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앤칩스]"골 깊고 주기 짧아져" 반도체, 위기만큼 기회도 커졌다

김평화 2024. 1.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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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산업' 반도체…불황기서 회복 중
업사이클 기대감 키우는 메모리 업계
AI 효과로 D램 시장 새 매출 기록 쓸까
"메모리 중요도 높이는 것이 향후 과제"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사이클을 언급한 게 화제입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골이 깊어지고 주기는 짧아진 사이클 속도 변화에 맞춰 경영 계획을 짜고 비즈니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진 만큼 과거 문법 대신 새로운 예측 모델을 세우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민하게 시장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한 겁니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업종입니다. 시장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오다 보니 전체 시장 흐름을 살펴보면 마치 물결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최 회장이 언급한 반도체 사이클을 찾아보니 확연히 짧아졌습니다. 과거엔 4~5년 주기로 사이클이 바뀌다 보니 올림픽 주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제품이 한정적인 데다 해당 제품이 쓰이는 시장도 주로 PC 영역이었다 보니 비교적 주기가 길고 안정적이었던 것이죠.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범용 제품이라서 일괄적으로 대량 생산한 뒤 수요처마다 공급하기만 하면 됐죠. 사업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만큼 시장을 예측하는 것도 지금보다는 수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반도체가 PC뿐 아니라 모바일, 서버 등 여러 영역에서 쓰이면서 시장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많아졌습니다.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도 예전보다 많이 커진 탓에 호황일 땐 업계 매출이 크게 늘고 불황일 땐 적자 폭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최근 각국이 반도체를 경제·안보 자산으로 여기며 각종 행보를 더함에 따라 시장 외 영향을 주는 요인 역시 늘었다고 하네요.

현재 반도체 시장은 다운사이클을 벗어나는 중입니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정도 이어진 불황을 이겨내고 회복 시그널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호황기였던 2021년 수준으로 반도체 시장이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여럿 나옵니다. 특히 경기 변화에 민감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회복세가 두드러질 수 있다고 합니다. 메모리 업계 감산 노력과 함께 시장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죠.

메모리 업계는 다가올 업사이클을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인공지능(AI)이 산업 곳곳에서 쓰임새를 늘릴수록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고성능·고용량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AI 효과는 단기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시장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하는데요, 과거 스마트폰 등 새 응용처가 등장할 때마다 D램 시장이 매출 기록을 경신한 것처럼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고 합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정성공 수석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열린 국내 콘퍼런스에서 "AI가 또 다른 (D램 시장의) 매출 기둥이 될 것"이라며 "업사이클에선 과거 매출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세계 D램 시장의 7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선 긍정적인 소식입니다.

물론 업사이클 후에 또 다른 다운사이클이 올 수 있을 겁니다. 호황기에 제품 공급이 늘어난 상황에서 여러 요인으로 수요가 줄면서 재고가 쌓이고 메모리 가격이 내려갈 수 있겠죠. 메모리 업계는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고객 맞춤형 생산으로 체질을 바꾸는 시도가 이 같은 문제를 줄일 것으로 봅니다. 기존에는 수요를 예측한 뒤 범용 제품을 대량 생산했다면, 앞으론 고객별로 맞춤형 제품을 공급하는 수주형 사업이 늘어난다고 하네요.

장기적으로는 기술 발전을 통해 메모리 중요도를 키우고 있습니다. 전체 컴퓨팅 구조에서 연산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가 중심 역할을 한다면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를 돕는 보조 역할을 하는데요, 향후엔 메모리 반도체가 일부 연산 기능까지 갖출 수 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관련 제품 핵심이 될 PIM(Processing-In-Memory) 기술 개발에 성공한 상태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메모리 중요도를 높이는 것이 메모리 업계가 나아가야 할, 시장 확대를 위한 방향이 될 것"이라며 "향후 PIM처럼 연산 기능을 품은 메모리가 상용화되는 시점이 오면 다양한 기능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편집자주 - 현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매일 듣는 용어이지만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죠. 어렵기만 한 반도체 개념과 산업 전반의 흐름을 피스앤칩스에서 쉽게 떠먹여 드릴게요. 숟가락만 올려두시면 됩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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