었다”라고도 했다. 실제로는 이날도 포를 쏘면서 “전날 쏜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한 셈인데, 군의 혼란과 남·남 분열을 부추기기 위한 일종의 기만 전술인 걸로 풀이된다.
김여정의 이런 주장에 대해 합참은 “수준 낮은 대남 심리전”이라며 일축했다. 합참 관계자는 “코미디 같은 저급한 선동으로 대(對)군 신뢰를 훼손하고 남남 갈등을 일으키려는 북한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합참은 “군 정보 당국은 북한의 활동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다”면서 군이 단순히 포성 청취에 의존하지 않고 정보 자산을 활용한 감시를 하고 있다는 점도 암시했다. 군에 따르면 북한군의 포 사격 여부는 포성 청취와 육안 확인 뿐 아니라 대포병 탐지 레이더 등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최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강조하고 있는 ‘즉ㆍ강ㆍ끝’(도발 시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응징) 원칙에 관해 “(즉ㆍ강ㆍ끝이) 즉사, 강제죽음, 끝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앞서 북한은 5일 오전 황해남도 장산곶·등산곶에서 NLL 북방 해안포 약 200발을 발사했고, 6일에도 방사포·야포 등 60발의 포병 사격을 감행했다. 200발→60발→90발(7일)로 우리 군의 대응 수위를 떠보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합참은 5일에는 북한의 사격이 있은지 약 4시간 뒤에 “서북도서 해상 사격 훈련”이라며 400발을 북측 방향으로 쏘는 것으로 맞대응 했다. 6일과 7일에는 구두 경고에 그쳤다.
무엇보다 북한이 포 사격을 한 수역은 9.19 군사합의에서 남북이 적대행위 금지구역으로 지정한 완충 구역이다. 특히 이번 북한의 해상 포 사격으로 남북 간 ‘해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이 무력화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9.19 군사합의상 육·해·공 적대행위 금지와 관련해 앞서 작년 11월에는 북한의 군사 정찰 위성 발사를 계기로 한국은 이에 대한 효력 정지를 선언했고, 비행금지구역 내 적대행위 금지 합의는 유명무실화 됐다. 공중, 해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이 차례로 무력화 된 만큼 남은 건 ‘지상 적대행위 금지구역’ 뿐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육로 도발이 조만간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합의문에 따르면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5㎞ 안에서 포병 사격 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이번 포 사격을 계기로 군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이은 포 사격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북한 대내용은 물론 총선 전까지 남한 내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 관계는 ‘적대적 교전국’ 등 김정은이 뱉어놓은 말이 있기에 행동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처음부터 고강도 도발로 카드를 다 써버리면 충격을 줄 수 없기에 북한은 9.19 군사합의 파기에 맞는 저강도 도발부터 살라미로 도발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고 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여정의 담화는 우리 군의 탐지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낸 것일 수 있다”면서 “5일 200발, 6일 60발 등 차이를 둬서 한국군의 대응 수위를 떠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남북 간 재래식 전력이 차이 나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기 때문에 NLL 북방으로 선을 넘지 않으며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식의 ‘간보기 도발’이 오는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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