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은 과학계만의 일 아냐"
[이영광 기자]
▲ 이규찬 PD |
ⓒ 이영광 |
지난해 8월, 정부는 2023년 예산 대비 5조 2000억 원 삭감된 R&D 예산안을 제출했다. R&D 예산이 삭감된 건 1991년 이후 처음 있는 말이다. 박정희 정부 때부터 우리는 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근데 왜 갑자기 R&D 예산을 삭감하는 걸까?
지난 2일 MBC < PD수첩 >에서는 신년특집으로 '대통령과 과학입국-2024 R&D 예산 삭감 파동' 편이 방송되었다. 지난해 12월 12일 세종시에서 공공연구노조의 결의대회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R&D 예산 삭감에 대한 과학계 반응과 함께 왜 R&D 예산이 삭감됐는지 추적했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해당 회차를 연출한 이규찬 PD를 지난 3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
▲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 MBC |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2024년 < PD수첩 >의 첫 방송이었다는 사실이 뜻깊게 느껴집니다. 신년 특집에 걸맞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방송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감회가 남다릅니다."
- 이번 방송이 신년 특집이라고 나오던 왜 그렇게 한 건가요?
"'2024년도 R&D 예산 삭감' 사건은 단순히 과학계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R&D 예산이 삭감된 과정이나 그 후 벌어진 논란들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고요. 2024년도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단순히 R&D 예산이나 과학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현재 어떠한 지점에 있는지, 다시금 개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R&D 예산 파동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사실 R&D 예산 삭감 뉴스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PD분들도 한 번씩 관심 가졌던 것 같아요. 아마 R&D 예산 삭감이 바로 알려지고 난 후에 관심 가졌던 팀은 당시에 섭외 등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고 다른 팀들은 취재 가능성이나 타이밍이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저도 같은 고민을 했고 난항이 예상됐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지금인 것 같았어요."
- 그럼, PD님은 R&D 예산 삭감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죠. R&D 예산은 다른 예산과는 달리 그 특수성 때문에 예산 수립하는 절차가 따로 있습니다. 중요한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예산이기도 하고 과학과 관련한 내용을 이해하거나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전문가들의 심의·평가를 거칩니다. 과학기술기본법에 명시된 예산 수립 절차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간과 절차 거쳐서 예산 수립하는 이유가 당연히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6월 28일, 예산안 의결을 이틀 앞두고 모든 게 다 원점으로 되돌아간 거죠. '이게 뭐지? 그러면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그리고 단 55일 만에 정반대로 대폭 삭감된 예산안이 나타났는데 이게 괜찮은 예산인가란 의구심이 드는 게 당연하죠. 다른 예산이어도 만약 급작스럽게 삭감이 된다면 문제일 텐데, 특히 R&D 예산이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가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 혹시 R&D에 대해 원래 관심이 있었나요?
"사실 이렇게 중요한 예산인지도 잘 몰랐고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 가지고 수립되는지도 몰랐어요."
- 맨 처음에 취재는 뭐부터 하셨어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부터 듣고 싶었어요. 그분들의 얘기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과학계에서 그나마 목소리 내는 여러 노조 분이나 아니면 제보하는 현장의 연구원들, 학생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자 했습니다."
- 프롤로그에서 과학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을 보여줬는데 왜 이렇게 구성하셨어요?
"시청자분들 중에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R&D 예산을 잘 모른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이게 대체 왜 중요한 이야기인지? 과학자들은 왜 이렇게 충격을 받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이어져 온 '과학입국'의 열망이나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그게 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발전해 왔는지, IMF 때도 깎지 않았던, 33년 만에 처음 '대폭' 삭감된 R&D 예산은 대체 어떤 의미인지, 프롤로그에서 최대한 쉽게 이런 이야기들이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박정희 대통령부터 과학에 투자해야 우리가 먹고산다는 흐름이 있었나 봐요.
"신기하게도 모든 대통령이 과학에 대한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해요. 물론 실질적으로 지원을 한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국가의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과학에 대한 중요성,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 그러면 지금까지 R&D 예산은 어떻게 되어 왔나요?
"1991년 이후로 이렇게 줄어든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IMF 때나 금융위기 때도 지켜왔던 예산이라고 표현해요. 그 R&D 예산이 33년 만에 대폭 삭감된 거죠,"
- 지난해 12월 12일 세종시에서 공공연구노조가 결의대회를 했잖아요. 그날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같은 팀의 김소진, 안동현 PD가 현장을 갔다 왔어요. 저도 얘기도 듣고 촬영본도 봤는데 독특한 느낌이 들었어요. 연구자들은 당연히 시위가 익숙한 사람들이 아닌 거죠. 그래서 뭔가 하려고 하는데 하나하나 보면 살짝 긴장한 게 느껴지고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구호도 외치기는 하는데 뭔가 힘이 없는 것도 같고요. 하지만 그 연구자들은 그날 실험복 대신에 시위 조끼를 입고 나와 소리치고 있던 거잖아요. 그날은 또 비까지 와서 그 상황이 더 대비되어 보이더라고요. 부당하고 억울한 걸 최대한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삭발식까지 하는데 잘 안되는 거죠. 그런 데다 좀 아쉬웠던 거는 취재진이 많이 안 왔어요."
- 왜 취재진이 안 갔을까요?
"아마 언론의 관심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시기 같아요. 그때는 R&D 예산이 국회 소소위에서 쟁점으로 계속 이야기되고 있을 때인데 연구자들보다 국회 협의를 통해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또 연구자분들도 언론에 무얼 한다고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저희는 심지어 해당 사안을 취재하고 있던 팀인데도 계속 체크하면서 물어보니까 삭발식 같은 걸 하기로 했다고 이틀 전에 결정됐다고 취재요청서를 주시더라고요."
- 방송보면 윤 대통령은 원래 R&D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이권 카르텔 언급하며 삭감한 거잖아요. 왜 윤 대통령은 입장이 달라졌을까요?
"그게 미스터리예요. 겉에서 보면 정말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보이니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심지어 신년사 때도 R&D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고 국정과제에서도 R&D 투자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이권 카르텔'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효율, 비효율 이야기가 나오고 그동안 R&D 예산이 방만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거죠. 그래서 정말 건전재정을 지키기 위한 거였을까? R&D 예산 삭감의 배경으로 지목하는 것들이 진짜 이유가 맞을까? 의심이 들고 미스터리가 생기는 거죠."
- 연구원들 만나 보셨잖아요. 이권 카르텔이라는 말에 불쾌한 것 같던데.
"대부분의 연구자는 이번에 과학계에 '이권 카르텔'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고 했어요. 그렇다 보니 삭감의 이유로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니까 연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거죠. '이권 카르텔이라는 게 대체 뭐지? 그 실체가 뭐지? 내 연구들도 예산이 삭감당했는데 그럼 내가 이권 카르텔인가? 전반적으로 삭감이 이루어졌는데 그럼 과학계가 이권 카르텔이란 이야기인가?'란 논리가 되니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 문제가 되는 게 R&D가 나눠 먹기 낭비 사업이라는 건데 그건 아디나 있을 수 있는 거 같거든요. 나눠 먹기를 못하도록 해야지 예산 삭감하는 게 맞나 싶어요. 검찰도 예산 나눠 먹기가 있을 수 있는데 거기도 예산 깎을 건가요? 아니잖아요.
"맞아요. 사실 예산 집행하는 곳은 어느 분야에서든 그런 문제들이 생길 수 있죠. 그런데 만약 그런 게 만연하다면 그건 그런 짓 하는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그걸 관리 감독 못 한 사람들의 책임도 크죠. 만약 문제라면 해당 부분의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거나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죠."
▲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 MBC |
- R&D 예산 삭감으로 출연 기관 타격이 큰가 봐요?
"출연 연구기관 같은 경우 거의 10~20% 일괄 삭감을 통보받았어요. 그렇게 되면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 사업이나 연구자분들은 당장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내년도 예산이 깎일 게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는 인력을 줄이든 실험 재료비 같은 비용을 줄이든 해야하니까요. 연구의 경우 짧아도 3~5년의 기간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는데, 갑자기 삭감되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죠."
- R&D 예산 삭감으로 카이스트를 비롯한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의 동요도 있나 봐요?
"사실 걱정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나 젊은 연구자들이에요. 연구자,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대학생 그리고 영재고·과고 학생들조차 R&D 예산 삭감 소식을 듣고 성명서를 냈단 말이에요. 과학계에 있는 분들도 고등학생들까지 자발적으로 성명서를 낼 줄은 몰랐다고 해요. 하지만 과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이번 사건은 굉장히 부정적인 사인인 거죠. 의대가 최고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번 R&D 예산 삭감은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줬을 거예요."
- 대통령 말 한마디에 예산이 삭감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나라가 구멍가게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게 제일 중요한 문제 같아요. 이 R&D 예산에서는 삭감되었다는 결과보다 이렇게 전문가들의 긴 심의나 평가를 받으면서 준비했던 예산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에 너무 졸속으로 삭감이 됐다는 그 부분이 너무 큰 문제인 것 같아요."
- R&D 예산은 삭감했는데 글로벌 R&D인 국제 공동연구는 증액했더라고요. 왜일까요?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많이 다니잖아요. 해외 순방을 다니면서 글로벌과 관련한 사안들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해외 순방 때 꼭 과학과 관련된 석학들을 만나거나 연구소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R&D 전체 예산은 갑자기 대폭 삭감된 와중에 글로벌과 관련된 R&D 부분은 또 갑자기 3배로 늘려버렸어요. 해외 순방은 업적이 되니까 국제 공동으로 하는 부분에 이렇게 투자하려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 지난해 12월 28일 예산안이 통과 되었죠. 어쨌든 정부가 삭감한 거보다는 올라갔는데.
"5조 2000억을 깎았는데 6000억을 증액해서 최종적으로는 4조 6000억이 감액 됐어요. 정말 미미한 수준의 증액인 거죠. 예산 협상 과정에서는 최소 1조 8000억인가 2조, 8000억 이런 숫자들이 왔다 갔다 했는데 결과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숫자인 6000억이 증액된 거죠."
- 왜 그거밖에 안 되는 거죠?
"당시에 관련됐던 의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정부 측에서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요.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이 정도 수준의 증액에서 그쳐버린 거죠."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R&D 예산은 복잡하고 어려워요. 특히 세부내역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를 이야기하기가 더 힘들었어요. 영국 같은 경우 과학 정책과 관련된 모든 서류가 그 단계에서 공개되어서 열람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글로벌 R&D의 세부 내역이 뭔지 공개되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이에 대해 취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이런 측면 때문에 R&D 예산은 너무 중요하지만, 시청자들에게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취재 내내 했고 편집 때도 계속 고민했어요."
- 시청자한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사실 메시지 자체는 간단해요. 매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목표를 많이 세우잖아요? 왜냐하면 2023년은 끝났고 새로 시작하면서 올해는 이전보다 더 잘하고 잘 되고 싶으니까요. 우리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도,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도 똑같은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못된 건 바로잡고 중요한 건 다시금 되새기고 현실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특히 중요한 사회의 결정 과정이 이루어질 때 민주적 절차와 설득이 얼마나 중요한지였어요. 비록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고 힘들지라도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그 중요성을 알게 됐음에도 자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R&D 예산 삭감은 사실 과학계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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