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위협, 생성되는 공포... 누가 진짜 야만적인가
[김성호 기자]
국명을 알 수 없는 어느 나라가 있다. 광대한 영토를 가진 이 나라는 사막을 국경으로 유목민의 영토와 나뉘어 살아가고 있다. 본래 사막이 이 나라의 땅은 아닌 듯도 하지만 전진기지를 짓고 마을을 개척하여 나라의 영토를 늘려온 것이다. 점령지 마을에선 치안판사가 행정책임관으로 주둔하며, 문제가 생기면 중앙에서 군대가 파견되는 것이 이 나라의 국경지대 관리방침이다.
국경마을은 외로 평화롭다. 짐승을 키우고 곡식을 길러 음식을 마련하는 이들의 삶은 여느 도시의 것과 얼마 다르지 않다. 범법이라 할 것도 얼마 저질러지지 않는데, 이따금 문제가 생기면 치안판사는 벌금이나 노역형을 내려 사건을 마무리 짓고는 한다.
▲ 바바리안 포스터 |
ⓒ 누리픽쳐스 |
평온하던 변방에 감도는 낯선 긴장
점령지 치안관(마크 라이언스 분)은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 지긋한 인물이다. 오랫동안 변경에서 일하며 원주민인 유목민을 연구해온 그는 어느덧 도시보다 변경마을의 삶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딱히 수도로 돌아가겠단 마음도 없는 그는 원주민들과 평화롭게 어우러져 사는 변경에서의 삶에 그저 만족할 뿐이다.
이 마을에 어느 날 한 무리의 부대가 들이닥친다. 지휘관은 졸 대령(조니 뎁 분)으로,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이다. 변경의 사정을 살피는 감독관이 군인인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수도 상황을 알지 못하는 변경의 치안관이 이유를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평소처럼 변경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지원할 뿐이다.
▲ 바바리안 스틸컷 |
ⓒ 누리픽쳐스 |
고문당한 원주민, 외면하는 책임자
그로부터 며칠 뒤 감옥을 찾은 치안관은 원주민 중 삼촌이 사망했고, 조카의 몸 여러 곳이 상처로 가득하단 사실을 알게 된다. 치안관은 탐문 끝에 졸 대령이 이들을 고문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졸 대령은 수도에서 파견된 감독관이고, 저는 변방의 힘없는 치안관일 뿐이다. 치안관은 분노하지만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화를 삭일 밖에 없다.
그러나 졸 대령은 멈추지 않는다. 조카가 변방의 원주민들이 무장을 하고 마을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언을 얻어냈다며 군을 무장시켜 출진을 준비한다. 원주민들이 그럴 사람들도, 상황도 아님을 알고 있는 치안관이 그를 만류해 보지만 먹힐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출진한 졸 대령은 며칠이 지나 원주민 무리를 잔뜩 잡아 마을로 귀환한다. 아무리 보아도 무장한 군인이라기보다는 민간인들이 붙잡혀 끌려온 듯 하지만 졸 대령은 그들이 불온한 무리라며 잔혹하게 처벌한다.
▲ 바바리안 스틸컷 |
ⓒ 누리픽쳐스 |
변방을 뒤덮는 국가폭력의 탄생
수도엔 아는 사람도 없고 직급 또한 그리 높지 않은 치안관이 무엇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는 졸 대령의 행보가 변방의 안전이 아닌 불안을 증폭시키고, 마을 사람들마저 폭력에 길들여 타락시키는 일이라 여기지만 그를 막지 못해 매일을 괴로움 속에서 보낸다.
졸 대령이 다른 변경마을로 떠난 어느 날인가. 괴로워하던 치안관의 눈에 한 부랑자가 들어온다. 다름 아닌 젊은 원주민 여자로, 노숙하는 이 하나 없던 마을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쓰인 치안관은 그녀를 거두고, 그녀로부터 졸 대령과 그 군대가 원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만행을 소상히 알게 된다.
▲ 바바리안 스틸컷 |
ⓒ 누리픽쳐스 |
현실 떠올리게 하는 영화, 누가 진짜 야만인가
영화는 여러모로 국제사회의 한 단면을 돌아보게끔 한다. 본래는 아무것도 없었던 자리에 국경이 서고, 일상이 있던 곳에 갈등이 생긴다. 현장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 갈등을 조장하며,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조작하여 분란을 일으킨다. 통킹만 조작사건으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존재하지 않았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문제 삼은 미국의 사례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에서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이뤄져온 이스라엘의 고립 정책이 현지의 갈등을 격화시켰단 사실 또한 명확하다.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마주 닿는 유무형의 경계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이유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민주주의 시민들은 언제나 주의해야만 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중앙의 눈과 귀를 속이고 제 잇속을 챙기는 졸 대령과 같은 이들이 이념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내세워 평화를 망치는 일이 얼마나 쉽게 반복되어왔는지를 이 영화는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영화는 트라우마를 가진 범죄 생존자의 보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전쟁범죄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소녀는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나이, 그게 더욱 안쓰러웠던 치안관은 그녀의 상처를 위로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그녀는 도리어 제 상처를 거듭 떠올리게 되는 그 같은 관심이 더욱 고통스러워 종종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마침내 마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가기를 선택한 그녀의 결정으로부터 영화는 고통스런 기억을 헤집는 진실 추구가 과연 어디까지 정당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여러모로 <바바리안>은 누가 진정으로 야만적인가를 묻는 영화다. 흔히 과학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발전한 곳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진보했다고 믿는 세태 속에서 꼭 그렇지는 않지 않느냐고 되묻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분명한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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