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뜨겁게! 패션계를 이끌어 갈 디자이너 4

2024. 1. 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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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패션 수도를 빛내는 건 마천루처럼 드높은 기세의 하우스 브랜드만이 아니다. 뜨겁고, 새롭고, 재기발랄한 감각으로 차근히 포석을 쌓아올린 젊은 디자이너들이 반짝일 때, 패션계는 더 흥미롭고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데뷔 후 5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토록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네 디자이너와 나눈 대화.
「 Heliot Emil 」
기술과 예술이 만나 이룬 ‘인더스트리얼 엘레강스’

인스타그램 @heliot_emil

디자이너율리어스 율

데뷔 2017 S/S 밀라노 패션 위크

금속과 패브릭을 넘나드는 독특한 소재, 버클이나 카라비너, 체인 등의 하드웨어…. 엘리엇 에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율리어스 율은 지극히 절제된 색채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표현해낸다. ‘리퀴드 메탈’과 같이 엘리엇 에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소재와 기술이 그의 독보적 미감을 공고히 한다. “유니크한 소재와 기술을 좋아하는 건 혁신에 대한 열망 때문이죠. 리퀴드 메탈, 3D 프린팅… 이런 소재들은 엘리엇 에밀의 퀄리티와 지속 가능성, 브랜드의 정체성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워크 웨어와 우아한 이브닝 웨어, 직선과 곡선, 차갑고 부드러운 것의 유려한 어우러짐 또한 이들 디자인의 특징이다. 엘리엇 에밀은 코펜하겐에 기반을 둔 브랜드로 덴마크의 디자인 DNA를 계승한다. “엘리엇 에밀은 디자인 철학과 ‘인더스트리얼 엘레강스’를 바탕으로 합니다. 폴 케홀름, 아르네 야콥센과 같은 덴마크 건축가들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의 감각은 패션 아이템과 함께 선보이는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선보이는 건 우리의 미적 비전을 더 폭넓게 반영하기 위함입니다. 엘리엇 에밀을 통해 온전한 심미성의 세계를 큐레이션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죠. 이를 인더스트리얼리즘, 건축, 기능성을 융합한 디자인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브랜드명은 디자이너 율리어스 율과, 형제이자 브랜드의 운영을 맡은 빅터 율의 증조할아버지 이름을 딴 것. 율리어스 율은 “이는 헤리티지와 우리 세대까지 이어온 가치와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연관이 있다. “전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고, 포용하고 싶어요. 지속 가능성, 더 많은 것을 포괄하는 디자인, 기술의 발전을 향해 나아가려 하죠. 패션이 테크놀로지와 혁신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정 스타일이 메가트렌드로 패션계를 휩쓰는 와중에도 엘리엇 에밀은 좀처럼 휩쓸리지 않아, 이들의 단단한 코어를 짐작케 한다. 이들에게 자기만의 미학을 정립하고 추구하며, 결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진화하는 패션계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창의적 관점과 진정성에 대한 헌신은 필수입니다. 적응력, 혁신, 퀄리티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 역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고요.” 2023년 11월에도 한국을 방문했다는 율리어스의 한마디. “서울에 2주 정도 머무르며 친구들을 만났는데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은 더 흥미롭더군요. 서울의 패션 러버들도 굉장히 개성 있었고요. 기대를 뛰어넘는 시간이었어요!”

「 Jisoo Baik Paris 」
쿠튀르라는 꿈

인스타그램 @jisoobaikparis

디자이너백지수

데뷔 2023 F/W 파리 쿠튀르 위크

지수백은 2023년 7월 파리 쿠튀르 위크로 데뷔했다. 쿠튀르 위크로 데뷔를 치르자 자연스럽게 디자이너 백지수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특히 팬데믹으로 약 2년의 휴식기를 가지며 침체됐던 오트 쿠튀르 위크가 활기를 되찾는 데는 지수백과 같은 젊은 피의 공도 컸다. 첫 컬렉션 직후의 주목에 대해 그는 “젊은 쿠튀르 브랜드가 흔치 않기도 하고, 전통적인 쿠튀르 디자인에서 나아간 저만의 조형적이고 실험적인 실루엣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백지수는 발렌시아가, 생 로랑, 뮈글러 등 쟁쟁한 패션 하우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쿠튀르 컬렉션을 준비했다. “여러 하우스에서 그들의 아카이브를 베이스로 한 디자인을 해오며 컬렉션을 전개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디자인뿐 아니라 개발, 생산 등의 업무에서도요.”

지수백 룩은 공간감까지 옷의 일부로 활용한 듯한 특유의 ‘스페이스 실루엣’이 돋보이는데, 어떤 룩은 현시대의 갑옷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 옷을 입는 사람이 조형적인 옷에서 보호를 받음과 동시에 나다울 수 있는 자유를 느끼길 바라요.” 일상복으로서의 옷보다 한 벌 한 벌에 의미와 정성을 담은 작품에 가까운 쿠튀르는 디자이너의 비전과 테크닉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백지수는 옷을 하나의 아트 오브젝트라고도 생각하며, 예술적 측면에서의 디자인으로 접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쿠튀르를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저는 스케치 없이 스톡맨(마네킹) 위에 바로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여러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루엣을 찾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의 감각을 오롯이 담은 유니크한 컬렉션은 독보적인 세계관을 지닌 가수 비요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Fossora〉 앨범 커버에 지수백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것. 비요크의 스타일리스트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아 성사된 일로, ‘코르누코피아(Cornucopia)’ 투어 무대에서도 지수백의 커스텀 드레스를 입었다. “아티스트는 물론 그들의 스타일리스트와 소통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옷을 디자인하면서 그들의 스타일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콘서트에 초대받아 아티스트가 제 옷을 입고 공연하는 모습을 본 건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이었어요. 퍼포먼스와 옷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이후 새롭게 공개될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도 예정돼 있다고 귀띔했다.

트렌드의 탄생과 소멸이 너무나 빠른 요즘, 젊은 쿠튀리에의 등장은 패션이 지니는 예술의 의미를 다시 돌이켜보게 한다. “환경문제와 윤리적인 이슈에 대해 인지하고 지속 가능한 옷을 만드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옷 한 벌마다 의미를 담고, 대량생산 대신 맞춤 제작한 세상에 한 벌뿐인 쿠튀르는 슬로 패션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과부화되고 있는 패스트 패션, 비슷한 브랜드의 흐름에서 벗어나 옷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저만의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자 해요.” 다가오는 파리 오트 쿠튀르 시즌에 새로운 캠페인 공개를 앞둔 디자이너 백지수의 다짐이다.

「 Jiyong Kim 」
하나뿐인 옷을 좇는 여정

인스타그램@jiyongkimofficial

디자이너김지용

데뷔 2022 F/W

햇볕에 바랜 원단을 사용한 ‘선 블리치’ 룩으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 김지용은, 석사과정 졸업 전부터 유명 편집숍 GR8의 바잉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지용킴의 시그너처가 된 선 블리치 기법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선보이고자 한 열망의 산물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하나뿐인 옷’에 빠져 있다고 밝힌 김지용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패션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도 어디서든 살 수 있는, 흔히 볼 법한 옷에는 별로 매력을 못 느끼다 보니, 세상에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선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유일무이한 옷이라니, 언뜻 그의 열망은 디자이너와 작가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처럼 느껴진다. “선 블리치 작업을 적용한 옷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디렉터인 저조차도 상상을 못 했는데, 정말 많은 노력으로 실현해냈고, 그 가치를 천천히 저희 방식대로 알려가고자 했어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고.” 긴 시간과 손길이 깃든 만큼 지용킴의 옷 한 벌 한 벌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23년, 국내 팬들을 만났던 두 번의 행사가 모두 전시 형식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저희 옷은 설명할 게 많아요. 그래서 전시를 통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것도 있고, 뻔한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도 있어요. 전시회를 함으로써 컬렉션뿐 아니라 저희의 여러 가능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틀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팀으로서, 저희 방식대로 천천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편 지용킴과 이수그룹이 협업해 폐근무복을 선 블리치 기법으로 제작한 의류와 가방을 선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3년 7월 전시에서 이수화학 폐근무복을 해체해 재구성한 아트워크를 공개한 데 이어 이를 상품으로 선보이는 것. 지금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의 협업 파트너가 유명 패션 브랜드도 셀렙도 아닌, 패션과 무관해 보이는 기업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에 김지용은 “사실 패션은 여러 산업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해요. 어떤 산업군과도 협업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현재도 여러 협업을 진행 중인데, 패션 브랜드가 아닌 곳들이 파트너예요”라고 밝혔다.

2023 SFDF 수상자로도 선정된 지용킴의 거침 없는 행보는 계속될 예정이다. 2022년에도 파이널리스트까지 진출한 바 있으나, 결국 2023 SFDF에서 수상의 영광을 맛봤다. “2022년도에 파이널리스트가 된 것도 영광이었지만, 지난 1년간 저희가 정말 많은 일을 했더라고요. 그러한 성장 과정을 또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SFDF 수상자의 베네핏은 지용킴이 더 ‘자기다운’ 행보를 펼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저희의 옷에는 시간이 담겨 있어요.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옷이죠. 저는 저희 옷이 누군가의 옷장의 가장 좋은 위치에 보관되고 있을거라 믿어요.”

「 Bad Binch TONGTONG 」
무적의 ‘배드 빈치’ 에너지

인스타그램 @bad_binch_tongtong

디자이너테런스 주

데뷔 2023 S/S 뉴욕 패션 위크

문어, 공, 무소의 뿔… 옷장보다 무대가 더 어울릴 것 같은 배드 빈치 통통의 룩은 등장부터 화제를 모았다. 너무나 대범해 때로는 ‘밈 친화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독보적인 룩을 런웨이에 펼쳐내는 디자이너는 테런스 주. 2022년 데뷔 후 샵사이다와 협업하고, NFT 컬렉션도 선보이더니 2023년 〈포브스〉가 선정한 30대 이하 30인(30 UNDER 30)에 선정될 만큼 거침없는 행보로 이목을 사로잡고있다. 배드 빈치 통통의 데뷔는 브루클린의 화이자 빌딩에서, 생경한 생물체를 닮은 모델들의 댄스 퍼포먼스를 통해 이뤄졌다. 2024 S/S 역시 한 편의 연극 같은 무대로 표현됐다. 보고 있자면 낯설지만, 마네킹 같은 모델에게선 느낄 수 없던 의상이 품은 에너지를 인식하게 된다. “감정은 에너지와 움직임을 합친 것이죠. 제 ‘배드 빈치(Bad Binch)’ 에너지나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은 없었어요. 우리는 움직임을 통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창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토록 역동적인 무대를 사랑하는 이유다. “저의 첫 번째 원칙은 아이디어와 최종 결과물 사이의 불필요한 모든 단계를 제거하는 거예요. 우린 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크리에이티브에 있어서도 완벽한 컨트롤을 유지하죠. 쇼를 선보이는 방법에 있어 수많은 조언과 제안을 받지만, 전 궁극적으로 제 본능을 믿고, 제가 맞다고 느끼는 걸 믿어요. 전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고 관객에게 더 깊은 대화를 나눌 공간을 제공합니다. 결과에 대한 기대를 제외시킨 개방성이 제 쇼를 특별하게 만들죠.” 단단한 배드 빈치 파워로 무장한 그에게 순수한 표현이란 어떠한 미션같이 보인다. “제게 창작이란 주변의 소음을 무시하고 내게 집중하는 의미있는 순간을 즐기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배드 빈치 통통에 끌릴지 몰라도, 제 진정성과 순수성은 분명 그 이유 중 하나일 거예요.”

이런 대범한 룩과 연출이 일각에선 ‘난해하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한다. 때론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거나, 밈으로 인용되는 경우를 염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상관없어요(I don’t care)”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배드 빈치 통통은 의미 있는 대화를 열어내기 위해 존재하므로, 긍정적인 피드백과 부정적인 반응 모두 환영합니다. 이 모두가 제가 즐기는 과정의 일부죠.” 때론 평가를 마주해야 하는 필연적 과정에 지치기 쉬운 패션 신성들을 위한 그의 조언은? “꿈을 좇지 말고, 열정을 좇으라는 거예요. 꿈을 갖는다는 건 때론 착각일 수 있지만, 열정을 따르는 일은 언제나 즐겁거든요!” 치팅 데이에 한국식 치킨을 즐기고, 스튜디오에서 K팝을 즐겨 듣는다는 그의 룩을 한국에서도 곧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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