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후배들이 찾던 집, 조동진이 내어준 커피 한 잔의 위로

강인원 2024. 1. 7. 10: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수 강인원의 짜투리 평전] 철학자의 금언이라 해야 어울릴 조동진의 노래들

[강인원 기자]

▲ 조동진 언제나 말없이 침묵과 눈빛으로 얘기하던 형을 아이패드로 그렸다
ⓒ 강인원
 
차라리 명상가이며 철학가의 금언이라 해도 좋을 조동진 형의 노래들.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일요일 아침', '나무가 되어' 등 그의 모든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삶의 여러 순간들을 사색하게 되면서 나의 유치하고 사치스런 노래 언어가 부끄러워지며 가슴속 뺨이 붉어진다.

아주 아주 오래 전 어느날, 나의 솔로 데뷔곡이었던 '제가 먼저 사랑할래요'를 발표하기 전 연습으로 끄적거린 가사에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형에게 노래를 들려드렸다. 후렴 가사를 보시더니 씩 웃으며 "인원아 여기 좀 바꿔보는 게 어떻겠니?" 하며 지적해 준 곳이 "~사랑은 물거품이래요 불같은 사랑이 가슴에 넘칠지라도~"였는데 원래는 "~불같은 화살을 가슴에 맞았을지라도~" 같은 식의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던 가사였고 형의 조언대로 수정해서 녹음실에 들어 갔다. 형이 조용하게 지적해준 곳이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후렴 멜로디가 되었다. 그는 음악 동생들에게 조용하고 단호한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그의 노래 '저문 길을 걸으며' 가사 가운데 "아주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들어~"와 같이 그는 생의 모든 문제에 있어 아주 쉬운 일도 어렵게 풀어버리는 스타일인 것 같다.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실존적 작용이리라.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갈림길에서, 정(正)과 부(不)의 생사에 있어서 마음속 실존은 정을 지향하고 있었던 그의 그런 도도하리만치 고고한 인내 때문에 후배들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의 노래속에 담긴 말들과, 그의 목소리와, 꼿꼿이 서 있는 그의 자존이 너무나도 흡사하여 동생들은 형의 노래 앞에선 으레 주눅이 들어 반항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속칭 언더그라운드라고 칭하는 모든 음악인들의 공통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후배들이 마음속 갈등이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밤늦은 시간 또는 새벽녘에 그의 아파트 벨을 누르게 되는 이유도 모두가 잠든 늦은 새벽, 그의 자그마한 거실 동그랗게 밝혀진 불빛 아래서 내어준 짙은 커피 한 잔의 향기와 그의 깊은 눈빛과 침묵에 가까운 말없는 대화가 후배들의 고락을 품어주고 사색이 필요한 답을 내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충실한 생을 살았던 동진이 형
 
▲ 한국 포크 음악계의 대부 조동진 별빛 내린 나무가 된 형을 생각하며 아이패드로 그린 것
ⓒ 강인원
 
형과 같이 외출을 하기 위해선 제일 먼저 그가 잠 깨기를 기다려야 했다. 잠깬 후, 그가 담배 한 대를 그윽하게 피우는 시간을 또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외출을 위해 그의 샤워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고 옷 입는 시간까지, 그렇게 해서 외출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에서 외출을 위한 잠깐 동안의 형의 사색을 또 기다려야 한다. 정말 느려 터져 버린 형이다. 하지만 형의 늦음과 침묵과 깨끗함을 보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생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죽음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깨우침을 그는 깊은 잠속에서 되새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생(깨어있음)과 사(잠듦)는 별개가 아닌 하나로 순간 순간 유유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 그는 참으로 충실한 생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금언 중에서 "충실한 생명은 깊다, 충실한 나날은 좋은 잠을 준다, 충실한 생명은 조용한 죽음을 준다"는 말이 연상된다.

나는 16~17년간 형과의 만남 동안에 그가 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꼭 뛰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해서 먼저 뛰어가다 뒤돌아보면 그는 항상 저만치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그리곤 씩 웃으며 "뭐가 그리 바쁘냐?" 한다. 그후부터 나도 요령이 붙어 형과의 외출 땐 아무리 바빠도 느긋이 형 뒤나 옆에서 뒷짐지고 천천히 걷는다. 그러니까 또 그게 좋다. 거리 풍경도 볼 수 있고 사람들의 표정도 볼 수 있고 길가에 무엇이 있는지 그러면서 내가 살고 있던 도시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게 느린 그가 후배들의 콘서트장에는 제일 먼저 들른다. 역시나 말없이 든든한 격려의 눈빛으로 씨익 웃음을 지어주며 대기실 분위기를 훈훈하게 데워놓고 끝날 때 쯤 슬쩍 자리를 뜬다. 그래서 그런 동진 형의 콘서트는 후배들이 총 집합하는 만남의 날이 된다. 형의 콘서트에는 스태프까지 합쳐 줄잡아 100여 명의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콘서트는 항상 꽉 차는 객석으로 인해 흥행이 잘된다. 하지만 몰려드는 후배들의 식대 때문에 남는 게 별로 없었을 것이다. 콘서트를 빙자하여 며칠 동안 우르르 모여서 서로 음악 얘기며, 그동안 살아왔던 얘기도 하며, 정겨운 식사도 공짜로 하고 또 형의 노래도 들으니 얼마나 좋은가? 동진 형은 남는 거 별로 없었겠지만 형도 그런 시간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윽한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은 조용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에 잘 어울리는 형의 낮은 목소리와 천천히 걷는 그의 뒷모습이 참 좋았다. 행복한 사람, 형이 떠난 지 벌써 7년이 흘렀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