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트럼프 본격 네거티브戰 돌입…"美민주주의 자체의 최대 위기"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란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재대결 가능성이 큰 전·현직 대통령들이 서로를 향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며 노골적 네거티브 선거전에 본격 돌입했다. 미국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과 재임에 실패한 전직 대통령의 정면충돌과 상호 비방이 양극화된 정치지형과 맞물려 250년 가까이 유지한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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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선 된 ‘1·6폭동’ 3주년
그동안 주로 자신의 경제성과를 홍보하는 등 포지티브 전략을 썼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 폭동 3주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네거티브로 선거 전략을 전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밸리포지 연설에서 “트럼프는 우리 민주주의를 제물로 삼아 권력을 잡으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밸리포지는 미국 독립전쟁의 상징적 장소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의회에 난입해 벌인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을 언급하며 “우리는 미국을 거의 잃을 뻔했다”며 “트럼프는 당시 선거 결과를 훔치려고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번엔 역사를 훔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또 “트럼프가 북한의 독재자와 자신이 연애편지라고 한 것을 주고받았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느냐”며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해봤느냐”라고도 했다. 트럼프를 김정은에 빗대 독재자로 몰아세운 말로 해석된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 폭동 3주년을 계기로 미국 역사의 상징적 장소에서 민주주의를 언급한 배경에 대해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는 바이든이 민주주의 보존을 대선의 핵심 의제로 설정해 꺼내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바이든 캠프는 연설 전날 애리조나·조지아·펜실베이니아 등 경합지에서 시작한 방송 광고에서도 의회 폭동을 강조하며 자신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파괴자로 대비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트럼프 “바이든이 민주주의 공격”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의 연설 직후 유세에서 자신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마피아로 꼽히는 ‘알 카포네’보다 더 많이 기소됐다며 “바이든이 민주주의의 위협이자 한심한 공포를 조장한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정적 죽이기’라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더 나아가 3년 전 의회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다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을 ‘죄인’이 아닌 ‘인질’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1·6사태가 일어난 날을 “아름다운 날”로 지칭하며 “그들이 감옥에 갇힌 건 미국 역사상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격은 6일에도 이어졌다. 트럼프는 이날 아이오와주 뉴턴에서 열린 유세에선 “바이든이 그 터무니없는 연설을 한 이유는 자기가 말할 수 있는 업적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며 “그는 나를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하지만, 무능한 그가 위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전날 바이든 대통령을 자신을 김정은에 비유한 것과 관련해서도 “내가 독재자라고? 나는 위대한 나라를 만들고 싶을 뿐, 오히려 바이든이 민주주의의 의미를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연설은 연료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3부밖에 되지 않는다”며 바이든의 약점으로 꼽히는 나이 이슈를 재차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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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싸움에…민주주의 만족도 역대 최저
대선이 본격적인 네거티브전(戰)로 전개되면서 미국인들이 느끼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민주주의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충격을 안겼던 3년 전 의회 폭동 사건 당시 기록했던 35%보다 7%포인트 낮아진 역대 최저치다. 갤럽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1980년대 엔 60%를 상회했고, 2010년대엔 40% 수준을 유지했다.
이번 조사 결과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속된 공화당원 중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견이 17%에 불과했다. 또 대학원 이상 졸업자, 대졸, 고졸 이하의 만족도도 걱걱 38%, 30%, 21%로 나타나 학력이 낮을 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감과 실망감이 보다 크게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은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워싱턴 정가의 지속적인 정쟁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미국인들의 환멸이 확대됐다는 의미”라며 “이번 대선은 최소 과거 40년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은 시기에 벌어지는 역사적으로 인기가 없는 현직과 유권자들이 연임을 거부했던 전직의 맞대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美언론 “정부 체제 지속할지도 우려”
뉴욕타임스는 이날 보도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초반 격돌은 이번 선거가 매우 특별한 환경에서 치러질 것을 시사한다”며 “이번 대결에서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된 것은 지금까지 250년 가까이 유지해온 미국의 정부 체제가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라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결국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큰 비용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오히려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트럼프의 재선이 미국의 제도 자체에 위협이 될 거란 주장을 펼치기로 한 것보다 더 열정적인 선거 이슈는 찾기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WP는 특히 “3년 전 의회 테러에 대한 어떤 종류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당시 존재했던 분열의 골이 더 깊어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며 “3년이 지났지만 미국 정치는 당시 의회에서 발생한 테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기 봉착”
미국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올 11월 선거가 미국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로버트 슈뮬 노트르담 대학교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올해 11월 선거는 결국 3년 전 의회 폭동 사건을 놓고 근거 없이 권력을 도둑 맞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의 추종자들과 당시 사건이 민주주의의 전복을 위한 폭력이라고 믿는 사람들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미국 정치사에서 이것보다 더 큰 위험과 도전은 존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슈뮬 교수는 이어 “미국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자유와 민주주의의 등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도 매우 위태롭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그 현실적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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