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몰린 태영건설, 법정관리 대신 워크아웃 희망한 이유[송승섭의 금융라이트]
IMF 사태가 만들어낸 '워크아웃'
재산권 침해·국민혈세 투입 논란도
자구책 낸 태영…채권단 "불충분"
위기에 내몰린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라는 두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애초 태영그룹 측은 워크아웃을 희망했고, 시장에서도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이번 주말까지 워크아웃에 필요한 조건을 마련하라고 제시했음에도, 태영그룹 측이 응답하지 않고 있죠. 왜 태영그룹은 워크아웃을 희망할까요? 법정관리로 가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법원 말고 채권단이랑 얘기하자'…IMF가 만든 워크아웃
기업의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는 도산 직전에 진행되는 절차입니다. 두 제도 모두 채무조정과 구조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아주 다른 제도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주도권이죠. 워크아웃의 주도권은 돈을 빌려준 사람(채권단)에 있습니다. 기업과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빚 갚는 방법을 논의하죠. 반면 법정관리는 법원이 결정을 내리고요.
그런데 왜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라는 두 절차를 만들었을까요? 둘 다 위기기업을 다루는 제도라면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말이죠. 원칙적으로는 법정관리를 밟는 게 맞습니다. 법정관리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는 정식 절차입니다. 물론 워크아웃도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근거하고 있지만, 2027년 초 효력이 중단되는 한시법입니다. 즉 워크아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시행하는 법이란 거죠.
워크아웃 제도가 만들어진 계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입니다. 당시 수많은 기업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위기기업들이 모두 법정관리를 밟아야 했던 거죠. 당장의 유동성 위기만 넘기면 살아날 기업들도 자칫 10여년이 걸리는 법정관리 탓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2001년 살릴 기업은 살리자는 취지에서 법원이 아닌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 제도가 등장한 거죠.
'기업 살리기' 좋지만…재산권 침해·국민혈세 투입 논란도
워크아웃은 기업이 아주 선호하는 제도가 됐습니다. 법정관리와 달리 워크아웃은 3~4년 정도로 기간이 짧습니다. 채권단이 동의만 하면 채무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경영권 유지가 가능합니다.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법원은 기업에 ‘법정관리인’을 파견합니다. 법정관리인은 회사경영, 자금관리, 회사정리를 맡습니다. 기업의 소유주나 대표가 권한을 박탈당할 수 있죠. 반면 워크아웃은 채권단과의 자율적인 채무조정이니 그럴 일이 희박하고요.
다만 워크아웃은 출범 이후부터 위헌 논란으로 존폐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실제 법원에서는 기촉법이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며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채권단 75%의 동의만 얻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구조가 원인이죠. 한 기업이 A은행에서 50억원, B은행에서 25억원, C·D·E·F·G은행에서 각 5억원을 빌려 총 100억원의 채무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워크아웃 시행과 채무조정 방식은 75%를 차지하는 A·B은행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25%를 차지하는 나머지 5개 은행은 아무리 불리한 협상이어도 받아들여야 하죠.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혜 시비가 있거든요. 국민 관심도가 높은 기업의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수장이 국책은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국책은행은 기본바탕이 국민의 세금으로 꾸려져 있고요. 그런데 워크아웃을 시작하면 빚을 깎아주거나 추가로 돈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거죠. 워크아웃 때마다 '민간기업이 경영을 잘못해 위기에 내몰렸는데, 세금으로 살려주는 게 맞느냐’는 식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죠. 그래서 채권단들이 워크아웃의 조건으로 대상 기업에 ‘뼈를 깎는 노력’을 주문하는 겁니다.
자구책 내놓은 태영…정부·채권단 "충분치 않다"
태영건설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이 악화한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을 신청했습니다. 주 채권단은 산업은행이죠. 태영건설의 모회사인 태영그룹은 윤세영 회장이 직접 채권단을 설득하며 워크아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그대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승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태영 측이 4가지 자구계획안을 제시한 겁니다. 그룹사인 태영인더스트리 매각금액(1549억원) 지원, 에코비트 매각, 블루원 매각, 평택싸이로 지분담보 제공 등이죠.
반응은 싸늘합니다. 산업은행과 상위부처인 금융당국은 태영 측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태영건설 자구계획이 아니라 오너일가 자구계획”이라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양재호 산은 기업구조조정1실장은 지난 3일 채권자 설명회에서 “현재까지는 (태영건설의 자구안이) 워크아웃을 진행(개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채권단은 태영 그룹 측이 제시한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중 659억원만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각자금 890억원은 태영건설이 아니라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 연대보증 채무를 갚는 데 사용했습니다. 정부 측은 약속한 890억원을 즉시 지원하고, 나머지 자구계획도 확약을 하라고 촉구했죠. 추가 자구안도 내놓으라고 압박했고요. 여기서 추가 자구안은 태영 측이 가진 SBS나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보입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자구안 확약과 추가 대안을 마련하라고 못 박은 시점은 이번 주말입니다. 태영그룹은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워크아웃이 무산될 가능성에 대비해 법정관리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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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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