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집중력 떨어지고∙무기력∙우울…특효약은 '여∙취∙봉' [건강한 가족]
스스로 돌보는 마음 건강법
한국인의 정신건강 지표가 위기 수준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22년 기준 25.2명, 정신 질환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21년 기준 411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이후 고립감이 확산하고 경제난이 겹치는 사회 환경 변화의 결과다. 특히 반복되는 우울·불안감을 방치하면 눈덩이처럼 커져 뇌와 마음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새해엔 신체 건강만큼이나 스스로 정신을 돌보는 마음 투자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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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청년기
연말연시는 대학 입학이나 취업, 승진처럼 이벤트가 많은 시기다. 결과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고 기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땐 우울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성훈 교수는 “20·30 세대는 취업·직장 스트레스, 인간관계, 가정환경, 이성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다른 연령층에서보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걸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절망감과 무기력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땐 감정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마음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알아채야 한다. 대표적으로 ▶이전까지 주변에 보인 흥미나 관심이 사라지고 ▶불면 혹은 과다 수면 증세가 나타나며 ▶입맛이 뚝 떨어지거나 반대로 식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체 활동에도 변화가 온다. ▶안절부절못하고 서성대는 초조함 ▶행동과 말이 매우 느려지는 현상을 겪는다. 종국엔 ▶집중력이 떨어지고 ▶심한 죄책감이나 스스로 무가치하단 생각에 빠진다.
이처럼 우울→불면→활동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 공식을 끊으려면 작은 무엇이라도 일단 시작하는 게 급선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건 진리다. 30분 정도의 산책이나 대화, 음악 듣기 등 기분 전환이 될 만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활동이라면 뭐든 괜찮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형근 교수는 “가장 효과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많은 치료법은 운동”이라며 “신체 건강은 덤이고 우울증 예방에 효과가 있는 운동을 이번 기회에 시작하자”고 조언했다.
4050 중장년기
중장년은 외모·신체의 노화, 사회 지위의 변화, 자녀의 출가, 부모의 죽음과 같은 크고 작은 생활 사건을 많이 겪는다.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데다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과 같은 예기치 않은 문제까지 발생하면 정서적인 위기에 직면하기 쉽다. 젊을 때 가졌던 삶의 목표와 꿈의 의미가 옅어지고 공허함·허전함이 밀려와 의욕마저 꺾인다.
이때 주의할 건 회피처로 술·게임·도박 중독에 빠질 수 있단 점이다. 특히 박 교수는 “술은 일시적으로 우울감과 힘든 기분에서 벗어나게 하지만 장기적으론 우울감을 악화하고 알코올 사용 장애라는 중독 질환을 유발한다”며 “우리나라는 음주에 유독 관대해 문제 음주나 알코올 사용 장애 유병률이 높은데, 이런 상황은 높은 자살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여행·취미·봉사는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건전한 활동에 몰두함으로써 스트레스와 상처를 털어내고 긍정적인 인식을 갖기에 좋다. 특히 여럿이 함께 활동하면 소속감·연대감을 느껴 홀로 있단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고통이 심하고 해야 할 일을 거의 해내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인터넷 검색이나 주변의 경험담을 통해 자가 치료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친구·가족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 심리·정신 상담을 받는 등 주변의 도움을 주저하지 말자.
6070 노년기
노년기에 정신적인 문제를 겪으면 증상이 신체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기운이 없으며 소화불량과 통증이 생겨 내과·신경과 등을 전전해도 원인을 찾지 못한다. 또한 기분에 관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흔하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지은 교수는 “노년층에선 우울한 기분을 분명하게 호소하지 않더라도 그 이면에 우울증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년기에 우울증이 불현듯 찾아왔다면 뇌의 퇴행성 변화가 동반됐을 가능성이 크므로 더욱 주의한다. 특히 치매로 이어질 수 있어 인지 기능의 이상 여부를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울증과 치매를 구분하기 위해 인지 기능 검사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과 같은 뇌 영상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박지은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기억력이 갑자기 나빠졌다’ ‘기분 상태에 따라 기억력이 좋았다 나빴다 한다’고 하지만 퇴행성 치매 환자는 ‘기억력이 조금씩 점차 더 나빠진다’고 보고한다”며 “현재의 인지 기능뿐 아니라 2~3년 전 기억력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질환보다 치료 효과가 큰 편이다. 급성기 치료로 70~80%가 호전될 수 있다. 약물치료의 경우 예전보다 부작용이 많이 감소해 경도 단계일 때부터 권하는 추세다. 꾸준히 치료한다면 더는 약을 먹지 않아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노년기엔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고 감정 변화에 무딘 편이다. 가족의 세심한 관심이 꼭 필요한 이유다. 규칙적인 생활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 마음이 보내는 경고 신호
「 우울감
흥미, 즐거움 감소
체중 감소 또는 증가
불면 또는 과수면
정신성 운동 지체 또는 심한 불안
피로감 또는 활력 상실
무가치감, 죄책감
주의 집중력 장애
극단적 선택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2주 동안 증상이 5개 이상 있으면 우울증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
」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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