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난쟁이에게 '군사훈련' 받는 백설공주?
[양형석 기자]
어느덧 세상을 떠난 지 100년도 넘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 이 동화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아동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과 '독어독문학의 창시자' 그림형제다. 이들이 1800년대에 썼던 동화들은 10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되면서 세계 어린이들의 성장기 정서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을 가장 적극적으로 상품화하면서 크게 성공한 회사는 역시 미국의 월트 디즈니 컴퍼니였다. 월트 디즈니는 안데르센과 그림형제가 쓴 명작동화의 판권을 사와 애니메이션 또는 실사영화로 재창작했고 이는 세계 극장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된 <눈의 여왕>, 그림형제가 쓴 <그림동화>에 수록된 <라푼젤>과 <신데렐라> 등이 대표적이다.
▲ 2012년에 개봉한 <백설공주>는 제작비의 2배가 조금 넘는 준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 (주)롯데엔터테인먼트 |
여러 나라에서 재해석된 백설공주 이야기
<백설공주>는 <신데렐라> <인어공주>와 함께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유명한 동화다. 따라서 오랜 세월 동안 수 많은 나라와 작품 속에서 백설공주 캐릭터가 재해석되거나 패러디되곤 했다. 심지어 제 3공화국 시절인 지난 1964년에는 고 박구 감독이 연출하고 김지미 배우가 주연을 맡은 한국영화 <백설공주>가 개봉했다(한국영화 <백설공주>는 지난 2006년 K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소개된 적도 있다).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백설공주>는 1937년 월트 디즈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세계 최초의 풀 컬러 극장용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였다. 1980년대생들까지 <백설공주>에 대한 이미지는 이 작품이 떠오른다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애니메이션이다. 당시로선 대단히 높은 149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무려 1억 8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애니메이션의 명가' 일본에서도 지난 1994년 52부작 시리즈 <백설공주의 전설>을 제작해 방영했다. 원작보다 판타지 및 모험요소가 많이 가미된 <백설공주의 전설>은 KBS에서 <백설공주>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는데 송도영 성우가 백설공주, 강수진 성우가 왕자 목소리를 연기하며 더빙에 참여했다. 1990년대 중·후반 만화를 즐겨봤던 세대라면 이 시절의 <백설공주>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012년에는 그림형제의 <백설공주>를 판타지 블록버스터 액션으로 각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개봉했다. <트와일라잇>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백설공주, <토르>의 크리스 햄스워스가 헌츠맨을 연기하면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하지만 1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관객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루퍼스 샌더스 감독과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불륜 스캔들, 그리고 백설공주를 압도했던 왕비 샤를리즈 테론의 눈부신 미모뿐이다.
<백설공주>에 대한 꿈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월트 디즈니에서는 오는 2025년 3월 <백설공주> 실사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하얀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졌다는 의미의 백설공주 역에 라틴계 배우 레이첼 제글러가 캐스팅된 것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백설공주 역에 과감하게 라틴계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디즈니는 왜소증 비하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입곱 난쟁이는 캐릭터를 바꾸지 않았다.
▲ 줄리아 로버츠(왼쪽)는 평소 이미지와 달리 백설공주를 괴롭히는 왕비를 연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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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동화 <백설공주>의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라는 것은 대중영화로서 커다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특징이 없는 영화로 머물 수 있다는 결점이 되기도 한다. 영화 <백설공주> 역시 관객들이 좋아하는 원작의 매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영화만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결과적으로 8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8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으니 '기본'은 보여준 셈이다.
영화 <백설공주>의 승부수는 '아메리칸 스윗하트' 줄리아 로버츠의 변신이었다. <귀여운 여인>과 <노팅 힐> 등 여러 작품에서 사랑스런 캐릭터를 도맡아 했던 줄리아 로버츠는 <백설공주>에서 남편에게 저주를 걸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못된 왕비를 연기했다. 사실 엄청난 연연을 선보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줄리아 로버츠는 젊은 남자를 탐하고 딸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왕비 역할을 잘 소화하며 영화의 중심을 잡아줬다.
쿨의 노래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번째 난쟁이'에서는 난쟁이 중 한 명이 백설공주를 짝사랑하는 스토리가 나온다. 하지만 영화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애틋한 멜로감성은 나오지 않는다. 일곱 난쟁이는 영화 속에서 웃음지분을 책임지는 '개그캐릭터'를 담당했다. 특히 왕자(아미 해머 분)와의 키스를 통해 왕자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주려는 백설공주를 훔쳐 보며 키득거리는 장면은 상당히 유쾌하다.
백설공주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독사과와 이 때문에 백설공주가 잠이 든다는 설정 역시 영화 <백설공주>에서는 볼 수 없다. 영화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먹고 잠이 드는 대신 그 시간에 궁궐수비대 출신 일곱 난쟁이에게 군사훈련(?)을 받아 왕비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른다. 독사과는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마지막 장면에 한 차례 등장하는데 왕비가 몰락했다는 걸 확인시켜 주기 위한 장치로만 간단하게 쓰였다.
영화 <백설공주>를 연출한 타셈 싱 감독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인도 출신으로 미국에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탔고 2000년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더 셀>을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백설공주>를 만들기 1년 전에는 화려한 영상미와 부실한 스토리텔링이 상반된 평가를 받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토대로 만든 헨리 카빌 주연의 <신들의 전쟁>을 만들기도 했다.
▲ 백설공주 역의 릴리 콜린스는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출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 더욱 친숙한 배우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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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셈 싱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백설공주> 역시 관객들로부터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하지만 백설공주 역에 릴리 콜린스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서는 모든 관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환호를 보냈다. <백설공주> 개봉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콜린스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깨끗하고 순수한 백설공주의 이미지를 잘 보여줬다(물론 당시 받았던 기대에 비하면 오늘날 대단한 스타배우로 성장하진 못했다).
콜린스에 대한 한국관객들의 애정은 지난 2017년 콜린스가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동물해방전선단체 레드 역을 맡으면서 더욱 커졌다. 당시 콜린스는 <옥자> 촬영을 위해 약 한 달간 한국에 체류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 곳곳을 다니며 여행을 즐겼다. 콜린스가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업데이트할 때마다 팬들은 그녀의 출몰(?)을 반가워하면서도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불륜으로 인한 이혼 및 데이트 폭력 폭로 등 많은 논란에 휘말리며 이미지에 엄청난 손상을 입은 아미 해머는 <백설공주>에서 앤드류 알콧 왕자를 연기했다. 알콧 왕자는 여느 영화 속 왕자들처럼 마냥 멋진 인물이 아닌 일곱 난쟁이에게 두 번이나 도둑질을 당해 반라 상태로 버려지는 다소 허술한 왕자다. 급기야 왕비의 마법에 걸려 왕비를 주인처럼 모시며 완전히 체면을 구기는데 그래도 후반부엔 백설공주의 키스를 받고 정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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