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화해할 때 됐다"…앙숙 YS·DJ 손잡게 한 '병문안 정치'
흉기로 피습당해 목에 자상을 입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분간 환자로 병원에 머문다. 수술을 집도한 민승기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4일 “추가적 손상이나 감염, 그리고 혈관 수술 후 합병증 발생 우려가 있어 앞으로 경과를 좀 더 잘 지켜봐야겠다”고 브리핑했다. 지금은 가족 외 면회 금지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 대표의 순조로운 회복을 전제로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1야당 대표를 병문안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자체로 메시지, 병문안 정치
정치사에서 병문안은 화해와 협치의 계기였다. 아픈 사람을 찾아가 위안하는 일 자체가 선의의 표현이다. 한평생을 대결 구도로 지낸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DJ 서거 8일 전 신촌세브란스 병실에서 화해했다. YS는 2009년 8월 11일 DJ를 20분간 병문안한 뒤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다. 이제 화해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법 통과를 요구하며 단식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두 차례 입원했을 때마다 병문안했다.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수액 맞고 (단식) 그만해라. 이제 국민이 다 알지 않나”(우원식)
“힘들어 죽겠다. (합의) 좀 해주고 가.”(김성태)
특검법은 그달 21일 여야 합의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암 투병 중이던 밥 돌 전 공화당 상원의원을 깜짝 방문해 정파를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줬다. 둘은 상원에서 오랜 기간 여야 관계로 지냈다. 투병 소식을 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공식 일정에도 없던 병문안을 갔고, 밥 돌 상원의원은 그로부터 8개월 뒤 세상을 떴다.
정치인들은 원로에게 고언 청하려 병문안을 가기도 한다. 2017년 당시 수세에 몰렸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김종필(JP) 전 총리를 공개 방문했다. JP는 “정치에 유머와 위트를 갖고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홍 대표를 격려했다.
화분 보낸 盧…尹도 같은 방식 검토
물론 병세나 정세에 따라 병문안을 안 간 경우도 있다.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커터칼 피습을 당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빠른 쾌유를 빕니다’는 글귀가 적힌 난(蘭)을 보냈다. 이병완 비서실장과 소문상 기획조정비서관 두 청와대 참모가 대통령 대신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의료진의 ‘절대 안정, 대화 금지’ 지침에 따라 유정복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에게 화분과 메시지만 전달하고 돌아갔다. 당시 박 대표는 동생 박지만씨 부부 등 가족을 제외하고는 면회객을 만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수석급 이상 참모진을 이 대표 병실로 보내 병문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여야 일각에서는 “아팠을 때 (남을) 병문안 보내는 거 가지고 협치가 되겠나”(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대통령도 특단의 의지를 가질 필요는 있다”(김성태 전 의원)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병문안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이 대표 상황에 따라 만남이 퇴원 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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