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때도 나체로 땀 흘리기 즐긴 그리스인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기원전 2500년,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이집트 여행을 떠났다. 고대 문명의 신비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특히 이집트 역사와 종교가 궁금했던 그는 이집트 지방 도시 아스완에서 50㎞ 떨어진 콤옴보 신전을 찾았다. 하지만 기대가 ‘황당’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제들이 피타고라스에게 바지를 벗을 것과 징표(?)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거만한 표정의 사내들은 당당히 말했다.
“이곳은 성스러운 수술을 받은 사내만이 들어올 수 있소.”
사제들이 성스러운 수술이라고 칭한 건 다름 아닌 ‘포경 수술’이었다. 피타고라스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인에게 포경은 혐오스러운 행위였기 때문이다. 고대 지중해 문화를 공유하는 그리스와 이집트, 두 나라 사이에서 ‘포경’에 대해 극단적인 시각 차이를 보였다.
인류 최초의 포경은 1만5000년 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 등장은 ‘부족 간 전쟁에서 패한 남성들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였다. 역사학자 피터 찰스 레몬디노는 성기가 남성성의 징표인 만큼, 여기에 상처를 줌으로 상대 부족 위상을 꺾겠다는 목적에서 수술이 시행됐을 것으로 예상했다. 아프리카 동쪽인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문화가 이집트 문명까지 퍼진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 의한 강제가 아닌 ‘자진 포경’이 이뤄진 것은 기원전 아프리카와 중동에서였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는 포경 수술이 광범위하게 시행됐다. 수도였던 사카라에 있는 왕족 무덤에는 할례의 이미지가 남아 있을 정도다. 기원전 2400년 전 그림에 고래잡이 수술 현장이 묘사돼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집트의 더운 날씨로 소변이 포피(음경을 덮고 있는 피부)에 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을 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할례는 ‘청결’보다는 ‘신성(神性)’의 관점에서 시행되고는 했다. 고대 이집트 장례 문서 중 하나인 ‘사자의 서’에 묘사된 태양신 ‘레(RE)’는 포경 수술을 한 신으로 묘사된다. 태양의 신이 할례를 받았다면, 그를 숭배하는 성직자들은 신에 대한 복속의 증거로 포경 수술을 행해야 했을 것이다. 이 신전에 들어오려는 사람도 마찬가지의 ‘자격 요건’을 요구받았다. 이집트 신전을 찾은 천하의 피타고라스가 문전박대를 당한 배경이다.
하느님에 대한 복종의 표시로 ‘할례’한 유대인
종교적 목적으로서 ‘할례’ 문화는 고대 중동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를 문화적으로 계승한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었다(이스라엘 성경에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이들은 이집트인들처럼 하느님에 대한 복종의 표시로 할례를 했다. 다음은 히브리어 성경의 한 구절이다.
“모든 남자는 할례를 해야 한다. 너는 포피를 잘라내야 할 것이니, 그것이 너와 나 사이 약속의 증표가 될 것이다. 너희 중에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아라. 포피를 베어 내지 아니하면 그가 내 언약을 배반했음이니라.”
이는 섬뜩한 신의 경고나 다름없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 시련을 겪을 때마다, 율법으로 돌아가려 했다. 유대교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계명인 ‘미츠바’에 할례가 들어가게 된 이유였다.
성경에 맞게 유대인 아이들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다. 유대인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가 유럽의 경제·문화·사회를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예수 포피는 가장 귀중한 유물 중 하나가 됐다. 동방정교회는 예수의 할례를 기념해 1월 1일을 축일로 삼았다. 로마의 성 라테란 교회를 비롯한 10개의 교회가 “아기 예수의 포피를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기가 무슨 지네 다리도 아닌데 말이다.
‘나치’는 유대인 빠른 색출 위해 바지 벗겨
하지만 문명은 언제나 충돌한다. ‘할례’ 문화를 혐오하는 이들의 존재다. 고대 지중해 세계 절대 강자 중 하나인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이유가 있다. 그리스인들은 성에 개방적인 민족이었다. 운동을 할 때도 나체 상태로 땀 흘리기를 즐겼다. 근육질 남성의 몸을 찬미하고, 신에게 이를 바치는 행위로 여겨서다. 체육관을 뜻하는 영어 단어 ‘GYM’의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어 ‘짐노스(gymnos)’가 ‘누드’를 의미할 정도다.
그리스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체’에는 원칙이 있었다. 옷을 전부 벗되, 귀두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귀두를 보여주는 걸 흉하다고 여겼다. 포피 끝을 ‘키노데스메’라는 끈으로 묶었을 정도다. 이런 그리스인들에게 포피를 일부러 제거해 귀두를 드러낸 이집트인이나 유대인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가 절대 강자로 부상하면서 유대인들이 그리스 땅에 더부살이를 시작하면서 사태는 악화했다. 유대인의 율법과 그리스인의 미적 기준의 충돌이다. 당시 그리스 고위직 장군이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할례 담당 랍비인 ‘모헬’을 돌로 때려 죽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유대인은 생존을 위해 방법을 고안했다. ‘주데움 폰둠’. 바로 황동으로 만든 깔때기 모양 추였다. 남아 있는 포피 쪽에 매달면, 그 무게 때문에 살이 당겨져 귀두가 다시 덮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는데 과연 수학의 민족다운 발상이다. 임시방편이 불안한 유대인들은 ‘에피파스모스’라는 수술을 단행하기도 했다. ‘당겨서 덮는다’는 뜻의 그리스어로 일종의 ‘포피 재건술’이었다. 강대국으로부터 오는 혐오를 피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역사가 반복되듯, 혐오도 반복됐다. 약 2000년 후, 민족 혐오는 보다 끔찍한 방법으로 재현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았다. 그는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위대한 아리아인인 우리 독일인이 빈곤한 건 유대인 때문이다.” 이제 독일 전 사회가 유대인을 색출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배제하기 위해서, 나중에는 학살이 목적이었다.
유대인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할례였다. 유럽의 기독교인은 할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 자경단들은 유대인으로 의심되는 집을 급습했다. 그들이 유대인임을 문서로 증명하지 못하면, 그 집 가장의 바지를 벗겼다. 포경 수술받은 성기가 증거라고 여겨서다.
할례를 받은 성기를 가진 유대인 남성들은 쉽게 나치의 표적이 됐다. 1938년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들이 시민들에 의해 갖은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학살이 일어난 폴란드에서는 수천 명의 유대인이 포피 재건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 전 수술은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2000년이 지난 후에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차별이 반복 재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는 위선으로 가득한 문장처럼 보인다.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포경 수술이 누군가에게는 역사적 애환의 상징임을.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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