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언제 어디서 칼부림 나도 이상할 것 없는 현실”

강주안 2024. 1. 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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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안인득 사건 재판서 드러난 위험 환자 관리 실태〉

「 학계·법조계 지원한 피해 가족 소송서 “국가 4억원 배상” 판결
“윗집서 곰팡이 던진다”며 잇단 난동에도 경찰 입원 추진 안해
다른 피해자도 거액 배상 예상되나 후유증 심각해 소송도 못내
정신과 전문의 “위험한 정신질환자 범죄 사전예방 불가능 상황”

이제 남은 시간은 3개월뿐이다. 2019년 4월 17일 경남 진주에서 조현병을 앓는 안인득 씨가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상해한 참극. 사건의 피해자가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5년)이 거의 다 지나갔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4부(박사랑 재판장)는 피해를 본 금모 씨 가족에게 국가가 약 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주민들의 잇따른 신고로 예방이 가능한 사고였는데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소송을 대리한 '법과 치유' 오지원 변호사는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이 신고자의 호소를 가볍게 취급하면서 관계 법령에 따른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3개월 뒤 소송 기한 끝나

이번 판결은 안 씨로 인해 가족을 잃었거나 다친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머지 피해자들도 소송을 제기하면 거액의 배상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5년이어서 석 달여 뒤면 배상 청구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와 가족들은 소송할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탓이다. 이번에 승소 판결을 받은 금 모 씨는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빗물이 사고 당시 흥건했던 피로 느껴져 외출을 못 한다”고 했다.

임대 아파트 특성상 노약자가 많다. 일부 부상자는 아직도 거동이 어렵다. 오 변호사는 “피해자 가족이 원하면 도와드릴 텐데 아직 도움 요청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고 직후 피해자들이 앞다퉈 이사한 점도 공동 대응을 어렵게 한다. 한 당시 거주자는 “불이 나고 피가 낭자한 상황에서 가족이 흉기에 찔려 신음하는 걸 본 사람들이 어떻게 계속 살겠느냐”고 했다. LH 측은 피해자 가족 등 78가구에 대해 이주 등을 지원했다.


다른 동네로 뿔뿔이 흩어진 피해자

이번에 배상 판결을 받아낸 가족의 경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이 설득해 사건 발생 2년 7개월 뒤인 2021년 11월에야 소장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참변이 일어나기 전 경고음이 무수히 울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경찰이 행정입원 신청을 요청했더라면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적 개입이 이루어졌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안 씨를 다섯 번이나 신고했던 이웃 두 명 중 한명은 살해당하고 한명은 상해를 입은 점을 지적했다.

사고 현장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달 22일 오후 6시쯤 비극의 현장인 경남 진주의 아파트 단지를 찾아갔다. 불에 탔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안 씨가 방화했던 집에는 조명이 들어와 있다. 다른 사람이 입주한 듯했다.

안 씨가 살던 집의 위층에 올라가 봤다. CCTV의 흔적이 보인다. 안 씨는 사건 몇 달 전부터 윗집 사람들을 괴롭혔다. 자신의 집으로 곰팡이와 벌레를 보낸다는 이유였다. 문에 오물을 투척하는 등 기행을 벌였다.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으나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해보라”는 등의 대답만 돌아왔다. 경찰 안내에 따라 설치한 CCTV엔 안 씨의 행패가 잡혔다. 그래도 보호를 받지 못했다.

끝내 윗집에 살던 19살 시각장애인 최 모 양이 안 씨에게 살해됐다. 한 이웃은 “앞도 잘 못 보는 아이가 무섭다고 그렇게 호소를 했는데 안 씨가 죽일 때까지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인근 파출소까지 걸어가 봤다. 150보 만에 개양파출소에 도착한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정신 건강을 위한 ‘마음 나누기’ 참여자를 모집하는 게시물이 보인다. 어린이집은 텅 비었다. 2021년 4월에 닫았다고 한다. 안 씨 사고 이후 아파트 분위기 변화가 느껴진다. 사고로 피해를 보았던 집을 찾기는 어려웠다.


“국가라도 나서서 소송 도와야”

당시 주민은 “피해 가족들은 모두 다른 데로 떠났다”며 “대개 다른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공동 대응할 여건이 안 돼 이대로 시효가 지나갈 듯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국가의 잘못이 인정된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 판결 사실을 알려주는 게 맞다”(공공기관 관계자)는 의견도 나온다.

국가배상 판결에도 불구하고 비극은 반복되리란 예상이 제기된다. 언제 어디서 칼부림이 나도 이상할 게 없는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 22일 오전 10시쯤 포항지진 트라우마센터 이영렬 센터장을 찾아갔다. 국립부곡병원장을 지낸 그는 안 씨 사건 당시 곧바로 현장 지원을 나갔다. 이 센터장은 “안 씨는 제대로 관리나 치료만 됐으면 이런 일을 안 일으켰을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이영렬 센터장과 오지원 변호사


사고 직후 그는 안 씨의 치료 이력을 확인했다. 진료 기록에는 안 씨가 위험인물로 변해간 과정이 담겨있었다. 안 씨는 2011년 1월 극도로 위험한 상태로 병원에 들어왔다. 타인을 흉기로 공격했다. 입원 직후 그는 팔과 다리를 결박당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러나 약 한 달 만에 의료진이 산책을 허용할 정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이 센터장은 “치료를 받으면 빠르게 호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퇴원 이후에도 기간에 맞춰 병원에 오는 모범 환자였다. 그런데 2016년 7월 진료를 받은 뒤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위험신호인데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 이 센터장은 “마지막 진료일 차트를 보면 이전과 달리 의사에게 상당히 길게 얘기한 사실이 나타난다”며 “이런 모습을 보인 뒤 사라졌다는 건 위험 신호”라고 설명했다. 무차별 살인이 벌어진 건 그로부터 약 2년 9개월 뒤다. 이 원장은 “치료제 복용을 중단해도 약의 효과가 어느 정도는 지속한다”며 “그게 완전히 사라지는 게 18~24개월 정도”라고 설명했다. 안 씨의 이웃 공격 시점이 그 무렵이다. 예고된 참사라는 얘기다.

안 씨 사고 이후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퇴원 환자를 방문 및 상담하는 지속 치료 지원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흉기 난동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얌전한 환자만 입원한 현실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있는 환자가 곳곳에 있는데 현 체계에선 그들을 찾아내 치료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안 씨 사건 4개월 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임세원 교수가 환자에게 살해당한 사건과 지난해 8월 분당 서현역에서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한 뒤 흉기로 행인을 공격한 최원종 씨도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한다. 전문의들은 당장 떠오르는 위험 환자만 해도 여러 명이라고 말한다.

이 센터장은 “1년 반 만에 나타난 환자가 눈빛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주먹이 날아왔다”면서 “허벅지를 이빨로 깨문 환자도 있다”고 밝혔다. 모두 정상 치료를 받을 땐 잘 따르던 환자들이다.


“40~50대 남성, 70~80대 부모가 책임지라는 격”

이번 소송에 힘을 보탠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도 같은 우려를 제기한다. 조순득 회장은 시대 변화에 안 맞는 보호 의무자제도를 비판한다. 조 회장은 “위험에 놓인 40~50대 남성을 70~80대 부모가 책임지라는 얘기”라면서 “1인 가구가 느는데 혼자 지내는 사람이 약을 제대로 먹는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방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개입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이 센터장은 “조현병 중 타인을 공격하는 성향은 일부에게만 나타난다”며 “이런 환자가 관리에서 벗어나면 극히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입원에 제약이 많아 시한폭탄 같은 상태로 방치된다. 이 센터장은 “공격성이 없는 얌전한 환자들만 입원해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병원마다 진료 기록을 보면 안 씨처럼 위험한 사례를 찾을 수 있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시민 피해를 막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예방이 위로보다 중요

이번 소송은 국가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배상이 확정됐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유족에게 손편지를 보내 위로했다. 위로보다 중요한 일은 더는 피살자와 유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다.

이번 판결문에 기록된 피살자 금 모 양의 기대여명(통계적으로 산출한 생존 가능 햇수)은 ‘75.58년’이다.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삶의 시간이다. 앞으로도 75년의 인생을 빼앗길 위험은 도처에 상존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조현병보다 시스템이 더 문제"


백종우 경희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16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의료원 교수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안인득 씨 피해자 소송을 지원한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경희대 의대 교수·사진)은 “가장 큰 문제는 조현병 자체가 아니라 빈약한 시스템”이라며 “정신응급만이라도 필수의료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Q : 여러 단체가 함께 유가족을 지원했다.

A :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전문의·법률가와 유가족은 물론 정신장애인가족도 같은 마음을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 고 임세원 교수 5주기를 맞았다.

A : "친했던 친구라 아직도 마음 아프다. 위험한 환자는 많다. 선량한 사람인데 병 때문에 살인미수로 치료감호를 받았던 환자가 있다. 약을 끊는 바람에 망상이 재발해 가게에 들어가 주인을 해쳤다."

Q : 가장 시급한 대책은.

A :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치료 결정을 가족에만 맡겨선 안 된다. 현행법에 규정된 응급행정입원이라도 지키는 것이 당장 급하다."

글 = 강주안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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